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농협 70대 조합원들 특별한 효도관광

“우리 집이 바로 코 앞 이었는데…. 아니 몇 발 더 가보면 어때서 그리 막는지, 눈물이 울컥 쏟아지면서 가슴이 막혀버렸어요.”

박수남(68)씨는 개성 남대문 앞에서 차마 발길을 떼지 못했다. 9살 때 남쪽으로 내려온 박수남 씨는 “고향이 기억이나 날까 했는데, 개성 남대문을 보니 옛 동네가 너무나 생생하게 그대로 있다”며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지난 4일 일산농협 원로조합원들의 개성나들이는 만감이 교차하는 아주 특별한 여행이었다.
북한이 고향인 조합원들은 내내 말을 삼켰고 자신의 고향이 북쪽이라는 것도 쉽게 털어놓지 않았다. 깊게 묻어 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날만은 어쩌지 못한 몇몇 어르신들은 그저 술에 취했다. 그리고 다른 기억을 품고 있는 사람들. 전쟁에 참여했거나 전쟁 중에 고통을 당한 어르신들은 내내 냉랭했다. 한 어르신은 “내가 북쪽에 와서는 1달라도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빈 주머니로 왔다”며 “무슨 일을 당했었는지 알면 나를 이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르신에게 58년 전은 과거도, 역사도 아니었다. 여전히 아픔과 분노가 살아있는 현실이었다. 식당 아가씨에게 1달라 라도 얹어주고 싶어하는 분들은 북쪽이 그리운 분들이었고 ‘별 짓 다 한다’고 막는 분들은 여전히 북쪽이 미운 분들이었다. 남북한이 갈라진 것은 땅 덩어리만이 아니었다. 남쪽 북쪽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남쪽 사람들 안에서의 ‘다름’도 생각보다 깊었다.

남북한 출입국을 지나 개성에 이르는 길은 불과 20여분. 박연폭포를 둘러보고 다시 개성으로 돌아와 선죽교와 개성박물관을 돌아보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왔다. 몇 시간을 개성에 머물렀지만 차는 거의 몇 대도 볼 수 없었고 모두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개성은 작았고 가난했다.

일산농협 조홍구 조합장은 일산 킨텍스에서 가진 저녁 만찬에서 “일산농협을 탄생시켜주시고 키워주신 농협의 진정한 원로들을 위해 특별한 나들이를 준비하게 되었다”며 “가깝지만 갈 수 없었던 땅을 밟아볼 수 있었던 오늘이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234명의 70대 원로조합원들이 함께 한 개성나들이는 하루로 끝났지만 여운은 길고 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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