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에 사는 문학작가를 찾아서 최제훈

전복적 상상력과 위트 버무린 소설
새로운 소설 형식, 문단에 신선한 반향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차용해 개성 넘쳐

추리작가인 코넌 도일은 소설 속에서 셜록 홈즈를 폭포에 빠져 죽은 것으로 처리한다. 이 성의 없는 끝맺음에 셜록 홈즈를 사랑했던 독자들로부터 맹비난을 받게 된 코넌 도일은 결국 죽은 셜록 홈즈를 되살려 낸다. 셜록 홈즈는 결국 자살(실제로는 심장마비)한 코넌 도일보다 오래 살게 됐다. 그리고 셜록 홈즈는 자신을 창조한 코넌 도일의 죽음을 발군의 추리력으로 조사한다.

최제훈(42세) 작가의 소설 속에는 이런 식으로 현실인물인 코넌 도일과 가상인물인 셜록 홈즈가 조우한다. 그의 소설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이 현대로 오면서 원작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추적하기 위해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와의 인터뷰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서다.

또는 인육을 먹고 젊음을 유지하는 퀴르발 남작을 주인공으로 한 미국 공포영화가 있었다는 설정 아래 이 영화와 리메이크작, 영화의 원작소설을 둘러보기도 한다. 그는 이처럼 현실과 환상, 사실과 허구 사이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완성도 있는 이야기 한 편을 짜 만들어내는 데 귀재다.  

경영학도에서 문학도로 변신

 

▲ 최제훈 작가의 소설은 ‘새롭다’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소설만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서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일산서구 주엽동에 사는 최제훈 작가는 지난 2월 결혼한 ‘새신랑’이다. 사진 = 이성오 기자

 

최제훈 작가는 올해 일산서구 주엽동 문촌마을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장항동 오피스텔에서 3년 가까이 혼자 글을 쓰다가 지난 2월 결혼해 주엽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신혼인 그에게 결혼으로 작가의 일상에 변화가 없는지 묻자 “아직까지 못 느낀다”고 답했다.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으로 단숨에 평단과 독자로부터 주목을 받은 최제훈 작가는 한동안 ‘새롭다’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문화공학적인 새로운 출구’, ‘새로운 소설 형식의 발견’ 등 그의 소설에 대한 이같은 상찬은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기발한 상상력과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실력에서 연유한다.

그렇지만 그가 처음부터 소설을 쓸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느 대학생처럼 기업체에 취업하기 위해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렇지만 남들은 취업하는 나이인 28살에 그는 서울예대 문창과에 들어가 소설이라는 바다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그는 문창과에서 갓 고교를 졸업한 학생부터 50대 아주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과 학생들에 섞여 소설에 흥미를 가졌다.    

“글을 쓰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원래 책 읽기는 즐겨 했는데 직접 글을 써볼 생각을 하지 않다가 학교 문예공모전에 소설을 내기 위해 한번 써 봤어요. 그런데 쓰면서 재미를 느낀 거예요.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국문학과에 가서 소설 관련 수업도 듣기도 하고 소설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또 재미있더라구요. 나한테 이 길을 맞는가 싶기도 하구요.”

새로운 형식, 새로운 상상력의 작가
문창과를 졸업하고 그나마 글 쓸 시간이 있다고 본 서울예대 교직원 생활을 4년 동안 했다. 그렇지만 직장생활과 소설쓰기를 병행한다는 것이 어렵다고 느낀 최 작가는 중대한 전환을 결심했다.

 

▲ 그의 소설은 기발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너무나 현실적이며 유머러스하다고 느끼는 순간 섬뜩해지기도 한다. 사진 = 이성오 기자

본인의 말로는 ‘실업상태의 소설가’라지만 실질적으로 ‘전업’을 결심한 것이다. 그는 “벌어놓은 돈을 2년 동안 생활비로 쓰고 오로지 소설에만 전념해보자”는 생각으로 직장생활을 그만뒀다. 2007년 데뷔작으로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소설 부문)을 안긴 단편 ‘퀴르발 남작의 성’을 비롯해 첫 소설집의 반 이상의 단편을 이 때 써놓았던 것이다.

