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바보주막 유시춘 이사장

첫 국가인권위원 DJ 유언 “생생해”
작가소임 공익적 글쓰기 전념할 것
수익만들어 바보장학회 만들고싶어
           

▲ 유시춘 바보주막 이사장.
라페스타 E동 2층이 저녁마다 북적거린다. 협동조합 주점 바보주막과 바보호프 덕분이다. 340여명의 조합원들이 ‘의무감’으로 매일 밤 이곳을 ‘불금(불타는 금요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9월 문을 연 바보주막. 바보주막을 운영하는 마중물고파협동조합은 작년 5월 문성근 노무현재단 상임이사의 제안으로 추진돼 8월 20일 발기인 총회를 가졌다. 2억5000만원의 출자금을 모아 첫 사업으로 바보주막을 열었다. 마을도서관, 마을카페, 유통업, 식당, 주점 등의 설립해 고양과 파주지역경제와 마을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마중물협동조합은 바보주막을 기점으로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개업 1주년을 맞아 22일에는 유시민, 이해찬 강좌, 23일 권해효, 손병휘 토크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바보주막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유시춘(64세) 작가를 만났다. “협동조합 총회에서 나를 불러서 무보수 명예직이라면서 맡겼죠. 그런 직함이 3개나 되는데. 다행히 조합원들이 열심히  해서 1년 만에 경영 정상화가 됐어요.”


유시춘 이사장은 서울에서 1996년 정발산동으로 이사를 왔다.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다고. 당시 전 김대중 대통령도 정발산동에 살고 있어 자주 손님접대를 대신했다고.


“그때 싸릿골이라고 음식점이 있었는데 김대중 대통령님 만나러 온 민주화 인사들을 거기서 접대를 했죠. 그래서 그 식당이 대통령인 소유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지요.”


김대중 대통령과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때 인연을 맺었다. 동생인 유시민 전 정관이 구속되면서 유시춘 이사장은 현역 교사 신분으로 민주화추진협의회를 만들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어려운 시절이었다.


“유시민이가 쓴 항소이유서를 타자로 쳐서 500부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었어요. 그걸 보고 김대통령님이 부르시더라구요. 생각보다 미남이셨죠. 이후에도 양심수들 영치금 넣어달라고 몇 번 불러서 돈을 주시곤 했지요.”


그이후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 작업에도 참여해 50여회 차례 구술을 받고, 돌아가시기 직전 유언을 듣는 자리에도 함께 했다.


“김대중 대통령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동교동 자택으로 필진들을 불러 하신 마지막 말씀이 생생해요. 꼭 기록해달라고. 벌써 말투가 어눌한 상황인데 이명박 정부가 정말 민주주의의 역주행을 하는 걸 막아야 한다고.”


유시춘 이사장은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교사, 작가로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왔다. 2001년에는 처음 생긴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을 맡았고, 이후 문화정책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1년에 국회추천으로 국가인권위원으로 활동했죠. 그 당시 11개국가에만 인권위원회가 있었는데 최초의 우리 정부 인권위원회를 유엔에서는 가장 모범적인 인권위라고 추천했지요.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민의 정부’가 빚은 보석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참 답답하죠”


유시춘 이사장은 앞으로 작가로서 글을 쓰는 일에 전념하고 싶다고. 바보주막은 조금더 자리를 잡아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바보장학회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글쓰는 것은 작가가 해야할 역사적 소임이죠. ‘공익적 글쓰기’라고 생각하는데 민족의 가치를 젊은이들에게 전파하는 게 우리 세대의 임무라고 느껴집니다. 세월호 사건보면서 침묵하는 대학생들이 너무 안타까워요.”
유시춘 이사장은 상근은 아니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바보주막에 매일 출근한다. 이사장답게 “모임할 때 자주 이용해달라”며 바보주막 홍보도 잊지 않았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