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에 사는 문학작가를 찾아서 14. 시인 박정구

박정구(57세) 시인은 스스로 ‘섬 놈’이라고 했다. 전남 신안군 도초에서 태어난 박 시인은 기본적으로 ‘섬 놈이 가지는 정서’를 지니고 있다. 유년시절 갯마을 사람들이 풍어제를 올리는 것을 봐왔고 섬에서 뭍으로 간 이들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을 봐왔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유년시절 섬에서 겪게 된 모든 경험은 시인의 정서적 원형이 된 것이다. 섬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거치고 뭍으로 나와 학창시절을 보내고 성년이 되었어도 바다가 미칠 듯이 그립다고 했다.

박 시인이 낸 『떠도는 섬』, 『섬 같은 산이 되어』, 『아내의 섬』 등 3권시집의 모든 제목에 ‘섬’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박 시인의 대학 후배 차창룡 시인의 말대로, 그의 시는 섬으로 싹을 틔우고, 섬으로 단풍들며, 섬으로 눈물 흘리고, 섬으로 눈을 뿌린다. 시인에게 유년시절 섬에서의 경험을 들려달라고 하니 대뜸 서리했던 기억을 말했다. 서리와 관련해 그는 ‘퍽, 쪼개진 것은 수박인데 모여든 것은 우리들의 우정이었다. 달덩이 같은 수박이 유년을 자꾸 끌어당겼다’ (시 ‘수박서리’ 중에서)라는 시구를 남겼다. 

 

▲ 전남 신안군의 섬, 도초에서 태어나 스스로 ‘섬 놈’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박정구 시인. 그는 “유년시절 섬에서 겪게 된 모든 경험은 자신의 정서적 원형이 됐다”고 말했다. 사진=이성오 기자

 

서리하며 유년기 보낸 섬 소년
 “도초라는 섬에서는 물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집은 한 집도 없었어요. 대농은 아니지만 모두 농사를 지었어요. 어릴 적에 수박 서리, 참외 서리, 감자 서리도 하고 닭 서리도 참 많이 했어요. 닭을 잡아서 그 마을에서 잡아먹으면 걸리니까 다른 마을로 옮겨가서 잡아먹곤 했어요. 주인은 어느 집 자식이 서리를 했는지 아는데도 대충 눈감아 준 것 같아요”

이렇게 ‘섬 놈’으로 산 시인의 문학적 자질은 언제 싹을 틔웠을까. 목포고 시절 교지에 더러 글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박 시인이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조선대 문예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시인이 활동했던 조선대의 문예동아리 ‘나락문학동인회’ 는 『참깨를 털며』를 펴낸 김준태 시인,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을 펴낸 차창룡 시인 등을 배출한 곳이다. ‘나락문학동인회’ 10기로 활동한 박 시인은 시 품평회에서 혹독한 경험을 했다고 고백했다. 시 품평회는 말 그대로 ‘시를 도마 위에 놓고 난도질’ 하는 것으로 당하는 사람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박 시인이 가장 왕성하게 시 창작을 했던 시기는 대학교 2~3학년 때였다고 했다. 
   
“대학 동아리에서 시를 발표하기가 매우 두려웠어요. 같이 시 쓰는 선배나 친구들의 가혹한 평을 각오해야 했으니까요. 동아리 회장의 시를 품평하는데 ‘초등학교 6학년이 쓴 시 같다, 이런 시를 발표하는 것은 우리 회원들을 모독하는 것이다’라는 평을 하는 거예요. 회장부터 그렇게 당하는데 나머지 회원들 시에 대한 품평은 어떻겠어요. 시를 못 쓴다고 가장 혹독하게 당했던 후배가 차창룡 시인이었어요. 나중에 창룡이는 김수영 문학상도 받으며 시인으로 성공했죠.”

『아내의 섬』 문광부 우수도서 선정

▲ 박정구 시인은 자신에게 시를 쓰게 하는 힘은 ‘그리움’이라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고향이었던 섬에 대한 그리움 등이 그에게 시를 쓰게 하는 동력이었다. 사진 = 이성오 기자
박정구 시인은 자신에게 시를 쓰게 하는 힘은 ‘그리움’이라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고향이었던 섬에 대한 그리움 등이 그에게 시를 쓰게 하는 동력이었다.

박 시인은 1995년 『문학과 의식』 봄호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등단 이후 3년만에 펴낸 첫 번째 시집 『떠도는 섬』에는 바다에도, 육지에도 편입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마음, 섬을 떠나 육지로 간 이들에 대한 기다림, 그리하여 절해고도에 홀로 있는 듯한 외로움의 정서가 깔려있다.

