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에 사는 문학작가를 찾아서 10. 백가흠

최근 중년의 상처 다룬 『四十四』 펴내
세상의 부조리 체질적으로 불편한 작가
“작가에게 중요한 건 체험이 아닌 시선”

백가흠(41세) 작가의 소설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와 닮아있다. 밑바닥 인생을 다룬 김기덕 영화의 소설 버전이라 할 만하다. 그의 첫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만 해도 그렇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에서는 늙은 어미를 상습적으로 두들겨패는 아들과 ‘엄마’라고 부르는 여자와 섹스하는 젊은 남자가 등장한다. 같은 소설집의 ‘밤의 조건’에서는 인터넷 채팅으로 아내의 몸값을 흥정한 뒤 아내에게 매춘을 강요하는 남편이 나오기도 하고, ‘구두’에서는 자발적 매춘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아내와 일가족 모두를 죽이고 자살하는 남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 특히 여성을 가만히 놔두지를 않는다. 

이렇게 작가의 작품은 여성에 대해 이뤄지는 남성의 광적인 폭력을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도대체 이것을 쓴 작가 자신의 성장기는 어땠을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백 작가의 인상은 소설과는 정반대로 ‘반듯한 모범생’쪽에 가까웠다. 

▲ 백가흠 작가는 최근 ‘우울한 사십대’의 이야기를 다룬 네 번째 소설집 『四十四』를 펴냈다. 백 작가는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속으로는 상처 투성이 40대 삶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 = 이성오 기자

생존만이 목적인 중년의 씁쓸함 다뤄 
백가흠 작가는 최근 네 번째 소설집『四十四』를 펴냈다. 작가는 이 소설집을 통해 겉으로는 20~30대에 비해 평온하지만, 속으로는 가득찬 울음을 터트리고 싶은데, 책임지고 의식해야 할 것이 이미 많아져서 꾹 참고만 사는 나이인 40대의 인생을 다루고 있다. 

“삶의 목표와 목적이 오로지 생존이 되어버린, 그냥 살기 위해 살고 있는 왜소해진 중년의 씁쓸함을 다루고 싶었어요.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속으로는 더 조급하고 더 불안하고 잔뜩 금이 간 삶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그것은 앞으로 닥쳐올 제 중년에 대한 일갈이기도 하구요.”

『四十四』를 쓴 이유로 밝힌 작가의 말이다. 이제 작가도 40대로 접어들어서인지 이 소설집에서 초창기 소설에서 보였던 강간, 매춘, 구타 등 직접적 폭력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 속에 도사린 칼날, 상처를 주는 소문, 안 좋은 기억에 대한 트라우마 등이 작가가 이전에 그렸던 직접적 폭력을 대신하고 있다.

“제가 영화를 참 좋아해요. 김기덕 감독이 만든 영화는 다 본 것 같아요. 제가 굉장히 존경하는 감독이죠. 제가 그리스에 체류할 때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을 불법다운로드 받아서 볼 정도였어요. 그런데 김기덕 감독의 영화나 홍상수 감독의 영화나 흡사하다고 볼 수 있어요. 저에게 20대 때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훨씬 잔혹하게 느껴졌다면 나이가 들면서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데도 견디기 힘든 상황이 연출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더 좋아졌어요.”

이 말처럼 백 작가가 생각하는 ‘무엇이 폭력인가’ 라고 물으면서 폭력의 범주도 넓혀왔다. 초창기에는 일부 젊은 작가들이 구사하는 능청스러운 유머는 완전히 제거하고 인간 특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우리 사회에 뻗쳐져 있는 폭력구조를 파헤치고 있다면, 최근작 『四十四』는 나이를 ‘잘 못’ 먹은 중년들의 상처를 다루고 있다.  

“가해와 피해 뒤바뀐 현실 말하고 싶어”
사실 명지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서울신문에 ‘광어’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로 작가는 꾸준히 ‘폭력’이라는 문제를 다뤄왔다. 첫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의 대부분 단편소설과 두 번째 소설집 『힌트는 도련님』의 절반가량도 폭력을 주제로 삼고 있다.

