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에 사는 문학작가를 찾아서 15. 소설가 정화진

정화진(본명 황의돈·55세) 작가는 오랫동안 ‘전직 작가’였다. 그러다가 최근 2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 당당히 ‘현직’으로 돌아왔다. 계간 문예지 ‘황해문화’와 ‘내일을 여는 작가’에 각각 ‘두리번거리다’와 ‘동은 트는가’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1992년 문단에서 홀연히 사라진 이후 무려 23년 만이다.

정 작가는 23년이라는 세월동안 먹고 살기에 바빠 소설과는 한참 멀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23년 동안 단 한 줄의 구라(그는 소설을 종종 ‘구라’라고 표현했다)를 쓰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다시 소설을 쓴 2015년을 작가로서 말할 수 없이 소중한 해”라고 말했다.

▲ 정 작가는 23년이라는 세월동안 먹고 살기에 바빠 소설로부터 멀찍이 서 있었던 ‘전직 작가’였다. 그러다가 최근 2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글쟁이로서의 생기를 되찾아가고 있다. 사진=이성오 기자
 

선생님께 보여줬더니 “쓰지마라”  
정화진 작가는 고등학교 때 이미 원고지 2000매 분량의 소설을 쓴 ‘예비 작가’였다. 그가 다닌 동성고등학교에는 2명의 시인이 있었다. 황금찬 시인과 박희진 시인(지난 3월 작고)이다. 황금찬 시인은 환갑을 바라보는 국어교사였고 박희진 시인은 40대 중반이었지만 독신으로 살고 있는 영어교사였다.

고교시절의 정 작가는 2명의 친구와 함께 셈이 유독 약했던 박희진 시인이 낸 영어시험 채점을 도우기도 했다. 채점이 끝날 때면 박희진 시인은 곧잘 중국요리와 소주 2병을 시켜 채점을 도운 학생들과 나눠먹기도 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마셔보는 소주맛도 새로운 경험이었겠지만 박희진 시인이 학생들과 소주를 함께 마시며 들려주는 풍성한 문학이야기는 당시 17살 정 작가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즐거움이었다. 당시 『장길산』을 연재하던 황석영을 비롯해 최인호, 한수산 등 당대 유명 국내작가들뿐만 아니라 톨스토이, 루이제 린저, 프랑수아즈 사강 등 외국작가들의 작품 이야기를 시인으로부터 듣는 것은 정 작가에게 생생한 문학수업이었다.

정 작가가 고교 2학년 때 한번은 순전히 ‘칭찬을 듣기 위해’ 원고지 700매 분량의 중편소설을 들고 박희진 시인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칭찬 대신 정 작가에게 되돌아온 것은 ‘앞으로 5년간은 소설 쓸 생각도 하지 마라’는 야박한 말이었다. 고등학교 문학 동아리 활동하는 친구들은 ‘편지나 잘 쓸 것 같은 애송이’로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문학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았음에도 작가가 될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그의 오만함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때 선생님은 저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너는 지금 깃털만한 인생의 무게도 느낄 수 없는 나이에 있다, 너의 원고지를 읽는 내내 스타가 되고 싶다는 욕망밖에 읽을 수 없었다라는 거야”

존경하는 선생의 그 말을 듣고 난 후 정 작가는 실제로 소설을 쓰지 못했다. 아니, 쓰지 않았다. 1987년 단편소설 ‘쇳물처럼’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는 세상을 알아가기 바빴던 것이다.

▲ 사진 = 이성오 기자

노동체험 바탕한 ‘쇳물처럼’ 발표
1980년대 당시 사회변혁을 바라던 적잖은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서강대 80학번이던 정 작가 역시 졸업 후 뛰어든 곳은 노동현장이었다. 이른바 ‘애국적 사회진출’을 한 것이다. 1987년 27살인 그가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노동운동을 하고 싶어서 들어간 곳이 서울의 구로공단이었고 인천의 주물공장이었다. 특히 인천의 주물공장은 육체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노동 강도는 당시 46kg라는 ‘살벌한’ 체중을 가진 그에게는 너무 가혹했다. 공장장이 ‘자네는 여기서 일 못해. 그냥 가’라고 하는 것을 ‘젊은 놈이 못할 게 뭐가 있겠냐’라고 박박 우겨가며 그는 주물공장에서 버텨내기 시작했다.   