13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시집 『아내의 섬』(문학의 전당)은 개인적인 가족사가 많이 스며든 시집이다. 『아내의 섬』은 2015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아내, 아버지, 어머니 등 가족과 저와의 관계성에 드러나는 감성적 무늬를 시집에 넣어봤어요”라고 시인은 말했다. 시인은 이 시집에서 가족사뿐만 아니라 짓밟히고 생채기가 난 이웃들의 삶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집에서 이웃들의 삶은 ‘북어’로 나타나기도 하고 ‘민들레’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조동범 시인은 해설문에서 ‘시인은 우리의 삶이 ‘잘 마른 북어의 삶’과 같은 것이라 여긴다’며 ‘잘 마른 북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가미에 담았던 바다의 풍경과/ 어부의 얼굴, 그리고 쫓고 쫓기며 살아왔을 기록을/ 어금니에 물고 잘근 잘근 씹는 것’이라는 시인의 시를 인용했다.  

특히 지난 10월 돌아가신 어머니와 고인이 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시인에게 각별하다. 시인의 아버지는 2011년 암판정을 받은 3개월 뒤 고인이 됐다. 그 전 5번째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을 때 아버지는 걸으면서 늘 신고 다니던 구두가 무겁다고 하소연할 만큼 이미 몸이 쇠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시인은 아버지에게 가벼운 구두를 사다줬고, 돌아가실 때 신었던 아버지의 그 구두를 지금도 차 트렁크에 간직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배경으로 썼던 시가 ‘검정 구두’다.

병상 밑에 놓여있던 무덤 같은 구두
기도 소리가 들어갈 틈도 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작지만 단단한 발
길은 아버지가 만들고
장성한 아들은 그 뒤를 걷는다 
시 ‘검은 구두’ 중에서

▲ 시인은 지난 2012년 5월부터 주말농장을 일구면서 상추, 쑥갓, 치커리, 그리고 이름도 낯선 수많은 쌈채류들을 가꾸면서 매일 아침마다 ‘주말농장에서 띄우는 편지’를 약 3개월가량 썼다. 시인은 이때 쓴 글과 직접 찍은 사진을 모아 『푸성귀 발전소』라는 두툼한 산문집으로 엮었다. 사진 = 이성오 기자

“주말농장은 삶의 활력소”
“목포에서 흑산도로 가는 중간에 있는 섬이 도초인데 난 아직 그 가까웠던 흑산도를 못가봤어요. 이렇게 말하면 다들 놀라죠. 이미 섬에 살고 있는 사람은 다른 섬이 궁금하지 않아요. 섬 사람은 유배지 같은 섬이 아니라 끊임없이 육지를 향합니다. 외따로 떨어져 있는 섬은 그 자체로 꿈과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박정구 시인은 섬을 떠나 조선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냉동, 냉장 쇼케이스 부품과 제품을 생산하는 세대산전(주)에서 회사생활을 하다가 정치인 홍보 기획사를 운영하기도 했고 공인중개사 생활도 했다. 지금은 (사)고양예총 회장과 원당신협 이사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시인은 지난 2012년 5월부터 작은 텃밭 하나를 구해 주말농장을 일구어왔다. 주말농장을 일구면서 상추, 쑥갓, 치커리, 그리고 이름도 낯선 수많은 쌈채류들을 가꾸면서 매일 아침마다 ‘주말농장에서 띄우는 편지’를 약 3개월가량 썼다.

시인은 이때 쓴 글과 직접 찍은 사진을 모아 『푸성귀 발전소』라는 두툼한 산문집으로 엮었다. 시인은 “주말농장을 하는 과정에서 유년의 추억을 토닥이는 푸성귀들과의 만남은 즐거움을 넘어 삶의 활력소였어요. 가만히 귓속으로 들려오는 푸른 소리를 들으며 안개 자욱한 새벽 농장에서 아침을 열었습니다. 이처럼 주말농장에서 가꾼 추억과 활력을 모아 가슴 뛰는 희망의 힐링메시지가 되기를 기원하며 산문집을 출간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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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구 시인의 주요 작품

시집 『아내의 섬』

2015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도서에 선정된 박정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아내의 섬』은 그리움과 결핍을 드러내고 있는 서정적 자아의 고백록이다. 시인은 가족과 고향, 그리고 애틋한 삶의 국면과 자연을 중심으로 서정의 국면과 정서를 드러내고 애정한다.

 

 

 

 

산문집 『푸성귀 발전소』

주말농장에서 건져 올린 흙의 말씀들, 꽃의 말씀들을 모아 세상 밖으로 띄워 보내는 ‘희망의 편지’들을 모았다. 평생 농사를 짓다 혼자 쓸쓸히 늙어 가시는 어머니의 푸르렀던 젊은 날을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에 주말농장을 가꾸게 된 시인의 산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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