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고양에 정착해 알려진 대부분 작품 발표

현재 일산동구 정발산동 밤가시마을에 사는 이순원(57세) 작가는 30년 가까이 고양에서 산 고양시민이다.『은비령』, 『19세』, 『그대 정동진에 가면』등 주요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발표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모두 고양에서 쓴 것이다.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많이 쓴 그는 “고향으로서 강원도를 그리워하겠지만 다시 강원도로 갈 생각은 없어요. 될 수 있으면 고양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40대부터 저의 삶을 고양에서 시작했는데 여기서 쓴 작품이 깊이도 더해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고양의 여러 길 중에서 백마역에서 일산역까지의 산책로를 거닐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근황을 묻자 계간지인 문예중앙에 장편소설인 ‘삿포로의 연인’을 연재하고 있다고 했다.

고교 때 농사짓겠다며 학교 그만둬
이 작가는 청소년 시절 어른들이 감당하기 힘든 ‘일탈’도 저질렀다. 가령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난데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2년 동안 대관령으로 올라가 배추농사를 짓기도 했다. 이 작가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어른이 될 때까지 대관령에 주저앉아 계속 배추농사를 지었다면 자신의 길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럴 배포가 없었던지 다시 2년 만에 학교로 돌아갔지만, 일탈한 2년 동안은 작가로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됐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만약 제가 작가가 되지 않고 은행에 다녔다면 그 2년은 인생에서 보상되지 않는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작가가 되었기 때문에 그 방황의 시간이 오히려 소중해진 거예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 2년의 일탈은 『19세』라는 작가의 자전적 소설을 태어나게 했다. 『19세』는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견주어지기도 하면서 국내의 대표적인 성장소설로 간주되고 있다. 

▲ 강원도 강릉 출신이지만 이순원 작가는 고양에서 『은비령』, 『19세』, 『그대 정동진에 가면』등 거의 대부분의 주요작품을 썼다. 이 작가는 “작가들 중에는 유목민처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 글이 잘나온다는 작가도 있지만 저는 제 집에서, 제가 보던 책이 놓여진 작업실에서 많은 글을 쓴다”고 말했다. 사진 = 이성오 기자

그렇다고 이 작가가 청소년기에 ‘삐딱선’을 탄 건 아니다. 그는 중학생 시절 이미 난해할 법도 한 세계문학을 두루 찾아 읽었다. 연애감정을 모르는 어린 나이에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을 정도로 문학적으로 조숙했던 것이다. 그는 군대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읽는 것 하나만은 열정을 다 바쳤다. 이 작가는 “책 읽기가 제가 썼던 소설의 토양이 됐어요. 글을 쓰겠다고 덤비는 습작생들이 언제부턴가 읽는 일엔 거의 손을 놓고 쓰는 일에만 몰두하는 경우를 봅니다. 때로는 ‘내 것 쓰기도 바쁜데 남의 것 읽을 시간이 어디 있나?’ 라는 말을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이건 그 ‘바쁨’이라는 이름의 게으름을 내세우는 것뿐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작가는 정작 대학은 문학 분야가 아닌 경영학과를 선택해 공부했으며 직장 역시 신용보증기금에서 10년간 일했다. 작가는 문단에 데뷔하기 전까지 문학 바닥과는 거리가 먼 분야를 골라 다녔던 것이다.

“글을 써서 밥 해결할 자신 있었다”  
이순원 작가가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소설로 ‘밥’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최소한 전업작가가 되겠다면 1차적으로 어떻게 자신의 글이 ‘밥’이 되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글에 대한 열망이 강해도 밥을 해결하지 못하면 글도 없는 거예요. 저는 젊은 작가들에게 ‘많이 팔리게 글을 쓰라’고 주문해요. ‘대중적인 작가를 비난하지 마라. 그것은 너의 콤플렉스일 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해요. 제가 말하는 많이 팔리는 글이란 대중에 영합하는 글이 아니라 대중과 소통하는 글입니다.” 

이 작가는 1988년 문학사상에 ‘낮달’을 발표하며 데뷔한 것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가 당선되며 데뷔했다. 말하자면 중앙문단에서 주목하지 않아 ‘재등단’을 한 것이다.

