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누리도서관에서 ‘손편지, 그 뜨거운 고백’전 열려

아람누리도서관 <손편지, 그 뜨거운 고백> 전 
시인 이해인 수녀가 소장해 온 다양한 손편지 전시

개성과 감성이 깃든 손글씨, 캘리그래피가 유행이다. 하지만 캘리그래피가 특별한 기술이나 취미가 아닌 시절이 있었다.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다. 컴퓨터 자판이 일반화된 90년대 이전에는 누구나가 캘리그래퍼였다. 모든 기록을 각자의 손글씨로 써야 했고, 글씨는 사람마다 모두 달랐으니까. 누군가에게 전하고픈 말을 손으로 한 자 한 자 적어 편지로 보내던 시절의 정서는, 스마트폰 자판을 엄지로 터치 해 메시지를 날려보내는 SNS 시대의 소통 방식과는 다른 특유의 온도와 밀도가 있었다.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손편지의 매력에 차분히 젖어들 만한 전시가 아람누리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다.

서로 다른 체온을 품은 40여 통의 손글씨 편지

아람누리도서관 지하 1층 ‘빛뜰’에서 지난 5일부터 열리고 있는 ‘손편지, 그 뜨거운 고백’전에 들르면, 맑은 영혼으로 언어의 실을 잣는 시인 이해인 수녀가 소장해 온 손편지 40여 편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가 열리는 빛뜰은 예술 특화 도서관인 아람누리 도서관의 중정 바닥에 자리한, 아늑함과 개방성의 두 얼굴을 품은 오픈 갤러리다. 가장 소박하지만 가장 짙은 인간의 향취를 품은 표현 매체인 손글씨 편지들을 전시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장소가 있을까 싶다.           

이해인 수녀에게 편지를 보내 온 이들의 면면은 다채롭다. 가족과 친지, 문단의 벗들은 물론이고, 이해인 수녀의 시를 읽고 감상을 보내 온 수감자들과 독자들의 편지도 있다. 한 편 한 편 읽어가다보면 편지를 보낸 이와 이해인 수녀를 잇고 있는 따뜻한 교감의 자장에 자연스레 젖어들게 된다.   

첫 머리에는 이해인 수녀의 어머니가 딸에게 보낸 편지가 걸려있다. 딸이 아니라 벗에게 보낸 편지 같다. 모녀가 신을 경외하는 낮은 겸손을 함께 나누는 도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담담하고 따뜻하게 풀어놓은 언어의 행간에 숨은, 수녀가 된 딸을 대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저절로 상상하게 된다.

박완서 작가의 편지, 검열도장 찍힌 사형수 편지 등 눈길 끌어

유경환, 피천득, 조병화 등 한국 문단의 거목들로부터 받은 편지들도 눈길을 끈다. 쉽고 소박한 언어로 쓴 글들이 그들 이름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을 한참 덜어준다. 법정 스님은 힘 있고 멋스러운 갈필 붓글씨로 편지를 적어보냈다. 소설가 박완서씨가 보낸 편지 속에는 눈물과 위로의 흔적이 절절하다.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감당할 수 없었던 고통에 던져졌을 때, 이해인 수녀의 위로와 권고로 다시 지상세계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는 고백을 담았다. 

그런가 하면 교도소 검열관의 검인 자국이 선명한 어느 사형수의 편지에서는 지상에서의 희망을 접어야 하는 한 인간이 신의 자비를 누군가에게 대신 의탁하려는 듯한 절박함이 느껴진다. 기자를 당혹스럽게 한 편지도 있다. 글씨체나 내용면에서나 가장 균형 잡힌 손편지 중 하나로 꼽을 만한 편지를 다 읽고 말미에 보낸 이의 이름을 읽는 순간 깜짝 놀라야 했다. 이름을 대면 다 알만한, 한때 세상을 들쑤셔 놓았던 희대의 범죄자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양면성, 선과 악, 용서와 구원의 문제 등의 복잡한 고민들이 동시에 밀려들어 잠시 혼란스러웠다.

‘십대들의 쪽지’ 발행인이었던 김형모 선생의 편지도 반가웠다. 그는 정기적으로 십대들을 위한 격려의 메시지를 담은 인쇄물을 만들어 전하던 분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SNS 파워 멘토 쯤 되려나. 80년대에 십대 시절을 보낸 기자 역시 김형모 선생이 만든 ‘십대들의 쪽지’를 친구들과 돌려 보곤 했었다. 그의 손편지는 그의 삶 만큼이나 반듯하고 정성스럽다. 편지 밑에 달려있는 명패에는 글쓴이의 생몰년도도 기록되어 있었는데, 김형모 선생이 오십 초반의 나이에 세상과 이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넉넉한 시간 준비해서 여유롭게 둘러보자

전시공간을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이해인 시인이 보이고, 그에게 편지를 보낸 수십명의 사람들의 마음결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허무가 동시에 느껴진다. 소박하지만 좋은 전시다. 접근성도 좋고 입장료도 없으니 준비해야 할 것은 딱 두가지 뿐, 여유로운 마음과 넉넉한 시간이다. 전시를 보고 나면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한 통 쓰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편지를 받아들 사람의 생뚱맞아하는 표정을 상상하며 말이다.

* 제52회 도서관주간 기념 특별 전시
<손편지, 그 뜨거운 고백>

시 쓰는 수녀 이해인 소장 편지전

일  시 : 4월 5일(화) ~ 4월 16일(토)
장  소 : 아람누리도서관 ‘빛뜰’ (지하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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