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에 사는 문학작가를 찾아서 13. 김한수

윤동주의 서시를 처음 읽고 벼락을 맞다시피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꾼 중학생이 있었다. 22살 청년으로 성장한 그는 소설가가 되겠다며 출판사를 통해 집요하게 알아낸 유명작가의 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런 다음 다짜고짜 소설 작법을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전화통화에서 그 유명작가의 누구냐는 물음에 청년은 ‘근로자인데 『전환기의 민족문학』이라는 문학잡지에 시로 등단했다’라고 답했다. 유명작가의 입에서 ‘혹시 김한수씨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닌가.

그 유명작가 역시 『전환기의 민족문학』에 소설을 발표했고 거기에 발표된 청년의 시를 유심히 봤던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전화통화 이후 바로 신촌에서 만났다. 그렇지만 유명작가는 소설 작법은커녕 문학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대낮부터 술만 줄곧 마시면서 겨우 ‘이 집 고갈비가 맛있다’라는 잡스런 이야기만 늘여놓았던 것이다. 참다못한 청년은 소설을 가르쳐달라고 재차 묻자 유명작가는 ‘소설 쓰는 거 X도 아냐, 그냥 쓰면 돼’라고 말한 뿐이었다.    

 

▲ 현재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운영위원인 김한수 작가는 덕이동에서 텃밭을 가꾸며 농사짓는 재미에 빠져있다. 작가에게 ‘껍데기를 가라’를 쓴 신동엽 시인과 닮았다고 하니 “그 말 들을 때 늘 기분이 좋다”고 했다. 신동엽 시인은 그의 우상이다. 사진= 이성오 기자

 

직접 체험한 도시빈민의 삶 묘사 
그 유명작가는 황석영 작가였다. 이렇게 김한수(50세) 작가는 출중한 소설꾼 황석영 작가를 만나 그의 말대로 ‘그냥’ 소설을 난생 처음 쓰기 시작했다. 소설을 구상하는 데 2개월, 집필하는 데 3개월이 걸렸다. 원고지가 아닌 대학노트에 소설을 채워나갔다. 수정할 부분은 칼로 오리고 수정한 글을 대신 대학노트에 풀로 붙였다. 거의 누더기가 되다시피한 대학노트에 담긴 김한수 작가의 첫 소설은 그렇게 탄생했다. 바로 800자 분량의 중편소설 ‘성장’이었다.

1987년 작가의 나이 22살 때 『창작과 비평』겨울호에 발표한 ‘성장’은 이후 다른 2편의 중편소설을 묶어 『봄비 내리는 날』라는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봄비 내리는 날』은 무엇보다 김한수 작가의 고단하고 가난했던 체험이 깊이 녹아들어간 소설이었다. 실제로 빈민촌에 살았던 김 작가가 익히 보아왔던 사람들, 이를테면 알코올 중독자에다 무능력한 아버지, 매 맞는 어머니, 가난에 찌들어 그날그날을 겨우 살아내던 노동자들이 『봄비 내리는 날』에 등장했다. 철저히 리얼리즘에 입각해 도시의 가난한 노동자의 생활을 뼈저리게 묘사해내면서 민중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상찬도 받았다. 그에게 있어 문학은 귀족이 걸치는 외투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울분을 토해내는 일그러진 입이었다.

“첫 소설을 쓸 때 제 고민은 ‘우리집은 왜 가난할까’라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 보다는 ‘왜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이 있고 부자가 있을까’라는 고민이 컸어요. 중학교 때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울면서 10번을 정독했어요. 나는 조세희 같은 작가가 되어야지라고 결심 했어요”

김한수 작가는 1987년에 시로 먼저 등단했다. 당시 문학전문 부정기 간행물이었던 『전환기의 민족문학』에 ‘아버지’외 3편으로 등단했지만 곧바로 시 쓰기를 그만두고 소설에만 매달렸다. 그는 “시로 풀어내기에는 사무친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소설을 쓰게 됐다”고 했다.

밥벌이 위해 절필, 옷장사 학원강사 전전

▲ 김한수 작가는 1987년에 시로 먼저 등단했다. 『전환기의 민족문학』에 ‘아버지’외 3편으로 등단했지만 곧바로 시 쓰기를 그만두고 소설에만 매달렸다. 그는 “시로 풀어내기에는 사무친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소설을 쓰게 됐다”고 했다. 사진=이성오 기자
김한수 작가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난곡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17살 때부터 노동자 생활을 했던 김씨에게 생활터전이었던 난곡이 재개발로 해체됐다. 광명 하안동에 살던 시절에도 재개발로 공동체가 소멸될 위기에 처하자 빈민운동에 뛰어들었다. 그의 소설에 빈번히 등장하는 가난한 빈민은 작가의 문학적 아바타였다.

