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허준 이가순 숭모사업회 회장

오늘의 고양이 있기까지, 지역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안위와 부귀를 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양곡 이가순 선생은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가순 선생의 공헌은 고양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을 정도로 지대했다.

이가순 선생은 고양이 대대로 잘 살고 번성할 수 있도록 물 문제를 해결했다. 선생은 잦은 홍수와 가뭄으로 버려진 땅과 같았던 한강 변 일대 고양 땅에 한강물을 넘나들게 하는 양수장을 만들고 농업용 수로를 조성해 고양시 전역에 물을 공급, 비옥한 농토를 만들었다. 일제하 가난에 허덕였던 고양 농민들을 잘 살 수 있게 만들겠다는 신념 하나로 시작한 농지개척 사업에는 막대한 자금이 들었는데, 모두 선생의 사재를 투자했다고 한다. 선생이 만든 양수장과 수로 덕분에 고양시 쌀 생산량은 급증했고 가난했던 농민들은 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뿐인가. 그 물길이 이어져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질 수 있었고, 호수공원이 만들어 질 수 있었다. 선생이 만든 수로는 아직도 흐르고 있다. 아마 이 수로는 이후 고양의 미래를 설계하는 막대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고양에는 이가순 선생의 삶을 재조명하고 기릴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이 펼쳐지고 있다. 양곡 이가순 숭모사업회 허준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선생은 어떤 인물 이었나
20세부터 만주와 연해주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했다. 1909년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자 국내로 잠입해 원산 감리교회 전도사와 장로로 일하며 3.1만세운동을 조직했다. 일제의 패망은 더디게 오자 선생은 가난한 농민들을 잘 살 수 있도록 만드는 민족 자립운동에 온 몸을 바쳤다. 선생이 말년에 선택한 새로운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바로 고양이었다. 선생은 민족의의 해방을 이끈 독립운동가요, 가난한 농민을 구제한 사회사업가요, 지역농민들을 일깨운 훌륭한 선각자였다.

선생이 양수장과 수로를 만든 후 고양지역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일제하 가난했던 그 시절 고양사람들은 ‘3년에 한번만 풍족히 먹어도 부자’ 라고 말했다. 선생이 간척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고양은 매년 풍년을 맞았다. 2000평 정도면 큰 농사였는데, 4만평 5만평 대농이 가능했고 많은 농민들이 부자가 되었다. 수혜지역은 일산신도시 면적의 몇 배 이상이다. 당시 조성된 넓은 평야 덕분에 신도시도 만들어질 수 있었고 고양이 대대로 번성할 수 있었다.

이가순 선생에 대한 기념사업은 어떤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는가.
우선 기념 빗돌을 세우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고양시만 허락한다면, 호수공원이 가장 좋은 장소다. 호수공원이 조성된 곳 역시 선생이 간척한 땅이기 때문이다. 최성 시장이 허락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고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근현대 인물인 이가순 선생에 대한 역사적인 조명과 연구, 다양한 추모사업을 통해 고양의 정신적 멘토가 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가순 선생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가.
늘 존경하는 분이었다. 내가 고양시의회 의장을 지낼 때 능곡지역 선배인 송순팔옹께 호되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었다. 그 분은 “시의회 의장은 해서 뭐하냐. 이가순 선생 추모비 하나 못 세우는데.” 하고 야단을 치시더니 얼마 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추모비를 세워달라고 말씀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언젠가 꼭 추모비라도 세우고 고양 사람 모두에게 존경받는 인물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지난해 이가순 선생이 고양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선정된 것이 계기가 되어 추모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

추모비 건립사업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나.
추모비 건립을 위한 시민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약 3500만원 소요되는 사업인데 여러 고양시민의 이름을 기념비에 새기고 싶다. 많은 시민들의 참여와 격려를 부탁한다.

이영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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