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인권도시 어떻게 만들 것인가 좌담회

“인권도시 계획과정에서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이번 계획을 계기로 시민들의 인권에 대한 이해와 의식향상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지난 8월 27일 고양시 인권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 간담회 자리에서 나온 의견들이다. 인권평화도시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고양시는 11월 중순 연구용역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며 현재 10명 규모로 인권위원회 구성을 준비하는 등 구체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고양시 인권연대(준)는 오는 12월 인권침해 사례들을 모은 인권실태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본지는 ‘인권평화도시 고양을 그리다’기획의 마지막 순서로 고양시 각 분야의 인권활동가들을 초청해 좌담회를 개최했다. 지난달 29일 고양신문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고양시 인권도시계획을 최초로 제안한 유왕선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운영위원장과 이정아 고양여성민우회 대표, 신지혜 (사)평화캠프 고양지부 사무처장, 전민선 고양시청소년알바센터장이 참석했다. 고양신문 남동진 기자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각 주제별로 참석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분야별 인권문제 공유하고 힘 모아야
사회자
  먼저 지역사회에서 그동안 활동하면서 느낀 인권문제와 이런 부분들이 인권도시추진에 어떻게 반영됐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전민선(이하 전)  청소년노동인권문제와 관련해 지역에서 5년째 일하고 있다. 그동안 상담내용을 살펴보면 알바비 미지급 문제보다 청소년들의 인권문제에 관한 내용이 더 많았다. 사장에게 욕설을 듣고 무시 당하는 등 인권에 대한 문제가 임금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이 현실이다.
근본적으로 노동을 천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것이 문제다. 대기업 총수 정도를 제외한다면 내가 일하면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도가 조례도 만들어보고 실제로 각 학교를 돌며 노동인권에 대해 교육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런 문제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단순히 행정적인 측면에서만 인권도시가 이야기 된다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왕선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운영위원장
신지혜(이하 신)  며칠 전 장애인 인권에 관련된 조례가 통과됐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탈시설 의제나 자립생활에 대한 의제들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의사표현에 한계가 있는데 이들의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침 고양시가 인권기본계획 수립을 준비한다고 하니 이러한 현실문제에 대한 해결방안과 함께 광역지자체, 나아가 정부차원의 지원방안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고민들이 함께 마련됐으면 좋겠다. 

이정아(이하 이)  인권문제가 왜 중요한가. 지난해 지역에서 제기됐던 요양보호사 노동실태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당시 그분들이 임금문제뿐만 아니라 성희롱 성추행 등 일상적인 인권침해 사례가 빈번한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러한 문제들을 개별적인 사례가 아닌 공론화할 수 있는 어떠한 지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시급을 얼마 올리느냐의 논의를 넘어서 노동조합문제로만 포괄할 수 없는 저학력, 고령 여성들이 일터에서 처하는 인권차원의 문제를 담아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잘 반영되지 않았다. 
다소 추상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활동하는 각 분야의 문제들을 공유하고 힘을 모으는 의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인권이라고 생각한다.

유왕선(이하 유)  동의한다. 지역에서 활동하다보면 자기 분야가 아닌 다른 현안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마련이다. 각 사안들을 인권문제로 바라보고 관련 데이터를 하나로 취합하는 과정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인권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기초라고 생각한다.

정책·제도보다 인권동의수준 논의 필요
사회자
  말씀하신 것처럼 고양시에 여성·청소년·장애인 같은 분야별 정책들은 마련돼 있지만 이를 인권이라는 의제로 통합해 바라보는 시도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고양시가 개개별로 많은 정책과 예산을 마련하고 있는데 굳이 인권도시를 이야기 할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겉으로 보면 장애인보호시설이나 복지관 같은 시설이 잘 되어있고 지원도 많은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정책의 추진방향이나 시설의 운영 실태를 살펴보면 고양시는 여전히 인권감수성이 부족하고 당사자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청소년 알바센터는 처음에는 청소년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알바소개센터를 만들려는 것을 시에 강력하게 건의해 상담센터로 전환시킨 예다. 예산지원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실제 당사자들의 필요와는 상관없는 전시성 사업들도 꽤 많이 있다. 고양시 실업계 고등학교 몇 곳에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안심알바신고센터가 설치되어 있는데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아무도 모른다. 제도는 있지만 대부분 요식행위인 셈이다.

