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상만 인권운동가
반가운 전화를 받은 것은 2015년 11월 어느날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경기 고양시가 <인권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 이에 따라 ‘고양시 인권증진위원회’를 구성하려는데 나를 인권증진위원으로 위촉하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인 11월 16일, 나는 다른 9명의 인권증진위원들과 함께 시장 명의의 위촉장을 받고 ‘고양시 인권증진위원’이 됐다.

고백하자면, 나는 참 자랑스러웠다. 더구나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다운 도시’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고양시에서 인권증진위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나의 자부심은 컸다. 그래서 나는 이러저러한 일로 나름 바쁘지만 이 중요한 일을 맡겨준 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인권증진위원으로서의 역할에 우선하고자 마음 먹었다. 그래서 인권증진위원회를 만든 고양시도 자랑하고 그 위원으로서 열심히 일하겠다는 다짐을 내 페이스북에 포스팅하기도 했다.

그러자 적지 않은 페북 벗들이 화답해 줬다. “고양시에 사시는 분들이 부럽다”는 타 도시의 벗님도 있었고 “고양시에 사는 사람인데 참 든든하다”는 페친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글을 올리고 근 8개월이 지나가는 지금, 나는 상당한 갈등과 고민 끝에 인권증진위원회를 대하는 시의 그릇된 태도에 항의 하고자 이 칼럼을 쓰기로 작정했다.

<고양시 인권증진에 관한 조례>에 의하면 위촉된 위원들의 임기는 2년이다. 그리고 시장은 ‘시민의 인권보호 및 증진을 위한 주요 시책에 대한 심의 자문을 위하여’ 10명 이내로 고양시 인권증진위원회를 둔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위원 임기 2년중 약 33%가 지나가는 8개월간 고양시 인권증진위원들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정말 실망스럽게도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고작 한 것이라고는 위원들끼리 모여 회의를 다섯 번 정도 한 것이 전부인데 이 조차도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왜 그랬을까.

애초 고양시는 인권증진위원들의 회의를 일 년에 딱 두 번만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인권증진위원들은 “그렇게 하면 유명무실한 위원회가 되니 매월 한 번씩 회의를 하겠다”며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 그러자 소관부처에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인력도 없는데 인권증진위원회만 지원할 수 없다며 대 놓고 안 된다고 했다. 더 열심히 일하겠다는 위원들의 욕심이 얼굴 붉히는 일로 번질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이것은 약과다. 더 큰 문제는 인권증진위원회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고양시에는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인권의 문제는 경계지점이 없다. 세상 어느 것도 ‘인권의 눈으로 돌아보면’ 문제가 아닌 것이 없다. 더구나 100만이 넘는 도시답게 고양시에는 이러저러한 인권 관련 사안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인권 현안에 ‘고양시 인권증진위원회’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 권한도 없고, 예산도 전무하기 때문이다.

고양시는 왜 이런 말뿐인 ‘인권증진위원회’를 만들었을까. 최성 시장은 이런 문제에 대해 알고나 있을까. 나는 이것이 매우 궁금하다. 더 아쉬운 일은 인권증진위원회가 출범한 후 시정 업무에 쫒기는 최성 시장이 초기 두 차례 회의에 참석했을 때 일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를 비롯한 인권증진위원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어 회의에 참여하는 성의라도 보여준 시장에게 매우 고마워했다. 그때 나는 최성 시장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

“고양시 인권증진위원회가 허울뿐인 기구가 되지 않도록 시장님께서 실질적인 권한과 역할을 보장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최성 시장은 단호한 표정으로 “당연히 그렇게 해 드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제 그 약속을 이행해 주실 때가 왔다. 나는 인권증진위원회가 고양시의 ‘장식용 꽃’이 되지 않도록 해 줄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인 고양의 또 다른 상징으로, 그리하여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인권증진위원회’가 될 수 있도록 고양시가 인권증진위원들과 함께 노력해 줄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나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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