위정자들을 마음껏 조롱하고 풍자한 퓨전 코미디의 진수

춘향과 몽룡은 등장도 하지 않고 변학도와 아전들, 기생들만으로 이루어진 춘향전은 어떻게 전개될까. 춘향전이 한번 비틀어져 퓨전 코메디로 버전으로 태어난 연극 <변>이 서울공연에 이어 고양에서도 펼쳐진다. 연극 <변>은 <비언소>, <늙은도둑이야기>, <거기>, <행복한가족>, <양덕원이야기>에 이은 극단 '차이무'의 열두 번째 연극으로 10월 5일부터 21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공연된다.연극 <변>은 황지우 시인이 몇 년 전 써놓았던 음악극 대본 "째즈 춘향이"에서 이상우 연출가가 아전과 기생 부분만을 떼어내어 구성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특히 대표적 방언을 통해 언어의 맛과 표현방식의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 등 두 가지 버전으로 나뉘어 공연한다는 점이 크게 눈길을 끌고 있다. 경상도 버전인 '변상도'팀과 전라도 버전인 '변라도'팀으로 나누어 공연되는 데, '변라도'는 배우 문성근이 '변'을 맡고, 최용민, 박광정, 신덕호, 민복기, 박지아 등이 한 팀을 이루고, '변상도'는 배우 강신일이 '변'을 맡고, 정석용, 김승욱, 이성민, 전혜진 등이 또 다른 한 팀을 이룬다. 대본을 쓴 황지우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목하 한국 연극의 신경 세포"라고 할 만한 화려한 출연진이다. 연극 <변>은 대사가 거의 질펀한 사투리로 이루어져 있을 뿐만 무대에서 울리는 음악 역시 우리 판소리와 재즈로 엮어져 난장판을 방불케 하는 퓨전 코메디 극이다. 연극 <변>은 변학도를 중심으로 한 주변인물들의 가증스런 행태에 대한 실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변학도는 당대 명문인 성균관 79학번 출신으로 연애시인으로 명망도 높지만 춘향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각종 폭정을 저지르는 인물이다. 거울 앞에서 연방 자신의 모습을 비추며 연애시나 읊조리는 자아도취적인 변학도가 기생 명부에 들어있지 않는 춘향이를 대령하라고 말하며 휘두르는 폭정은 그대로 우리 현대사에서 무수히 보아왔던 위정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런 변학도, 변학도를 대신해서 권력을 휘두르는 생원, 뒤에서는 변학도에게 당할 때 마다 비상대책회의를 열지만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하는 비굴한 아전과 기생이 어우러져 펼쳐지는 이 희극판은 우리 현대사의 한 부분을 마음놓고 조롱하고 풍자한다. 쟁쟁한 출연진 모두 이름값에 부응하는 수준급의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고 특히 즉흥대사로 이루어진 장면이 아닐까 생각되는 술집에서의 난장(亂場) 부분은 그 백미다. “아무리 내 목을 베고 또 베어도 달라지는 건 없어. 사람들은 잊어버리니까. 그것도 아주 빨리. 그리고 나는 다시 돌아오는 거야”라는 말을 남긴 채 유유히 떠나는 변학도의 마지막 대사는 독재자를 쉽게 용서한 한국 현대사에 대한 날선 풍자다. <변>은 희극의 재미와 위정자들을 방치했던 우리 모두에게 일종의 부채감을 안겨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평일 8시, 토 4시ㆍ7시, 일 4시. 1만5천-2만5천원. 전화 031-1577-7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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