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장사에도 빚 갚고 자매 키워내

녹두부침개 1장 3500원, 김치 부추만두 1인분(5개) 2500원. 싸다. 원당재래시장 바로 입구 오른쪽에 위치한 만두와 녹두부침개 노점. 환한 얼굴의 박양선(57세)씨가 웃으며 맞는다. “아기 엄마들이 많이 사가. 친정 엄마가 해주는 맛 같다고. 나는 고기를 많이 안 쓰고 담백하게 하거든. 이북이 고향인 어른들도 자주 오셔. 녹두부침개랑 김치만두를 이북에서 많이 드시잖아.”

▲ IMF로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노점일에 뛰어들게 된 박양선씨. 그의 얼굴에는 지금껏 고된 장사일을 견디게 한 억척스러움과 긍정이 스며있다.

박양선씨는 2005년 중곡동에서 고양으로 이사 왔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집에서 살림만 하던 박 사장이 나설 상황이 된 것이다. 젊어서는 고생을 많이 하지 않았다는 박씨는 처음에는 울며 기며 장사하러 다녔다고 한다. “어려움 없이 누가 이런 일 하겠어. 처음에 힘들었던 건 말도 못하지. 매일 일 끝나고 기다시피 집에 갔어. 하수구에 가서 울기도 많이 울었지.”
한국화약에 다녔던 남편은 뒤늦게 출판업에 뛰어들었지만 곧 찾아온 IMF에 문을 닫게 됐다. 빚을 안은 채 남편은 건강마저 좋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박 사장이 노점에 뛰어들게 된 이유다.
지금의 원당시장 자리에서 먼 친척이 같은 장사를 하고 있었다. 친척으로부터 만두 빚는 법, 녹두부침개 만드는 비법도 전수받았다. 손쉽게 다 만들어진 음식을 파는 곳들도 있지만 박씨는 모든 재료부터 직접 만든다. 김치만두, 부추만두 속 재료만 집에서 준비해와서 손님들 보는 앞에서 만두 빚고, 녹두부침개도 반죽을 즉석에서 부쳐준다. 한사람 서는 작은 자리에 의자도 없지만, 따끈한 만두와 부침개를 찾는 이들이 제법 많다. 화정, 행신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일부러 오는 단골 고객들도 있다. “앉을 시간은 없어. 잠깐 박스 위에 앉는 게 다지. 하루 종일 만들고, 팔고 하면 하루가 다가지. 그래도 매일 얼마씩 버니까 그 재미에 하는 거지.”
9년여 동안 장사하면서 빚도 갚고, 남매도 키웠다. 아들은 얼마전 결혼을 했고, 딸은 직장에 다닌다. 남편도 이제는 건강을 되찾아 용달차를 운행하며 아내를 도와준다. 이제는 좀 쉬어도 좋지 않을까. “딸 시집보내야지. 애들 벌어도 얼마나 벌겠어. 그래도 내가 벌어서 애들 도와줄 수 있는 게 좋아. 이제는 어려운 시절도 다 갔고.”
힘들었던 시절을 거듭 이야기하면서도 박 사장의 얼굴은 환하다. 겉모습으로는 고생한 티가 나지 않는다. 긍정적인 성격이 아니었다면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박씨는 원당재래시장이 좀더 활성화되고, 서민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재래시장에 주차장, 화장실이 있었으면 하지. 더 바라는 건 없어. 주변에 큰 마트 같은 거 안 들어왔으면 싶고. 우리 노점상들은 서로 사이가 좋아. 어려운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사는 거지.” 처음엔 시장 텃세 때문에도 눈물바람을 많이 했다는 박양선씨. 이제는 주변 노점도 챙길만큼 여유도 생겼다. 오전 9시에 나와서 저녁 9시까지 꼬박 의자도 없이 장사를 해야하는 고된 생활. 그래도 덕분에 빚도 갚고, 아이들까지 키워낸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하다. 원당시장가는 길 입구에서는 잠시 발을 멈추고 박 사장과 반가운 눈인사라도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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