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부부싸움인 줄 알았다.” 수원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여성 살인사건에 대한 경찰의 변명이었다. 112 신고센터의 20여명 직원들이 비명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는 사람 같은데, 부부싸움 아니야”라고 했다 한다.

“단순 성폭행인 줄 알았다.” 안타까운 죽음에 여론이 들끓자 또다시 나온 경찰은 이렇게 말했다. 피의자 오모씨에게 끌려가는 여성을 목격했으나 역시 ‘부부싸움’이라고 생각해 신고하이 않았던 동네 주민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부부사이는 원래 이렇게 폭력적이고, 일방적이라 누군가 오해할까 두렵다. 때리고, 매맞고, 강제로 끌고 가고. 어떤 관계도 폭력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부부는 물론 부모자식 사이도. ‘단순 성폭행’은 무얼 말하는가. 폭력이 용인되고,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 그건 문명사회가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두렵고 떨린다.

불러도 오지 않는 경찰, 신고해도 소용없는 112신고센터. 사석에서 주고받는 말이라지만 씁쓸하기만 하다. 경찰의 무성의한 대응, 부실한 신고시스템. 경찰청장까지 사퇴한 상황에서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된다. 그러나 가정 내 폭행, 성추행, 성폭행 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남편의 폭력에 하루하루 숨죽이며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또한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폭력과 억압을 받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이라는 이유만으로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밤이면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윗집에서 들려오는 소리같은데 남성의 낮은 소리와 여성의 따지는 듯한 음성이 함께 들렸다. 몇 달이나 계속 되는 소리에 하루는 위층으로 올라가보았다. 그런데 위층 아파트 창문 안에서는 어린 여자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다시 한층을 더 올라가보니 그 집에서도 아주머니가 나와 소리의 진원지를 찾고 있었다. 경비실과의 통화 끝에 찾아낸 소리는 뜻밖에도 1층에서 들려왔다. 경비 아저씨가 부부싸움 같다며 1층에 ‘경고 이야기’를 전하고 소리는 조용해졌다.

1층에는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매와 부부가 살았는데 평소에는 아주 사이가 좋아보였다.  궁금해 하는 사이 1층 사람들은 이사를 갔다. 정말 ‘그냥 부부싸움’이었을까 하는 갈등을 오래 했다. 아는 사람에게 이야기했다가 “당연히 신고를 했어야했다”며 야단을 들었다.

최근 성추행, 성폭행 사건을 취재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명예훼손 공방이나 피의자 측의 협박성 주장이 아니다. 피해여성에게도 잘못을 있을 것이라는 가정, 혹은 여성이 ‘꽃뱀’일지도 모른다며 ‘물타기’를 하는 논리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다’는 이상한 양비론을 조사 하는 이들에게서도 종종 듣게 된다.

수원의 안타까운 사건과 관련해 초기 경찰은 피해여성이 지나가는 피의자 오모씨에게 ‘욕설을 했다’는 잘못된 발표를 하기도 했다. 욕을 듣고 화가 난 오씨가 여성을 집에까지 끌고 갔다는 얘기다. 이 주장은 CCTV를 통해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피의자는 여성이 지나가기 전부터 몰래 숨어 범행을 준비했고, 일부러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성추행, 성폭행 피해 여성들은 경찰에서 자신들이 동조하지 않았고, ‘죽을 힘을 다해’ 저항했음을 증명해야한다. 가정 폭력에 희생된 여성들은 자신들이 ‘매맞을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한다. 

강도를 당한 사람이 자신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무능한가’ 혹은 ‘경제적 평이 안 좋은가’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폭행, 가정폭력은 그렇지 않다. 얼마나 ‘착한 성품’인지, 주변에 평이 좋은지, 남편이 있는지의 여부가 때로는 조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옳지 않다. 여성의 비명소리를 전화기 너머로 들으면서 부부싸움인가 아닌가를 고민하는 그  상황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 아프다고 외치면 아픈 게 맞는 거다. 잘못된 가족이데올로기, 아직도 깨지 못한 성의식 때문에 희생당하는 이들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지켜주지 못하고 희생된 그이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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