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윤 자유청소년도서관장
몇 년 전 아침독서신문의 필자로서 송년회를 참석한 적이 있다. 장소는 서교동에 있는 ‘문턱 없는 밥집’이란 곳이었다. 점심식사 시간인 12시부터 1시 30분까지는 완전 친환경 식자재로 만든 비빔밥을 먹을 수 있었다. 가격은 형편 되는대로 이며, 수익금은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소농의 자립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사용된다. 꿈에나 그렸던 식당이 버젓이 현실에서 운영되고 있었다. 맛도 맛이려니와 그 평등과 나눔의 정신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기독교의 핵심 정신은 문턱 없는 밥상 공동체이며, 불교의 핵심 정신이 나눔과 비움에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친한 사람과 밥을 먹을 때에는 거친 음식도 즐겁지만, 낯선 사람과 밥을 먹을 때에는 산해진미도 모래알 씹는 듯한 느낌이 든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음식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것에는 보이지 않는 문턱이 있는 것이다. 상상해보라. 다정한 가족 간의 아침 식사에 낯선 사람이 불현 듯 끼어들어 함께 먹자고 했을 때의 느낌을. 당혹감을 넘어 낭패감마저 들 것이다. 우리에 일상은 이처럼 수많은 문턱으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었던 셈이다. ‘너는 안 돼’라는 문턱!

얼마 전에 작고한 장영희 서강대 교수는 장애로 인해 처음에는 대학입학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녀를 입학시키려면 훨체어를 타고 이동이 가능해야 하는데, 당시에 대학에서는 그러한 시설이 없었다는 점이 이유였다. 그녀를 받아들일 경우, 대학의 이동로와 건물의 구조를 바꿔야하는 어마어마한 공사를 해야만 했다. 그녀를 막고 있었던 수없이 많은 실제의 문턱을 깎아 없애야 했다. 그렇다, 한 사람을 위해서 구조가 바뀌어야 했다. 그래서 당시 그녀의 입학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나마 그것은 눈에 보이는 문턱을 깎아내리는 일이었다. 우리 사회의 도처에는 보이지 않는 문턱이 있다. 성별의 문턱으로 여성들은 소외되고, 학벌의 문턱으로 취업이 외면되며, 지역의 문턱으로 차별이 강화되고, 소득의 문턱으로 열등감이 늘어가고, 국적의 문턱으로 억압이 용인되고, 이념의 문턱으로 적들이 생산된다. 눈에 보이는 문턱은 장소에 국한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문턱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눈에 보이는 문턱은 성장하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문턱은 성장하고 변형된다.

90년대 초반까지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정규직이라는 문턱은 이제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비정규직, 기간제, 열정 페이 등의 용어가 새롭게 생겨나며 삶을 고달프게 한다. 문턱에 넘어져 쓰러진 자들을 위무하기보다 스팩이 부족하다는 둥, 끈기가 없다는 둥, 눈만 높다는 둥, 게으르다는 둥 모난 눈총을 보낸다.

문턱에 걸려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려는 노력도 부족한데, 없던 문턱을 만드는 노력은 쉼이 없다. 노동개혁법은 노동자를 넘어뜨리고, 테러방지법은 인권을 부순다. 의사소통을 불구로 만들고, 입에다가 족쇄를 채운다. 작가의 붓을 꺾어버리고, 작은 촛불마저 꺼버린다. 또 다른 문턱의 생산이다. 세상이 온통 문턱 투성이다.

혁명이란 체제를 전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턱을 자신이 속한 곳에서 하나하나 없애는 일일지도 모른다. 보이는 문턱을 없애고, 보이지 않는 문턱을 찾아볼 일이다. 그 문턱을 찾아내 조금이라도 깎아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일 일이다. 문턱 없는 밥상은 문턱 없는 세상이 없이는 위태롭고, 문턱 없는 세상은 문턱 없는 밥상 없이는 터무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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