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기웅 파주출판도시 이사장, 열화당 대표

웃음이 맑다. 땅을 일구는 농부의 웃음이다. 생각은 웃음보다 더 맑았다. 유연하고 잔잔했다. 이 부드러운 힘이 거대한 창조의 원동력이 되었을까.

파주출판도시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마다 이 도시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경외감 같은 것이 솟는다. 또 한편으로는 부러움과 안타까움, 미안함이 겹쳐진다. 출판도시는 원래 일산에 밑그림이 그려졌었다. 이기웅 이사장과 몇몇 뜻있는 출판인들이 모여 일산신도시에 출판도시를 만들기로 의기투합 하고 최선을 다 해 추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땅을 분양하는 토지공사가 400만원 상당의 분양가를 요구하면서 출판도시는 일산에 밑그림만 남긴 채 사라졌다. 몇 년 후 파주에서 출판도시 계획이 다시 추진됐다. 일산과 비교할 수 없는 땅값이 제시됐고, 5만평 규모로 추진됐던 도시는 48만평 규모의 거대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출판도시의 입장에서는 축복이었고, 고양시의 입장에서는 참 아름다운 도시를 품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안타까운 일로 남게 됐다.

출판도시 2단계 사업을 거의 마무리하고, 3단계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이기웅 대표를 만났다. 파주로 이사를 갔는지 물었다. 일산 출판도시가 무너지면서, 마음도 몸도 일산을 떠나고 싶었을 텐데. 그리 묻지는 못했다. 그냥 주거지를 옮겼는지 물었다.

“아내가 일산을 너무 좋아해요. 쇼핑하기도 좋고, 친구들도 많고, 저도 호수공원 산책하는 시간이 좋아 그대로 일산에 살고 있어요. 출판도시 열화당 건물에 숙식이 가능하도록 작은 방을 만들기는 했지요.”

반가웠다. 그 다음, 이기웅 이사장의 3단계 사업구상을 듣고, 더 반가웠다. 이 이사장은 출판도시는 1단계와 2단계를 거쳐 3단계에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3단계 출판도시는 100만평에 이르는 ‘북팜시티’ 이다. ‘북팜시티’는 출판도시 2단계와 이어지는 고양 땅에 설계되고 있었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살찌우는 데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말(글)과 쌀입니다. 이를 구체화 한 것이 곧 ‘출판’과 ‘농사’입니다. 이 두 행위를 건강하게 영위해 갈 도시가 바로 ‘북팜시티’ 입니다. 북팜시티에서 진실한 농부의 마음으로 지은 말과 쌀이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회복시켜 줄 것입니다.”

이기웅 이사장은 1940년 강릉 선교장에서 태어났다. 선교장은 강릉 일대에 대농장을 만들고 농민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면서 어려울 땐 서로 빌려주고 나누어 쓰던 공동체 경제의 중심이었다. 이기웅 이사장은 어렸을 때부터 선교장 마당을 쓸며, 군불을 때며 자랐다. 열화당은 이 선교장의 사랑채로 당시 마을 도서관이자, 출판사의 역할을 했다. 이기웅 이사장의 열화당은 선교장 열화당의 200년 역사를 그대로 잇고 있었다.

이기웅 이사장은 몇 해 전 위암 수술을 받았다. 위를 다 절제했다. 병은 별 것 아니지만, 맘껏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좀 불편하다고 한다. 일산 출판도시가 무산되고,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을 때, 이사장은 안중근 의사의 공판기록을 다시 읽었다. 공판 기록 속 안 의사의 외침을 듣고 ‘나의 고통은 고통도 아니라’는 교훈을 찾았고 다시 출판도시를 일으켜 세웠다. 안중근 의사는 이후 이기웅 이사장의 멘토이자 출판도시의 정신적 감리자가 됐다. 

이기웅 이사장이 마지막 모든 열정을 쏟을 ‘북팜시티’는 한 편의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형체가 잡히지 않는다. 다시 무모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파주출판도시 역시 그랬다. 보이지 않은 가치를 찾아 달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지 않지만, 이기웅 이사장은 참 고요하게 달리고 있었다. 선교장이 가르쳐준 ‘꿈의 마을’을 만들고 싶은 맑은 열정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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