“나중에 계산해봤는데 하루에 내가 기술자들의 쇳물 작업을 위해 조형틀에 옮겨놓는 쇳덩이의 무게가 9톤쯤 되더라고. 보름쯤 지나 노동자들이 막걸리를 마시면서 내가 주물공장에 들어간 첫날 내기를 했다는 거예요. ‘저 놈은 4시간짜리다, 점심 먹고 도망갈 놈이다’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대요. 나중에 한달을 버티고 그만둘 때 공장장으로부터 ‘독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인천 주물공장에서의 일이란 1400~1500도를 웃도는 열을 가진 쇳물을 부어야 하기 때문에 한겨울인데도 웃통을 벗어도 땀을 흘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울퉁불퉁한 근육을 가진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뼈와 살가죽만 남은 작가는 부끄러워서 한사코 런닝셔츠를 고수했다. 한 날은 주물공장에 출근하러 버스를 타기 위해 달려가는데 허리쪽에서 ‘덜거럭덜거럭 하는 소리’를 들은 작가는 ‘이러다 진짜 죽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주물공장에 들어간 지 한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할 수 없이 추운 골방에서 전기담요에 의지해 몸을 추스르며 쓴 소설이 단편 ‘쇳물처럼’이다. ‘쇳물처럼’은 ‘전환기의 민족문학’에 발표되기 전에 인천의 노동현장에서 먼저 읽혀졌었다. 평론가로부터 노동문학의 대표적 전형으로 간주되는 ‘쇳물처럼’은 주물공장에서 파업을 시도하는 대여섯 명의 남성 노동자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보너스 한푼 없는’ 인천 바닥의 한 주물공장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파업의 과정과 이에 이르기까지의 세세한 감정의 결을 드라마처럼 보여주고 있다. 정 작가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고조된 분위기와 맞물려 등단과 함께 평론가들로부터 각별한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 사진 = 이성오 기자

‘만약 암이라면 한편만 쓰자’ 생각 
정 작가는 ‘쇳물처럼’에서 흔히 노동문학에서 보여주던 노동자들의 절망 대신 낙관적 미래를 열어놓은 채 소설을 끝맺는다. 비록 27세에 쓴 소설이지만 이렇게 지독한 낙천성과 인간에 대한 신뢰는 어디에서 왔을까.

“내 속에 비극을 싫어하는 DNA가 있나봐요. 젊었을 때부터 대책이 없을 정도로 낙천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아직도 우리 사회가 붕괴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일제강점기를 겪고 전쟁을 겪고 독재를 겪었지만 우리는 탈출하지 않고 끝까지 광장에 나가서 싸웠어요.”

‘쇳물처럼’을 발표한 이후 정 작가는 1981년 장편소설 『철강지대』, 1992년 소설집 『우리들의 사랑은 들꽃처럼』을 발표한 이후 펜을 놓았다. 80년대를 꿰뚫는 우리시대의 자화상이 담긴 야심작을 쓰고 싶었던 그는 노동현장 외에 아무것도 모른다는 자괴감 속에서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정말 단 한 줄도 쓰지 못했어요. 30대 초반이었던 나는 너무나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거야. 그런데 출판사에 전화로 선인세를 먼저 달라고 조르고 있는 아내의 등을 보면서… 그날 술 마시면서 꽤나 울었던 것 같아요. 그 때 아들놈도 있었는데… .”

정 작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가장노릇과 밥벌이를 못한다는 자괴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후 오퍼상, 학원 교사, 액세서리 장사 등을 전전하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던 그가 2010년경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갔는데 암일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절박함으로 몰려들었는데 그때 생각한 것이 소설이었다. 아내에게 ‘만약 정말 암이라면 산속에 들어가서 딱 한 편의 소설을 쓰고 죽고싶다’라고 말을 하려고 마음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 암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출판사 창비의 인터넷 블로그에 산문 ‘도시농부 정화진의 세상살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정리해 2013년 에세이집『풍신난 도시농부, 흙을 꿈꾸다』를 펴냈다. 동료작가였던 김한수 작가(본지 1247호 소개)의 소개로 일산서구 가좌동에서 작물을 심고 돌보는 담담한 일상을 이 수필집에 담았다.

젊은 날 인천의 한 주물공장에 취업해 노동운동을 펼치던 패기 넘치던 운동가였고 1987년 스물일곱의 나이에 혜성처럼 등단해 노동문학의 성취로 평가받던 작가였던 그가 다시 펜을 잡았다. 다시 펜을 잡은 그의 마음가짐이 이 말에 녹아 있다.  

“그동안 내가 가진 글 쓰는 자그마한 재능이 고마운 줄을 몰랐어요. ‘나는 누구다’라는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요. 그런데 나는 이제 말할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구라쟁이 정화진이다’라고 이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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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진 작가의 주요작품

장편소설 『철강지대』

정화진 작가의 첫 장편 '철강지대'는 노동장편소설이라는 희소성을 가지고 있다. 평론가 김명인은 이 책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이 소설이 보여준는 '장엄함'은 스케일의 크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 소설이 웅변하는 지금 이곳 우리 노동계급의 삶이 지닌 본질적 거인성에서 온다. 우리는 어쩌면 이 소설의 주인공들과 같은 '인간들'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수필집 『풍신난 도시농부, 흙을 꿈꾸다』

정화진 작가가 도시농부가 되어 주변 도시농부들과 같이 소통하고 흙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삶의 활력을 되찾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꾸밈없이 담백한 문체로 담아냈다. ‘풀 연가’, ‘위대한 이름, 씨앗’, ‘된더위 블루스’, ‘얼푸시 눈뜨면 봄이라네’ 등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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