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에 사는 문학작가를 찾아서 17. 시인 문태준

문태준 시인의 시는 누워서 펼쳐 읽는 이를 문득 자리에서 벌떡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다. 척추를 곧추 세우고 긴장해서 다시 읽어보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 문단은 그에게 전통 서정시의 계승자, 서정시 가문의 적자라는 상찬을 아끼지 않는다.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동서문학상 등 시 문학으로서 받을 수 있는 상을 거의 다 받았다. 그도 혹시 어쩔 수 없이 ‘문학 귀족’이 돼가는가. 그것은 기우일 것이다. 문단이 그를 향해 일컫는 ‘전통서정의 적자’라는 말에 그는 부담스러워 했다. 그의 청정하고 섬세한 감수성에 걸려든 이 세상 사물들이 급기야 시로 발화할 때, 그 모든 시들이 이 세상으로부터 다만 ‘얻어온’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얻어왔다’는 말의 질감이 푸근하고 따스하다. 그는 ‘대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듯 마음이란 그냥 풍경을 들어앉히는 착한 사진사 같은 것(시 ‘빈집의 약속’ 중에서)’이라고 말하는 시인이 아니었던가.

 

▲ 20년째 고양에서 살면서도 가끔 아파트 인근의 얕은 산에 오른다는 문태준 시인. 그는 어린시절 고향인 김천의 시골풍경이 “살갗처럼 늘 곁에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 이성오 기자.

 

김천 시골 공간이 시적 자양분
문태준 시인은 농사짓는 부모님 슬하에 누나 둘, 여동생 둘 사이에 낀 외아들로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그의 시적 감성은 김천이라는 시골 공간에서 태동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어린시절 시골의 자연과 풍경은 “늘 살갗처럼 붙어 있었”다. 골짜기에 사는 산새소리, 천년 은행나무 아래 쌓이는 은행잎들, 걸음 옮길 때마다 천천히 움직이는 무논의 흙물 등 자연물이 시인에게는 다채로운 느낌의 무늬들로 나타났다. 그 무늬를 언어로 표현했고, 그 결과물이 지금까지 낸 6권의 시집이었다.    

“저는 논과 밭과 산에서 자란 시골 아이였죠. 아버지가 밭일 할 때 새참을 갖다 드리기도 했구요. 그 시절 제가 본 것은 생명이었습니다. 제가 기른 토끼가 마리수가 늘어나면 집에서는 그걸 팔았어요. 토끼를 팔고 대신 사들인 강아지를 제가 또 기르기도 했어요. 아주 어린 생명이 커가고 그러다가 죽음에 이르는 것을 다 지켜본 거죠. 어린시절 생명에 대한 관찰과 자연에 대한 경험이 제가 시를 쓰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문 시인은 고향인 김천에서 중고등학교 다닐 때 전교 석차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수재였다. 사법고시를 봐서 판검사가 될 거라고 전교생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학생이었다. 같은 김천 출신으로 중고등학교 동창이었던 김연수 소설가가 등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문 시인이 등단하기 전에 찾아와 시를 좀 봐달라고 했을 때 김연수 소설가가 내뱉은 말이 ‘너는 사법고시를 봐야지, 왜 시를 쓰냐?’였다.

문 시인은 김연수 작가에 대해 “연수는 참 명석한 친구였어요. 연수는 이과 출신이었고 원래 서울대 천문학과를 가려했는데 가지 못했어요. 중고교 동창이었지만 연수와 친해진 건 군대 갔다 온 1993년경이었어요. 지금은 둘 다 고양에서 살다보니 가끔 만나요.”

문 시인은 처음엔 대학을 고를 때, 시인과 거리가 먼 육군사관학교나 경찰대학교 같은 곳에 들어갈까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결국 국문과를 선택했고 현재 시를 쓰고 있다. 국문과를 선택한 이유는 시인이나 작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시를 좋아하게 되고 시를 한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은 대학교 2학년 때 여름방학을 지나고부터 가지게 됐다. 그는 그해 여름방학 때 70권 정도의 시집을 꼼꼼히 보며 시에 완전히 매료됐다. 특히 신경림, 김용택, 고재종 시인이 쓴 농촌 정서가 배인 시가 좋았다고 했다. 군복무 시절에는 이성복, 황지우 시인 등의 시집을 낱장으로 찢어 군복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화장실에서 훔쳐보곤 했다.

 

▲ 문 시인은 1996년 불교방송에 입사해 현재 라디오 제작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대학졸업 후 다닌 첫 직장인 불교방송에서 20년 넘게 일한 셈이다. 사진 = 이성오 기자.

 

고즈넉한 불교적 분위기의 시
“초기의 시와 비교해서 최근의 시는 김천이라는 공간에서 많이 떠나온 것 같아요. 대신 불교적인 상상력 같은 게 제 시에 깃들게 됐어요. 생명이나 사물이 생겨나서 성장하고 그러다가 소멸하는 원환적인 상상력이라고 할까요.”

