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봉사하는 예비사회복지사 요시다 치에씨

일본 국적이 봉사에도 걸림돌
치매어르신이 기억해줄 때 기뻐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였으면”

사회복지사가 꿈인 요시다 치에<사진>. 그의 한국 이름은 길지애다. 일본 치바현 가시와에서 출생해 국적은 일본이지만, 어릴 때 한국으로 와 대화고등학교(1회)를 졸업하고 현재 인천에 있는 전문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다. 치에씨가 사회복지 중에서 관심을 두는 분야는 노인복지다.

학원 다닐 시간에 봉사
그가 복지사란 직업을 꿈으로 품게 된 건 중학교 시절, 치에씨 집에 찾아온 사회복지사를 만나고부터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어요. 제가 도움을 많이 받고  커서 그런지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던 치에씨는 중학생 시절부터 어린이집, 보육원, 홀트학교, 실버요양원 등에 봉사를 다니며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찾았다. 학원 다닐 형편이 못돼 오히려 그 시간에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걸림돌이 있었다. 국적이 일본으로, 외국인 신분이다 보니 서류가 복잡하다며 봉사기관에서 거절한 것이다. 그때 흔쾌히 손 잡아준 곳이 대화동에 있는 ‘복이든 요양원(원장 한광순)’이다. 그곳에서 치에씨는 연년생인 동생과 함께 노인봉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치매어르신 말벗도 해드리고, 손도 잡아드리고 손톱도 깎아드렸다. 

어르신들을 돌봐드리면서 실수도 많았다. “치매어르신이 하신 말씀을 자꾸 반복하길래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벙어리냐!’며 혼난 적도 있고, 당뇨병을 앓고 있는 어르신에게 사탕을 드린 적도 있어요.”

치에씨는 봉사하면서 얻은 것이 많다고 한다. 치매어르신인데도 3개월 정도 봉사를 다니자 치에씨를 기억해주시고 반겨주실 땐 너무 좋아 힘들었던 일을 까맣게 잊었다. 어르신들의 손을 잡아드리면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도 느꼈다. “봉사하면서 힐링하는 게 취미”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치에씨는 봉사가 즐겁다.

봉사하며 오히려 힐링
요양원에 대한 선입견도 사라졌다. “치매 걸린 부모님이 귀찮아서 요양원에 보내나? 치매어르신도 인권이 있는데 안 좋은 음식 드리고 자유를 뺏는 건 아닌가? 등의 오해를 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요양원 선생님들이 진심으로 어르신들 대하는 모습을 보며 괜한 걱정도 사라졌고, 요양원에서 생활하신 후 오히려 균형 잡힌 식단 덕분에 건강해지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치매 상태가 호전되는 경우를 봤기 때문이다.


치에씨가 노인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할머니의 영향도 크다. 어렵게 생활을 꾸려가면서도 할머니는 손녀손자의 학부모총회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치에씨 남매를 어릴 때부터 돌봐주신 할머니는 82세. 이젠 치에씨가 할머니를 돕고 있다.    

일본을 오가며 살아야 했던 어릴 때의 복잡한 생활, 외할머니와 남동생과의 단촐한 삶 그리고 일본국적은 치에씨와 동생 히로씨에게 거듭되는 어려움을 주었다. 지금도 국어사전을 들고 다닐 정도로 우리나라 말이 어려웠고 국어과목 성적이 제일 낮았다. 일본과의 외교적 문제만 대두되면 “너네 나라 왜 그러냐?, 축구시합하면 어느 나라 응원할 거야?”라고 무심코 묻는 동급생들…. ‘쟤네들과 놀지 말라’는 학부모의 말도 고립감과 외로움을 주었다.

일본 국적이기에 외할머니가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없어 미성년자만 거주한다며 조사기관에서 찾아오기도 했고, 5년마다 여권 갱신하는 일, 2년마다 비자 발급받는 일 등을 스스로 해야 했다. 이제는 치에씨가 남동생 보호자가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사춘기 시절에 외국인이라는 게 너무나 싫었죠. 학기 초 친구들과는 다른 서류를 선생님께 내야하는 것도 싫었고요. 틀린 게 아니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하루를 살아도, 한 사람에게라도 상처주지 않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치에씨. 받은 상처를 아름다운 진주로 만들어 외로운 이들에게 나눠주는 복지사가 될 그 날을 생각하며 한파가 몰아치는 오늘도 치에씨는 요양원에 들러 어르신들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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