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에 사는 문학작가를 찾아서 16. 시인 권정우

권정우(52세) 시인은 스스로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상처도 잘 받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두 번, 세 번 생각한 뒤에 말을 하는 습관을 들여 별명이 ‘영감’이었을 때도 있지만, 현재는 가끔 ‘여린 왕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여린 왕자’라는 별명은 섬세하고 여린 감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해독이 불가한,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드는, ‘상형문자’ 같은 시들이 난무하는 작금의 시단에서 전통 서정시에 닿아있으며 정갈하고 단아한 그의 시는 그의 외모와도 닮아 있다.  

자전거로 출퇴근할 때 떠오른 시 
권정우 시인은 자전거를 탄다. 시인은 자전거를 타고 청주의 무심천변을 유유히 달리며 계절이 차려놓은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고 풀향기를 맡으며 어릴적 등굣길을 떠올리기도 한다. 청주 오창에서 충북대로 오가는 이 출퇴근길 위에서 힘차게 페달을 밟으면 ‘시가 저절로 나온다’고 한다. 2010년에 낸 처녀시집 『허공에 지은 집』에 담긴 시의 3분의 2가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만난 시적 상념의 결과물이다.

“시속 20㎞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바라본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워보일 수가 없습니다. 이때 떠오른 것을 연구실에 가서 컴퓨터로 정리하면 바로 시가 됩니다. 어쩌면 제 시는 자전거가 써준 시라고 봐도 됩니다.”

▲ 권정우 시인은 “청주 오창에서 충북대로 오가는 출퇴근길 위에서 힘차게 페달을 밟으면 시가 저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그의 첫 시집 『허공에 지은 집』에 담긴 시의 3분의 2가 이렇게 자전거를 타면서 떠오른 시상을 정리한 것이다. 사진 이성오 기자

자전거로 출퇴근할 직장이 있는 것 / 한 시간 거리에 집을 얻은 것 // 나만을 위한 길 / 그 길에서 풀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 / 향기가 어릴 적 등굣길로 이끄는 것 // 계절이 있는 것 / 아침과 저녁이 있는 것 / 계절과 시간이 차려놓은 풍경을 볼 수 있는 것 / 아! 하는 감탄사 // 풍경을 함께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 고마워하는 마음이 우물처럼 자리 잡는 것 / 아침, 저녁으로 / 고마운 마음을 길어올리면 / 그대로 시가 되는 것 ( 시 ‘자전거를 타면서 고마워한 것들1, 전문)

권 시인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직장이 있는 것도 고맙고, 길이 있는 것도 고맙고, 계절이 있는 것도 고맙고, 풍경을 함께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고맙다고 여긴다. 그는 이 ‘고마움의 힘’으로 시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자전거 타기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산악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하기도 하고 생애 처음으로 뼈가 부러진 것도 자전거 사고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권 시인은 충북대에서의 일주일 수업이 끝나는 금요일 저녁에는 덕양구 화정동의 가족이 있는 집으로 온다. 그리고 한 달에 두 번씩 토요일에는 고양의 인문학 모임인 ‘귀가쫑긋’ 글쓰기 선생님이 되어 회원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 고양에서 정착한 지는 20년을 훌쩍 넘긴다.    

“시는 세상의 격을 높여준다”
권 시인은 고교시절부터 강만길 선생의 책 등을 읽으며 ‘암울한 사회를 바꾸는 데 어떻게 하면 내가 기여할까’라는 고민을 하는 조숙한 학생이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던 그는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서 정치를 하고 싶어했다. 중고교 시절 김현승 시인이 묶은 현대시 모음집을 읽으며 다른 아이들과 차원이 다른 시를 쓰고 있던 그에게 시란 굳이 대학에서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 사진 이성오 기자
그러나 결국 원했던 정치의 길을 걷지 못하고 시를 쓰는 국문과 교수로 남았지만 그는 지금의 삶이 오히려 다행스러운 삶이라 여기고 있다. 만약 법대에 가서 정치의 길을 걸었으면 지금보다 못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치의 길이 체질적으로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던 고교시절, 그저 남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정치의 길로 가겠다는 덜 여문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는 시인으로서의 운명에 감사하고 있었다. 

“시를 쓰기는 어렵지만 좋은 작품을 쓰면 성취감이 굉장히 커요. 잘된 작품은 내게 큰 기쁨을 주기도 하고 나를 가르치기도 해요. 시를 통해서 깊이 있는 인간이 되고 겸손한 인간으로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가지게 되구요. 시는 세상의 격을 높여줍니다.”

권 시인의 친구인 남기혁 문학평론가에 따르면, 그의 대학시절은 ‘당구장과 술집을 들락거리기도 하고 친구의 자취방에 모여 화투를 쳤으며, 아주 심심할 때만 잠시 책을 읽으면서 문학의 숲을 오만한 표정으로 들락거리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시집을 읽는 것이 사치스럽다고 생각이 들 때쯤 거리에 나가 돌을 던지기도 했다. 권 시인은 “처음부터 견디려 한 게 아니야 / 살다보니 견뎌진 거지(시 ‘학교가기 싫어하는 딸아이에게’ 중에서)라는 시구를 낳을만큼 연륜이 쌓인 중년을 관통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새로움’을 추구
권정우 시인의 시는 이상, 김수영 시인 같은 모더니즘 계열보다 김소월, 정지용 등 전통적인 서정시와 맥이 닿아있다. 권 시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지나치게 난해해서 불편해지는 시가 마치 좋은 시인 것처럼 호도되기도 하는 시단에서 권 시인의 시는 단아하면서도 마음을 움직인다. 문학작품을 읽는 이유가 감동을 주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임을 그의 시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문학예술은 기본적으로 감동을 줘야합니다. 일류 시인이면서 일류 평론가이기도 한 정지용이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은 쉬운 일이라고요. 새로움 중에서 가장 의미있는 새로움은 ‘자연스러운 새로움’이라고요. 꾀꼬리 울음소리는 항상 같은듯 하지만 언제나 새롭기도 하듯이 말입니다.”

그는 문학이 문학 자체로 평가받지 못하고 문학작가의 인맥이나 출판사 등과 결부되어 문학이 ‘브랜드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비판했다. 가장 좋아하는 시인을 물으니 김진경 시인이라고 대답했다.  

“창비와 문지에서 시집이 나오면 무조건 좋은 시집인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아요. 문학 자체보다 어느 출판사에서 시집이 나왔느냐로 평가하려 드는 거죠. 참 잘못된 관행입니다. 김진경이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김진경 시인은 제대로 알려지면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아도 부끄럽지 않은 시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김진경 시인의 『지구의 시간』은 1쇄도 팔리지 못했어요. 학교에서 시집을 가지고 수업을 하는데, 현재 대표적인 시인이라는 함민복, 나희덕, 안도현 시인의 시는 1시간이면 대표시를 뽑아서 수업을 할 수 있는데, 김진경 시인은 시집 『지구의 시간』 하나에만 4시간을 할애합니다. 김진경 시인은 대단한 시인입니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