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간 TV맛집을 까발리는 다큐 ‘트루맛쇼’개봉

지난 4월 29일 저녁, 전주의 한 영화관을 나오는 관객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다큐멘터리 ‘트루맛쇼’를 본 이들은 그동안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아무도 벗기려하지 않았던 베일에 싸여있던 맛집 프로그램의 진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충격은 곧바로 온라인을 통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트루맛쇼를 기획 제작한 김재환 감독은 “다들 생각하는 가면을 벗겼을 뿐인데 왜 이렇게 난리가 나는지 모르겠다”며 “이것 자체가 블랙코미디”라고 말했다. 불과 370여 명이 관람한 한편의 다큐멘터리의 파급효과는 방송사가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이라는 악수를 둘 정도로 큰 파장을 갖고 왔다. 결국 법원은 “트루맛쇼의 내용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 MBC의 가처분 신청은 이유 없다”는 결정문과 함께 MBC를 등졌고 트루맛쇼는 예정대로 6월 2일 전국 10여 개의 상영관에서 개봉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은 고양시 일산동구 웨스턴돔에 위치한 작은 음식점에서 시작됐다.

 

 

“난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 트루맛쇼는 TV로 맛집 프로를 시청하는 여성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누구나 한번쯤 의문을 가졌을 법한, 그리고 누구나 쉽게 유추해낼 수 있는 답이 있지만 누구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던 진실이다. 맛집은 맛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트루맛쇼는 한 음식점이 미디어와 돈의 권력으로 순식간에 이름난 맛집으로 변신해가는 과정을 몸소 현장에서 가감없이 담아냈다.

스크린 속에는 맛집 방송프로그램에 돈 내고 출연했던 사장님이 보인다. 스타를 이용하면 소위 ‘급’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고 설명하는 홍보대행사 직원도 보인다. 단골로 가장된 아르바이트생에게 직접 감탄사와 몸동작을 지시하며 “달지 않지만 달다고 해주세요”라는 PD들도 있다. 이게 바로 1년 동안 1만 개에 가까운 맛집들이 방송을 통해 소개될 수 있었는 비결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여정이 쉽지 않았다. 제작진은 우선 평범한 음식이 맛집에 나올 수 있는지확인하기 위해 4개월 간 분식집을 운영했다. 역시나 반응은 없었다. 이후 맛집 프로그램계의 전설적인 브로커를 통해 방송 출연 계약을 성사시켰으나 브로커가 도주해버리는 바람에 그를 잡기 위해 몇 개월을 허비하기도 했다. 브로커가 자랑하던 ‘캐비어 삼겹살’만큼의 충격적인 요리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일반 홍보대행사를 통해 방송 출연 기회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PD의 지시를 받는 ‘손님 알바’의 모습과, 식당 주인과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방송에 나가기까지의 전후과정을 설명하는 홍보대행사 직원. 처음 가는 음식점에서 작가가 제시하는 ‘컨닝페이퍼’를 보며 단골 행세를 하는 스타, 방송을 타는 이색 요리는 방송용으로 제작된 것이라 고백하는 점주가 등장한다. 업주 대신 자신이 직접 출연해 촬영 당일 즉석에서 만들어낸 기상천외한 ‘방송용’ 음식의 이야기를 자랑스레 풀어내는 브로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미디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싶었다는 김재환 감독. “돈, 협찬, 광고주의 입김, 미디어의 상업화라는 움직임들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면 그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 역시 오염될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조차 돈에 좌우되고 그 누구도 거기에 대한 견제구를 던지지 못하고 있다. 트루맛쇼가 그러한 역할을 하길 바랐다.”

사실 미디어의 뒤틀어진 돈의 관행은 비단 맛집뿐이 아니다. 하지만 왜 ‘맛’일까. 김 감독은 “맛의 세계는 가장 적나라한, 돈에 의해 모든 것이 좌우되며 모든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설명한다.

맛집뿐만 아니라 돈 내고 방송에 출연해 큰 효과를 보는 관행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김 감독은 “누가 돈을 내고 방송에 출연해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나면 그것이 그 세계의 성공의 표본이 되어 버린다. 악의 관행이 번져나가는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행을 가장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프랜차이즈다. 한번의 방송으로 동시다발의 효과. 그 비용마저 각각의 가맹점에게 부담하게 되면 큰 액수도 아니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방송효과는 곧 그 주변의 동종 업종을 말살시키는 반대급부가 생겨난다. 규모의 경제에서 밀려나 방송 출연 기회를 잡지 못하는 작은 음식점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 5년에 걸친 기획과 제작단계를 거쳐 ‘트루맛쇼’를 세상에 선보인 김재환 감독.


“우리나라에 1만개 가까운 식당이 지상파 3사에 나온다는 것, 그만큼 지상파의 시청률을 올려주는 시청자는 천박하다.” 다큐멘터리는 시청자에게도 일침을 가하고 있다. 스스로의 미각이 아닌 거실에서, 방송을 통해 보여지는 모습만을 보고 좋은 음식을 찾으려하는 시청자에게 하는 말이다.

김재환 감독은 “방송과 프랜차이즈에 밀려 좋은 개별 식당들, 오너 쉐프 식당들이 없어지면 장기적으로 굉장히 큰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좋은 재료로 만든 좋은 식당을 알아보는 눈이 없어 스타마케팅이나 방송에 놀아나면 결국 남게 되는 것은 자본력을 가진 프랜차이즈이다. 그런 음식만 계속 먹게 되면 나중에 의료비용도 증가할 수 있다”며 “또한 돈으로 맛의 가치를 사서 성공하는 잘못된 메시지를 사회에 던져주면 그러한 마케팅에 전 사회가 목숨을 걸게 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가 무서운 것이다”라고 말한다.

트루맛쇼를 위해 2년 동안 웨스턴 돔에서 음식점을 운영해 온 김 감독은 “실제로 음식점을 운영해보니 너무 힘들었다. 이렇게 힘든 식당에서 한 끼 좋은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노동하는 분에게, 그리고 그 음식이 정말 좋은 음식일 때에는 충분히 고맙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줘야한다”라고 말한다. 또한 “혹여 방송에 나오지 않아도 괜찮은 맛집이 주위에 있다면 그것이 정말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실제 트루맛쇼의 촬영지인 웨스턴돔 ‘맛 taste’는 현재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촬영을 위해 마련된 식당 한 면을 채운 칠판에는 돈까스와 라면, 떡볶이 등 갖가지 메뉴가 적혀있지만 현재는 제공되지 않는다. 대신 핸드드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조용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김 감독은 촬영 이후 혹시나 궁금하게 여기는 관객을 위해 7월까지 폐업을 미룬 상태다.

트루맛쇼는 현재 고양시에서는 유일하게 롯데시네마 라페스타점에서 상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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