그러나 하염없이 쏟아낼 것 같았던 그의 사무친 이야기는 2001년 나온 소설집 『양철지붕 위에 사는 새』를 끝으로 기나긴 공백기를 지나야 했다. 똑같은 이야기를 우려먹는다는 자괴감도 들었고 딸을 임신한 아내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 글쓰기를 이어갈 수 없었다. 대신 장사를 했다. 식당업, 액세서리 장사, 옷장사, 모텔에 비품을 납품하는 일을 전전했지만 천성적으로 계산에 어두웠던 그는 결국 빚만 안았다. 그 이후 궁지에 몰린 그는 친구의 도움으로 학원강사로 8년 동안 일했다.

“학원강사로 8년쯤 일하다 역시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아이들 괴롭히면서 돈을 버는 것보다 작가로서 돌아와 글을 써서 돈을 벌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쓴 소설이 15년 만에 발표한 『너 지금 어디가?』라는 청소년 소설이었어요.”

장편소설『너 지금 어디가?』는 작가가 학원강사생활 이후 아이들과 함께 직접 흙을 밟으며 텃밭농사의 즐거움을 체득해가는 과정을 그린, 생태주의 소설을 표방한 작품이다. 

10여 년만에 ‘텃밭 농사짓는 작가’로 복귀
전형적인 ‘도시촌놈’이었던 작가가 농사꾼이 된 계기는 사소하다. 작가가 8년 전 처음 고양으로 이사왔을 때, ‘10평 정도 빌려 농사지어보지 않을래?’라는 김경윤 자유청소년도서관 관장으로부터의 권유가 시작이었다. 20년 지기로부터의 권유에 작가는 그 자리에서 ‘해보지, 뭐’라고 답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경이로운 경험을 했어요. 땅이 말을 걸고 작물이 말을 거는 거예요. 소설가가 뻥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말입니다. 씨앗을 뿌렸는데 그 땅에서 싹이 트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작가는 농사 관련 책과 인터넷을 뒤지기도 하면서 농사에 재미를 붙여갔다. 그리고 장항동에서의 첫 농사는 꽤 성공적이었다. 농사지은 첫해 10평에서 출발해 그 다음해에 20평, 다시 그 다음해에 60평으로 농사규모를 넓혀갔다. 급기야 도시농부로 구성된 친목단체 동료들과 함께 6000평 가량의 공동농장에서 농사짓기까지 했다. 그 좋아하던 등산도 내팽개치고 흙 만지는 재미로 살았다. 이 때 작가는 ‘농부인가 아니면 작가인가’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됐고 결국 ‘농사짓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로 정리했다. 그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붙잡고 있기를 원했던 것이다.

 

▲ “씨앗을 뿌렸는데 그 땅에서 싹이 트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텃밭에 있다 보면 땅이 말을 걸고 작물이 말을 거는 거예요.” 사진=이성오 기자


“농사를 지으면서 노동을 관념적으로만 이해한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노동은 나와 내 가족의 생계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재배한 작물을 나눠주면서 노동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처음 든 거예요. 우리끼리 자급자족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도시농부라는 실험이 우리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운영위원인 작가는 일산서구 가좌동 887번지 일대의 100여평에서 ‘청소년농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농부학교’에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약 25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작가는 텃밭에서 재배된 배추를 학생들과 함께 김장해 아동센터에 기부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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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작가의 주요 작품

봄비 내리는 날

1988년 『창작과 비평』지에 중편 ‘성장’을 발표해 주목받은 작가의 첫 소설집. 데뷔작 ‘성장’에 또다른 중편 ‘봄비 내리는 날’과 ‘그 무더웠던 여름날의 꿈’이 묶여진 소설집으로 도시 서민과 가난한 노동자의 생활을 여실히 그려내고 있다. 특히 작가의 체험이 깊이 스며든 작품으로 발표 당시 많은 화제를 모았다.

 


너 지금 어디가?

15년이라는 긴 공백을 거쳐 발표한 작품으로 문제아라 불리던 아이들이 텃밭을 가꾸며 변화하는 과정을 그려낸 장편소설. 아이다운 패기나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출구 없는 경쟁 속에 살아가는 10대들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건호의 고민에 공감하게 된다.

 


한 알의 씨앗이 들려주는 작은 철학

도시농부가 된 작가가 자연과 교감하면서 몸과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일구어간 지난 칠 년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는 도시인들에게 생에 활력을 주는 취미거리를 소개해줄 것이며, 인성 교육을 중요시하는 요즘, 학교 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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