  고양시에 등록된 장애인만 3만 명이 넘고 그중 발달장애인이 10% 정도인데 학교를 졸업을 하고 나면 갈 곳이 없다. 중증장애인은 대부분 집에 있거나 운이 좋아야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 갈 수 있다. 그나마 주간보호센터에 가보면 장애인분들에 비해 종사자가 너무 적고 공익요원이 없으면 운영되지 않을 정도다.
단순히 시설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장애인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장애인 비중이 점차 늘어나는 현실에서 볼 때 장애인이 우리사회에서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더불어 살지 근본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정아 고양파주여성민우회 대표
이  여성인권의 경우도 제도화는 선진국수준으로 마련됐지만 과연 제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가 되물어보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철학의 문제라고 본다. 인권의 동의수준을 어느 정도로 가져갈지에 대해 고양시 차원에서 논의가 필요하다.

조례제정부터 추진과정까지 시민 배제돼
사회자
  인권도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현재 고양시가 추진하고 있는 인권도시 추진과정에 대해서는 각자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재 기본계획 수립에 관한 용역이 진행 중이며 11월에 발표될 예정이다. 인권위원회와 관련해서는 앞서 10명 정도가 내정 됐었는데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의 대표성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어 현재 재검토 중인 상황이다. 한편으로 민선5기 핵심정책워크숍에서 인권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다. 담당주무관이 계속 바뀌는 것도 문제고 인권팀 공무원들의 인식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인권도시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담당부서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시가 제대로 된 의지를 보이려면 인권전담부서가 마련돼 각 부서별로 인권의제에 관한 의견을 공유하고 연결고리 역할을 맡을 필요가 있다. 우선은 마이스산업과에 있는 평화인권팀을 정책담당관실이나 감사담당관으로 옮겨와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성북구처럼 인권정책을 전담하는 별정직공무원이라도 채용해야 한다.

신지혜 (사)평화캠프 고양지부 사무처장
유  가장 이상적인 그림은 먼저 시장과 공무원조직, 그리고 시민들이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의 인권헌장이 먼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권헌장을 통해 먼저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역사회에 인권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다소 느리게 가더라도 이러한 합의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조례제정부터 기본계획 추진과정까지 시민들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 시민들은 고사하고 시민단체 대표들의 목소리도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인권문제뿐만 아니라 행정전반에 시민목소리가 배제되어 있는 것 같다. 금정굴 문제나 뉴타운 문제, 답보상태에 있는 자치공동체지원센터 문제 등 다른 현안에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진행되는 인권도시계획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인권교육은 선택 아닌 그 자체가 인권
사회자
  제대로 된 인권도시 추진을 위해서는 결국 시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를 위해 어떤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정책마련에 앞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대문구의 경우 인권교육을 시민사회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고양시 인권연대에서도 올해 6월에 실시한 적이 있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다. 인권교육은 강연의 질만 보장된다면 굳이 행정이 아닌 민간차원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지난 번 지방선거 당선자 간담회 내용을 보면 인권교육은 일부 당선자들이 이미 공약으로 내놓았다. 문제는 실행의지라고 생각한다. 특히 올바른 인권행정을 위해서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교육이 필수적이다. 인권교육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인권의 문제라는 이야기도 있다.

전민선 고양시청소년아르바이트센터장
유  시도 인권교육에는 의지가 있는 만큼 민간차원에서 끌어갈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가 인권교육을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자체적인 사업을 통해 우선적으로 시에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주민자치위원, 자치공동체 사업 등에 인권교육을 의무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동의한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인권교육을 통한 여론형성, 저변확대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성인지 아카데미 교육을 해보면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통장협의회, 주민자치위원들의 경우에도 일정 정도 수준에 오르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인권교육도 대상자 발굴만 하면 시민들의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콘텐츠도 충분하고 강사들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사회자   마지막 질문이다. 인권도시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고양시가 가장 중점적으로 가져갔으면 하는 내용이 있다면.

  앞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인권교육을 중심으로 추진했으면 좋겠다. 고양시는 그동안 금정굴 민간인학살의 진실규명을 위해 활동해온 역사적 경험이 있다. 이주노동자 문제도 지역사회에서 심각하게 대두된 적이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들의 인권감수성을 어떻게 불러일으킬까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필요하다면 평화인권예술제 같은 문화예술활동과도 연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양시에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들에게 고양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인권적 행정, 인권도시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인권도시는 일종의 공동체적 의미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도시 내에 다양한 목소리들이 화합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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