문 시인은 1996년 불교방송에 입사해 현재 라디오 제작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대학졸업 후 다닌 첫 직장인 불교방송에서 20년 넘게 일한 셈이다. 사실 그 자신이 불교신자이기도 하거니와 그의 시 세계 곳곳에 불교적 기운이 스며있다. 그와 불교의 인연이 궁금했다.

“어머니가 절에 다니셨죠. 김천에 있는 직지사의 말사인 용화사에 어머니께서 오래 다니셨어요. 제가 어릴 때, 동지 때나 부처님 오신날 어머니께서는 용화사에 제 손을 잡고 데리고 다니셨어요.”

문 시인의 어머니인 김점순씨는 지난해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문 시인은 “어머니는 굉장히 엄하신 분이었어요. 또한 굉장히 꼼꼼해서 일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분이었어요. 마무리도 깔끔하게 해야 적성이 풀리는 분이었죠. 외아들인 저에게 혼을 많이 내셨죠. 제가 약해지고 게을러질까봐 일부러 더 많이 혼내고 키우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한 번은 어릴 적 개학이 다가왔는데 숙제를 거의 하지 않아서 어머니가 아궁이에다 책을 집어넣은 적도 있다고 했다.

문태준 시인이 쓴 많은 시들 중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시 중에 하나가 ‘가재미’라는 시다. 이 시는 알려진대로 시인의 큰어머니의 죽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다. 이 시는 2005년 시인과 평론가 120여 명이 참여해 뽑은 ‘문예지에 실린 가장 좋은 시’로 선정된 바 있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시 ‘가재미’ 중에서).

“가재미라는 시는 큰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석달 후 쓴 시예요. 그해 여름, 비가 많이 온 날 김천의료원에 계실 때 병문안 갔을 때의 느낌이 이 시의 바탕이에요. 큰 어머님은 저희 살던 동네에 사셨는데 어머니와도 같은 분이었어요. 가난한 저희 집을 많이 챙겨주셨죠.”

“시 쓰는 과정은 참 근사한 경험”

▲ “가재미라는 시는 큰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석달 후 쓴 시예요. 그해 여름, 비가 많이 온 날 김천의료원에 계실 때 병문안 갔을 때의 느낌이 이 시의 바탕이에요." 사지 = 이성오 기자
문 시인은 문단과 독자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지만 이것이 그에게는 별로 반가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주목이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었던 것이었다. 남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 그리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고 그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시가 잘 안 써질 때가 많죠. 그러면 계속 기다리는 거죠. 계속 시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되는 작업이니까 거기서 오는 피로감 같은 게 있죠. 1997년부터 고양 행신동에서만 주로 살았어요. 행신동에 20년 정도 살면서 시가 잘 안 써질 때  햇빛마을 아파트 뒤에 있는 산에 자주 다니고, 아침에 일찍 산책고 가고 뭐 그렇게 극복했죠.”

문 시인에게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 물으니 시를 쓰고 난 후의 쾌감 때문이기도 하고 시 쓰는 과정에서 미적인 감각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근사한 경험이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시 쓰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제가 가장 많이 답변하는 것은 시를 쓰고 쾌감 때문에 쓴다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시를 쓸 때는 시를 쓰지 않는 상태와 굉장히 다른 미적인 체험을 하는 것 같아요. 그걸 뭐라고 얘기해야 될까. 사물이나 생명을 바라보는 어떤 미적인 상태, 이런 상태가 있을 때 시가 태어나는 것이거든요. 그런 어떤 미적인 감각을 유지하는 자체로도 굉장히 근사한 경험이라는 거죠. 또 멋진 경험이죠.”

문 시인이 말하는 좋은 시는 마음이 있는 자리를 옮겨주는 시라고 말한다. “마음의 상태를 이동시키는 것이 시가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뭐라 그러더라. 시라는 것은 세상에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지만 적어도 세상에 불이익 또한 가져다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에 공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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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이 펴낸 주요 시집과 수필집

시집  『맨발』

문태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이 시집 이후 문 시인은 ‘전통 서정시의 계승자’, ‘서정시 가문의 적자’라는 말을 듣는다. 시인은 낡거나 사라져가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추억의 풍경들을 되새긴다. 시인의 고향이었던 김천의 풍경을 추억속에서 끄집어내 되새기고 어머니의 세계로 수렴되는 상상력의 흔적이 60편의 시에 담겨있다. 

 

시집  『가재미』

문태준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제5회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시 ‘누가 울고 간다’, 제21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 시 ‘그맘때에는’, 2005년 시인과 평론가 120여 명이 참여해 뽑은 ‘문예지에 실린 가장 좋은 시’로 선정된 바 있는 ‘가재미’ 등 총 68편의 시가 총 4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수필집  『느림보 마음』

자신만의 느림 철학이 분명하고 세상 만물과 교감하는 시인이 펴낸 첫 수필집이다. 느림보 마음 속 문장들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 같다. 그가 권하는 풍경들을 한참 들여다보고 나면 마치 고봉밥을 한 그릇 뚝딱 비운 것처럼 든든하다. 뛰어난 시인이란 분명 뛰어난 산문가임을 입증하는 수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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