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에 사는 문학작가를 찾아서 - 천수호 시인


마흔 나이 늦깎이 신춘문예 데뷔
“시는 제 약점 위로해주는 것 같아
… 연민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

천수호(51세) 시인은 고양에 살아온 지 올해로 만 10년이 된다. 고양에 이사 왔을 당시 천 시인은 남편이 실직해서 정서적으로 불안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현재 천 시인이 살고 있는 주엽동 일대의 일산신도시는 깨끗하고 안정되어 있다는 느낌에 그대로 정착했다고 했다. “고양으로 이사 와서 비가 오던 날 처음 호수공원에 가봤어요. 인공호수이지만 자연호수같은 느낌이 참 좋았어요. 어릴 때 봐왔던 꽃과 풀을 다시 기억에서 끄집어내주기도 했어요”라며 호수공원에 대한 인상을 말했다.

사물에 대한 감수성 유난했던 소녀 
1남 5녀 중 넷째 딸로 태어난 천수호 시인은 유년시절 가정에서 존재감이 별로 없는 순한 아이였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에게 없는 특별한 면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사물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감성이었다. 천 시인은 유년시절부터 주의 깊게 사물을 관찰하고 교감했다.
천 시인이 8살 때 산길에서 본 나리꽃도 깊이 각인된 사물 중 하나다. 이 나리꽃과 꽃 주위에 서있던 한 벌거벗은 여자를 모티브로 쓴 시가 바로 ‘나리꽃’이다. 지금 추정해보면 그 벌거벗은 여자는 당시 미군부대가 있는 산에서 매춘행위를 하는 여자 중에 한 여자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도 했다.
긴 머리카락으로 맨몸을 가리고 있던 나리꽃 // 내려다보이는 사거리 바보식당을 가리키며 / 옷가방을 갖다달라던 / 입술이 긴 속눈썹 // 손에 꼭 쥐여주던 쪽지도 나는 계속으로 던져버리고 /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음박질쳤는데 / 그 쪽지는 급물살 타고 아득히 멀어져갔는데 <시 ‘나리꽃’ 중에서>.
벌거벗은 여자를 귀신이라고 착각한 채 겁을 집어먹은 8살 당시의 시인은 그 여자가 쥐어준 쪽지를 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40년을 보냈다. 시인에게 이러한 지독한 감성은 일종의 병이자 축복이었다. 사물에 취해 시름시름 앓는다는 점에서 ‘병’이었고, 사물을 더 깊고 풍부하게 느낀다는 점에서 시인으로서는 ‘축복’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국어선생님이 비가 오는 날 교실의 커튼을 내린 채 조지훈 시인의 ‘승무’를 큰소리로 낭송하셨어요. 그 때 노래도 아닌데 왜 시가 나에게 울림을 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에 대한 흥분을 그 때부터 느낀 거죠.”
천 시인은 3명의 아이를 키우는 주부로 마흔에 가까웠을 무렵 신춘문예에 ‘옥편에서 미꾸라지 추(鰍)자 찾기’라는 독특한 제목의 시로 문단에 데뷔했다. 신춘문예로 데뷔한 후 ‘아주 붉은 현기증’과 ‘우울은 허밍’이라는 2권의 시집을 내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 2권의 시집 외에 시인의 어머니인 김천조님의 글에 천 시인의 시를 함께 엮은 시집 ‘저 산 간다 저 산 잡아라’라는 시집도 펴냈다.

치매 앓은 아버지, 시집에 빈번히 등장   
천 시인에게 가족, 특히 어머니와 아버지는 시의 중요한 모티브가 됐다. ‘내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을 때’라는 시도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와 관련된 일화에서 태어난 시다.
내게 전에 없이 따뜻한 손 내밀며 / 당신, 이제 집으로 돌아가요, 라고 짧게 결별을 알릴 때 // 나는 가장 쓸쓸한 애인이 되어 // 내가 딸이었을 때의 미소를 버리고 / 아버지의 연인이었던 눈길로 // 아버지 마지막 손을 놓는다 <시 ‘내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을 때’ 중에서>.
“치매를 앓으시는 아버지가 하루는 저를 보면서 편안하면서도 야릇한 웃음을 웃는 거예요. 그 때 저를 보고 ‘수호씨’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까. 놀랐어요.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저를 연인으로 생각하신 거예요. 아버지가 다섯 명의 딸 중에서 저를 가장 먼저 지웠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행복한 한 순간을 재현해드렸다는 점에서 제가 효녀라는 생각도 든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이었어요.”
천 시인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물에 대한 연민을 붙잡고 있을 때 현실적인 손해를 감수해온 시인이다. 천 시인은 “제가 어릴 때부터 사물에 대한 연민이 많았어요. 주로 힘없고 외따로 떨어져 있는, 이를테면 돌멩이, 폐교 같은 것에 대한 연민이 세상에 대한 저 나름의 이해법이었습니다. 이것이 지나쳐서 늘 사람들에게 지적받곤 했어요”라고 말했다.

작가의 집에서 기자와 이야기하는 천수호 시인. 작품을 읽고 구상하는 곳은 주로 주방의 식탁이다.

존경했던 이성복 시인으로부터 글공부
천 시인은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지만 그 역시도 큰 스승 밑에서 시를 배웠다. 큰 스승이란 바로 이성복 시인이다. 1980년대 시를 써보겠다고 하는 문학청년들 중에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남해금산’ 등 이성복 시인이 낸 시집의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성복 시인은 문단에서는 가장 각광받는 시인이었다. 천 시인은 이성복 시인을 너무 존경했기 때문에 그가 교수로 있던 학교를 선택해 그의 밑에서 공부를 했다.
“제가 어떻게 보면 이성복 선생님이 배출한 첫 시인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성복 선생님이 대구 계명대 불문과에서 문예창작과로 과를 바꾸면서 그 이후 배출한 석사 1호가 저입니다. 이성복 선생님과 같은 연구실을 쓰기도 했어요. 선생님은 굉장히 여리신 분이지만 정신을 올곧게 세우시는 분이었어요.”
천수호 시인은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는 제가 가진 모든 약점들을 위로해주는 것 같아요. 사물이 지피는 불길에 데인 흔적들과 그 기억의 편린들을 드러내고 말함으로써 내가 정화된다는 느낌도 들고요. 시를 쓰면서 사물이 가지는 불길을 발견해내는 기쁨이 굉장이 크죠.”




천수호 시인의 주요 시집들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2009년에 발간된 천수호 시인의 첫 시집. 천 시인에게 있어 시는 연민에서 출발한 사물 이해법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시집에는 유년시절 각인된 사물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 내고 그 외딴 것들에 대한 연민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시집 ‘우울은 허밍’
2014년 펴낸 천수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쉽게 드러나지 않은 언어의 은밀한 뜻, 시인은 귀로 들었음직한 그 숨은 뜻를 다시 우리들의 귀로 들려주려 한다. 그러니 이 시집은 귀기울여  읽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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