▲ "저는 아무리 봐도 이 사회가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는 거예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고 정상과 비정상이 뒤바뀐 이 현상에 대해 작가로서 얘기하고 싶은 거죠.”
“데뷔하고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나는 왜 작가가 됐나, 작가가 되어서 뭘 써야 하나, 어떠한 작가로 남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해봤어요. 저는 누군가 제 자신에게 모욕을 가해도 무뎌서 잘 몰라요. 그런데 부조리한 것에 대해서는 화를 잘 내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이런 면이 소설적 과제가 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아무리 봐도 이 사회가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는 거예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고 정상과 비정상이 뒤바뀐 이 현상에 대해 작가로서 얘기하고 싶은 거죠.”

백 작가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소주제별로 25개 정도로 나누고, 이 소주제별로 단편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 소주제란 것이 성적 소수자들, 노인의 쓸쓸함, 버려지는 아이들, 자본주의에 찌든 채무관계 등이다.

‘작가는 살아온 만큼 쓸 수 있다’라는 말이 맞다면, 백 작가는 염세적이고 암울한 작품세계와 관련된 체험을 하거나 최소한 간접 경험을 한 것일까. 이에 대해 백 작가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제 인생에는 큰 굴곡이 없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셨던 아버지 밑에서 기독교적인 가풍 속에서 그냥 성장했어요. 작가는 체험으로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전달하는 입장이 강한 자가 아니라고 봅니다. 리얼리즘 소설에 함몰되어 있던 시기만 해도 작가가 체득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에는 달라졌어요. 그보다 작가는 ‘지켜보는 자의 입장’이 더 강한 사람입니다. 작가는 작가의 시선으로 무엇으로 보고 있는데, 여기서 무엇은 작가의 일로만 한정할 수 없다는 거죠. 이게 말하자면 저의 작가관입니다.”

그는 작가가 스스로 경험한 것만을 소설로 썼을 때 좋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문학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드러냈을 때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 문학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흔한 말로 ‘작가 20년이면 제 에미, 제 애비 다 팔아가면서 소설 쓴다’고 하잖아요. 그렇지만 누구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소설을 쓸 만큼 문학이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쉰 살 즈음 동학 소설 펴내고파”
백가흠 작가는 문예창작과 관련해 한양여대 강단에 주로 서고 중앙대 대학원과 인하대에서도 강의하고 있다. 이렇게 서울을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주로 일산서구 일산동 산들마을에서 글을 쓴다. 작가는 고양의 인상에 대해 ‘편하고 고즈넉한 느낌’이라고 했다.

“파주 출판단지가 인근에 있고 모임이 많은 홍대를 가기에도 편하죠. 제 일을 보는 데는 고양이 최적인 것 같아요. 특히 산책하기 좋은 곳이 많아서 좋아요. 제가 사는 산들마을 앞 기찻길을 따라 대곡역까지 이어지는 산책로가 좋아요. 야트막하지만 고봉산과 황룡산 인근도 좋구요.”

백 작가는 소설을 쓰지 않으면 주로 술을 마시거나 야구를 한다고 했다. 야구팀에서 2루수, 3루수를 전전하다가 이제 40대가 되면서 1루 수비도 겨우 한다고 했다. 프로구단 기아 타이거스의 광팬인 그는 지난해 해체한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를 워낙 좋아해서 야구장을 찾아 응원했다고 했다.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백 작가는 가장 쓰고 싶은 소설로 동학 관련 대하소설을 생각하고 있다. 50세 되는 해부터 1년에 한 권 정도 펴내서 10권 정도의 대하소설을 펴낼 계획을 밝혔다. 

“지금 동학 관련 공부를 1년 정도 하고 있어요. 소설로 쓸 수 있을 정도로 동학을 깊이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려요. 10년 정도 공부하면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글쎄, 잘 될지 모르겠어요.”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