34살에 문단에 데뷔해 단 1년 만에 8편의 단편을 묶은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이 나오게 된 이유다. 이 첫 소설집에는 셜록 홈즈, 프랑켄슈타인, 마녀 등 서구적 캐릭터가 많이 등장했다.

“셜록 홈즈든 프랑켄슈타인이든 마녀든 제가 관심있는 캐릭터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상상력으로 덧입혔어요. 이런 가상의 캐릭터가 지금까지 오래 살아남은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캐릭터가 처음 탄생한 이후 오랫동안 사람들과 상호작용 하면서 그 변화의 여정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여정을 다뤄보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소설 속에 녹였어요.”

최 작가의 단편 ‘괴물을 위한 변명’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은 원래 ‘번듯한 정장만 입혀 놓으면 존 그리샴 소설에 변호사로 등장해도 손색없는 달변가’였다. 그러다가 19세기 연극무대, 1910년 에디슨 스튜디오, 1931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극심한 무대 공포증’ 탓으로 거의 벙어리나 다름없는 언어구사력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계속 책장 넘기게 하는 이야기꾼
최제훈 작가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특유의 재미를 선사한다. 그의 소설은 기발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너무나 현실적이며 유머러스하다고 느끼는 순간 섬뜩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독자들이 책장을 계속 넘기게 하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힘을 가졌다. 최 작가는 퀴르발 남작, 셜록 홈즈, 프랑켄슈타인 등 서구적 캐릭터를 가지고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문학 기법을 차용하면서 소설문학의 경계를 확대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런데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거나 사회적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소설을 쓰고 싶은 작가적 욕망은 없을까.  

 

사진 = 이성오 기자


“제가 사회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제 소설이 삶의 본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 소설도 제가 살아온 경험을 자양분으로 쓰여졌어요. 저는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직접 다루기보다는 제 상상에 의해 뒤집어서 보여주는 방식을 사용했을 뿐이죠. 작가들마다 관심 영역이 다 다르잖아요.”

최 작가는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은 독자들에게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을 주고 싶다고 했다. 이 소설집의 에필로그격인 맨 마지막 작품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는 이전 7편에 나왔던 모든 등장인물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한바탕 뒤풀이를 벌이는 형식으로 소설집을 마무리한다. 그는 이러한 마무리에 대해 “제 소설에 등장했던 모든 캐릭터가 소설 밖에서도 다 제각기 살아가면서 이야기를 가지는데 제 소설은 그 일부만 보여준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

최제훈 작가의 주요 작품들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

작가의 2007년 데뷔작인 ‘퀴르발 남작의 성’을 포함해 8편의 단편소설이 ‘재미의 종합선물세트’같이 역어져 있는 소설집이다. 현실과 환상,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빛나는 저자의 첫 번째 소설집. 흥미로운 추리와 신선한 유머 감각 등이 소설쓰기의 새로운 형식에 실려 뒤죽박죽 이야기가 펼쳐진다.

 

----------

장편소설『일곱개의 고양이 눈』

각각의 고유한 개성을 지닌 네 개의 중편이 하나의 거대한 장편 서사를 이루어간다. 연쇄살인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모임인 인터넷 카페 '실버 해머'에서 선택받아 초대된 여섯 명의 사람들. 그들은 산장에서 카페 주인 '악마'를 기다리지만 정작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게임이 시작되는데…. 이러한 ‘여섯번째 꿈’을 시작으로 유기적인 연결 고리 안에서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

장편 『나비잠』

대형 로펌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법무법인 ‘사해(四海)’의 변호사 최요섭을 주인공으로 꿈에서 인간의 무의식에 짓눌려 있던 욕망이나 불안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생생하게 그려냈 작가의 두번째 장편소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