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특강

 

▲ ‘2014고양시민대학 공개강좌’로 고양을 찾은 박경철 원장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인문학이란 운명에 당당히 맞서 싸우며 끊임없이 도전하고 탐구하는 인문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운명에 맞서 싸우는 것이 인간의 본성

모순 가득한 현실 치열하게 살아야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의 강연이 지난 달 21일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에서 열렸다. 박 원장은 2014고양시민대학의 공개강좌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인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최근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의 근원을 돌아보고, ‘인문학적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3천년의 인류 역사를 가로지르며 열강을 펼쳤다.

박 원장 평생 독서의 절반은 그리스를 대표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문학 작품이었다. 그는 박 원장 인생의 영웅이자 삶의 좌표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문학과 삶 속에 녹아 있는 인문정신의 실천에 대한 오마주(hommag)와도 같았던 이날 강의 내용을 소개한다.


지금 왜 인문학인가

요즘 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문과에 들어가면 죽음’이라며 인문계는 아무 소용없는 분야로 취급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의대나 경영대, 이공계 같은 실용적인 학과에 진학해야한다고 자녀들을 세뇌시킨다.

반면 사회에서는 인문학이 뜨거운 화두다. 그 학부모들 자신도 우리 사회가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의력, 인문적 소양의 부족으로 이렇게 황폐해졌다며 여기저기서 열리는 인문학 강좌를 찾는다. 왜 이런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리가 제대로 된 인문학적 고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와의 운명적 만남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처음 만난 것은 30년 전 의대 본과 1학년 시험이 끝나고 학교 앞 서점에 들러 우연히 뽑아들었던 ‘그리스도 십자가에 다시 못 박히다’와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두 권의 책을 통해서였다. 자취방으로 돌아와 책을 읽는 동안 문장과 문장들이 충돌하면서 불꽃이 튀어 오르고 마치 나의 온몸이 활활 불타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30시간동안 쉬지 않고 몰입하며 그의 책을 읽었다.

다음날 대구 시내 서점을 모두 뒤져 4권의 책을 더 사서 읽었다. 급기야는 그가 쓴 60여 권의 소설, 에세이, 자서전 등을 모두 다 구입해서 4번을 완독했고 심지어 일기, 메모까지 구해서 읽었다.

▲ 박경철 원장은 니코스 카찬차키스를 따라가는 3번째 순례여행중에 그리스유적을 따라 대영박물관도 찾았다.

도대체 그의 책에 무엇이 담겨 있었기에 21살 내성적인 청년인 나에게 그러한 열정을 불어 넣었을까? 그것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의 작품에서 ‘인간, 문명, 자유’에 대해 노래하고, 평생의 삶을 통해 인문정신을 실천하며 살았기 때문이었다.


운명에 맞서 싸운 최초의 인간 오디세우스

우리들의 시각을 3천 년 전 지중해로 이동해보자. 발칸반도의 끝에 있는 그리스는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산봉우리가 20개 이상이고 국토의 70%가 대부분 돌산인 너무나 거칠고 척박한 땅이었다. 그런 땅에서 살았던 그리스인들은 신이 부여한 운명에 순응하고 굴종하라는 고대의 시대정신을 부정하고 운명에 맞서 싸운 인류 최초의 인간상을 제시한다. 바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라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다.

오디세우스는 신에게 굴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에 맞서서 도전하고 마침내 그 운명을 넘어서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 인류 최초의 주인공이다. 상상력 넘치는 그리스 신화, 연극, 미술 등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예술 작품의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다.

▲ 박 원장은 청년시절 가슴에 묻어두었던 꿈을 펼치기 위해 그리스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문명을 순례했고, <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라는 인문학 여행서를 내기도 했다.

그리스인들은 신화와 미신의 틀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원자론을 주장하며 과학과 천문학을 발전시켰고,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을 통해 철학을 만들었다. 변호인제도, 배심원 제도와 같은 근대적 법제를 만들었고, 페르시아 전쟁을 거치면서 인류 최고의 축복인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했다.

왕이나 지도자의 고독한 결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토론하고, 모두의 합의를 도출하여 그들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 최초의 시도이다. 그리스인들은 신이 아닌 인간중심의 문화와 철학과 과학, 제도를 이룩한 것이다.