작가의 작품 중 영화화되기도 한 출세작 『지금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는 자본주의에 물든 상류층의 타락상을 비판한 작품이다. 그러나 소설은 비판했지만 현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품이 발표되던 때의 압구정동은 하나뿐이었지만 자본주의는 현재 국내에 수많은 ‘압구정동’을 양산했다. 그렇다면 소설문학이 다다를 수 있는 기능은 현실적으로 공허한 것일까. 그럼에도 왜 작가는 소설을 쓰는 것일까. 이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발표된 지 40년이 지났어요. 40년 전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작가에게 테러를 하라고 요구하는 건 적절하지 않아요. 작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보여주는 사람일 뿐이에요. 가령 작가는 거대한 잠수함 안에 일부러 넣어둔 토끼 같은 거예요. 그 토끼는 기계가 감지하지 못하는, 심해에서 닥칠 사태를 가장 민감하게 감지하고 반응하거든요. 작가는 그 토끼처럼 미리 경고하는 거예요.”

이 작가는 ‘이것이 문제다’라고 발언하는 것은 문학의 몫이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을 재편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라고 했다.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발표된 지 40년이 지났어요. 40년 전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작가에게 테러를 하라고 요구하는 건 적절하지 않아요. 작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보여주는 사람일 뿐이에요. 사진 = 이성오 기자

 

소설작품 속 ‘은비령’ 실제 지명으로 탄생 
이순원 작가의 작품세계는 지난 30년간 많이 변했다. 초기 작품들이 현실에 대한 비판의 성격이 강했다면 『은비령』, 『아들과 함께 걷는 길』  그 이후의 작품들은 인간 내면세계의 아름다움에 천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작가는 그 이유를 시대의 변화와 나이의 변화, 이 두 가지로 들었다.

 

▲ 이 작가에게 세월은 드러나는 표피만 보는 것이 아니라 표피 안쪽의 깊은 곳을 헤아릴 수 있는 안목을 가져다줬다. 그에게 현대문학상을 안긴 ‘은비령’ 같은 작품도 30대 시절에는 결코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 = 이성오 기자
“제가 초기작을 발표하던 1980년대 문학은 사회변혁을 위해 거리 한가운데로 호출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동서이데올로기의 한축이 무너지며 거대담론 역시 와해되면서 상대적으로 소설의 미학적 측면이 부각 됐어요. 한편으로는 나이가 가르쳐주는 인생의 깊이를 알아가기 시작했구요. 저는 40대 시절에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가였지만 50대인 지금이 작가로서 가장 충만한 상태라고 생각해요.”

 

이 작가에게 세월은 드러나는 표피만 보는 것이 아니라 표피 안쪽의 깊은 곳을 헤아릴 수 있는 안목을 가져다줬다. 그에게 현대문학상을 안긴 ‘은비령’ 같은 작품도 30대 시절에는 결코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은비령’은 과부인 여자와 별거 중인 남자가 만나 이루어지는 중년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은비령’의 실제 위치는 한계령 바로 밑이 본래 지명에는 존재하지 않던 곳이다. 그러한 ‘은비령’을 많은 사람들이 찾다보니 이제는 ‘은비령’이 네비게이터에도 존재하는 실제 지명으로 표기된다. 문학작품에서 불리던 이름이 실제 지명화 된 희귀한 경우인 것이다.  


모든  글쓰기 그렇겠지만 소설 쓰기 역시 고달픈 정신노동이다. ‘나는 왜 이정도 밖에 쓰지 못하나’하는 자기 재능에 대한 절망을 순간순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고통 속에서는 창조의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쓰게 된다. 이 작가는 “돈을 많이 가져서 얻는 행복도 있고 권력을 많이 가져서 얻는 행복도 분명 있어요. 저는 글 쓰면서 느끼는 고통 속에도 행복이 있으니까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 가지는 특별한 취미가 있다. 바로 짬뽕 요리하기이다. 작가는 짬뽕을 한 그릇 만드는 데 최소한 1시간 이상 걸린다고 했다. 짬뽕이나 파스타 등 음식을 만들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이런 저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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