암흑의 시대 중세, 오디세우스의 부활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운명에의 순응이라는 고대 정신을 깨부순 그리스인. 그러나 로마제국 멸망 이후 중세시대에는 오디세우스가 금기어가 되어버리고 인류는 1000여 년간의 긴 암흑기를 거치게 된다. 중세의 기본 정신은 기독교 정신이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자 종으로서 자신을 철저히 낮추며 신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강요당했다. 인간에게 현세는 더러운 본성을 정화하여 천국이라는 다음 생으로 가기위한 정거장일 뿐이었다.

그러나 탐험과 도전, 운명에 맞서 싸우는 투쟁의 정신이 내재 되어 있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본성이다. 1321년에 완성된 단테의 ‘신곡’에서 금기어였던 오디세우스가 다시 호출되었고, 마침내 인류는 중세라는 긴 암흑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다시 그리스로 돌아가자’며 인간 본성을 회복하기 위한 르네상스 운동을 일으켰다.

▲ 신곡을 쓴 '단테'는 피렌체의 자치권을 주장하는 '백당'이어서 체포시 화형이라는 예비판결을 받고 망명자가 되었고, 카쟌챠스키는 당시 단테의 비망록에 매료되어 있었다고 한다. 단테의 집에 있는 단테 초상화 앞에 선 박경철 원장.

진격의 거인, 근대 문명의 괴물

이사야마 하지메라는 일본 작가의 만화 ‘진격의 거인’을 보자.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무엇 때문에 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거인들이 인간을 잡아먹는다. 높은 성벽 안에 갇힌 인간들은 끊임없이 도망가거나 혹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괴물과 맞서 싸우기도 한다.

“땅에 떨어지는 새는 바람을 애타게 기다리네.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지금을 바꿀 수 있는 건 싸울 각오뿐이야.”

만화 주제가인 ‘홍련의 화살’을 부르며 일본과 한국의 청년들은 울부짖는다. 그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전쟁이나 핵발전소와 같은 근대 문명이 잉태하고 있는 위험, 치열하게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해도 기다리는 건 청년실업이나 비정규직 일자리뿐이라는 캄캄한 현실 등에 대한 절망감의 또 다른 표현은 아닐까? 그들은 기성세대를 기존의 질서와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라고 강요하는 고대정신의 소유자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일본 이사야마 하지메라의 만화 ‘진격의 거인’은 한국과 일본의 20~30대 젊은이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며 각종 '진격의 000' 패러디를 낳았다.

운명과 맛서는 것이 인문정신의 핵심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남의 아내를 탐하는 더러운 면이 인간의 본성인가? 오히려 운명에 맞서 운명과 싸우고 운명을 극복한 오디세우스로 표상되는 그리스적 인간상이 진정한 인간의 본성 아닌가?

▲ "To strive, to seek, to find, and not to yield." 박 원장은 영국의 시인 ALFRED, LORD TENNYSON의 시 'Ulysses'의 시의 마지막 이 구절이 인문정신의 핵심을 표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내 삶을 통틀어 주어진 운명에 맞서서 분투하고 있는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과 이상을 추구하고 있는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찾고 있는가, 나와는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을 위해서도 헌신하고 봉사하는가,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인문학적 사유의 핵심이다.

이런 인문정신을 치열하게 실천하며 74세에 생을 마감한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죽음을 4시간 앞두고 “나는 이제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지쳤거나 두렵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해가 저물었기 때문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남겼다. 그리스로 직접 찾아가서 만난 그의 무덤 앞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다. 나는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박경철 원장(외과전문의·지식나눔네트워크 대표)

영남대 의대를 졸업했고, 외과의사로 활동하며 안철수 의원과 청춘콘서트 등의 강연, MBN 방송, 저술가,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이십대 청년 시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을 읽으며 그를 인생의 좌표이자 영웅으로 삼았다. 그 청년시절 가슴에 묻어두었던 꿈을 펼치기 위해 그리스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문명을 순례했고, <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라는 인문학 기행서를 내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2>,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 2>,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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