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로컬푸드 사업의 성공요인과 과제

소농 중심의 생산자, 거대 소비시장 강점
농협·지자체 통합적 홍보 전략 필요
고양의 대표적 브랜드로 성장 기대

장항동에서 1400여 평의 밭을 가꾸는 농업인 조성업씨는 하루가 무척 바쁘다. 새벽 4시 이전에 밭으로 ‘출근’해서 점심 무렵의 잠깐 휴식을 빼고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몸을 놀린다. 요즘에는 호박과 가지, 양파 등을 부지런히 수확한다. 농사만 짓는 건 아니다. 상품을 포장하고 매장에 납품하는 일도 매일같이 본인이 직접 한다. 그렇게 쉴 틈 없이 일하지만 입에서는 연신 콧노래가 나온다. 일주일에 한 번씩 통장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로컬푸드 매장에 출하할 애호박을 수확하고 있는 농업인 조성업씨.

“로컬푸드직매장 덕분에 살 맛 납니다”

변화는 재작년 농협에서 운영하는 로컬푸드직매장이 문을 연 이후 시작되었다. “이전에는 밭농사를 지어 봐야 규모가 작아 도매시장에 납품이 쉽지 않아한 해 고작 1800여 만원 정도 벌었지요. 그러던 것이 지난 해 로컬푸드직매장에 납품을 시작하면서 매출액이 4000만원으로 껑충 뛰었어요.” 품종을 늘리고 수확시기를 다변화 한 올 해는 7000여 만원의 수익을 기대하고 있단다. 넓지 않은 농지에서 부부의 노동력만으로 이룬 성과치고는 괄목할만한 매출규모다. “로컬푸드직매장에 내다 판 농산물의 정산금이 매 주 통장으로 입금됩니다. 유통 시스템 하나 바뀐 것이 생활을 이렇게 크게 바꿔놓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요즘엔 생각지도 않았던 연금을 받는 기분입니다.”
 
로컬푸드직매장이 고양시에 첫 선을 보인 것은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2014년 문을 연 일산농협 풍산지점의 로컬푸드직매장 1호점을 시작으로 원당농협, 벽제농협, 일산농협 2호점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사업 초기만 해도 로컬푸드직매장의 성공적 안착을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로컬푸드직매장은 개장과 함께 서서히 소비자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지역주민들을 로컬푸드의 수요층으로 흡수해나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각 매장에는 보다 신선한 농산물을 고르기 위해 개장시간에 맞춰 줄을 서는 손님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을 정도다. 매장의 숫자도 지속적으로 늘었다. 지난 달 송포농협과 지도농협이 연이어 매장을 개장하면서 현재 고양시에는 총 여섯 곳의 로컬푸드직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숫자로 보나 비율로 보나 시군 지역 중 단연 전국 1위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고양시가 로컬푸드 사업의 성공을 상징하는 새로운 메카로 부상한 것이다. 성공의 이유, 과연 무엇일까?

부지런한 매장 관리로 많은 단골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원당농협 로컬푸드직매장.

사업 2년만에 전국적 성공 모델로 주목

 로컬푸드란 지역에서 생산한 싱싱한 농산물을 중간 유통을 최소화하여 인근 소비자들에게 연결하는 유통 시스템을 총칭하는 용어다. 생산자가 직접 가격을 결정하고 포장과 납품까지 책임지는 방식이다. 잔류농약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유통기한을 단 하루로 잡아 안전성과 신선도를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10여 년 전 전북 완주군의 용진농협이 효시가 되었는데, 최근에는 한참이나 후발주자인 고양시가 용진농협의 명성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여섯 개의 직매장이 동시다발적인 정착과 성장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장마다 하루평균 650~1200명 내방

“용진농협으로 처음 벤치마킹을 갈 때만 해도 고양에서의 성공을 기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어요. 소비자들은 다양한 농산물을 원하는데, 고양시는 생산 농산물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막상 개장을 하자 우리도 놀랄 만큼 소비자들의 호응이 좋았어요. 건강하고 깨끗한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이토록 높을 줄 몰랐던거죠.” 일산농협의 로컬푸드 사업 담당자의 말이다.
로컬푸드의 ‘안착’은 단순히 매장 숫자 뿐 아니라 운영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로컬푸드직매장 개장 이전에 하나로마트를 운영했던 벽제농협의 경우 지역농산물의 매출규모가 로컬푸드직매장으로 전환 후 5배 가까이 뛰었다. 일산농협 1·2호점과 원당농협도 지난 해 각각 66억원, 20억원, 68억원의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일일 내방객도 650~1200여 명에 이른다. 매출의 증가는 그대로 출하농가들의 실질적인 소득 증대로 이어졌다. 농협이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사업을 벌였다는 농업인들의 칭찬이 이어지는 이유다.

소비자의 선택, 생산자의 변화 이끌어

고양의 로컬푸드직매장이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뭘까. 김진의 일산농협 조합장은 “생산농가와 밀착되어있는 거대한 소비시장이야말로 로컬푸드 사업의 최대 성공요인”이라고 꼽았다. “로컬푸드 사업의 핵심 변수는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라는 그는 “사업 초기부터 소비자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접근방법을 모색했더니 해답이 하나씩 나오더라”고 말했다. 

일산농협은 최근 풍산동 로컬푸드직매장에 우리콩으로 만든 즉석두부코너를 열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승엽 벽제농협 조합장은 고양시 농가의 특성을 지목했다. 고양에는 대규모 농사를 짓는 대농보다 소농 중심의 부업농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이 로컬푸드직매장이 문을 연 후 의욕을 가지고 납품에 열심을 내고 있다는 것. “로컬푸드직매장이야말로 소농들에게 가장 적합한 유통 형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단일품목을 재배해 대규모 도매상에 납품하는 대농에 비해, 소비자들의 필요에 유연성 있게 대응할 수 있는 소농들이 로컬푸드 사업의 가장 좋은 파트너라는 의미다.

로컬푸드직매장은 지역과 밀착된 행보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매장을 찾아 체험학습을 하는 어린이집 친구들을 맞이하고 있는 이승엽 벽제농협 조합장. 

소비자들의 관심과 반응을 즉각적으로 접하면서 생산자들의 의식과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장항동에서 상추와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는 한 출하자는 “요즘엔 조합원들끼리 만나면 소비자들이 어떤 품종을 좋아한다더라, 새롭게 뭘 심으면 재미를 본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수시로 한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고 말했다. 변화에 대한 저항이 가장 크다는 농업인들이 스스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로컬푸드 사업이 가져다주는 실익이 그만큼 직접적이라는 사실의 방증이다.  

효율적 행정 지원과 의욕적 경영 맞물려

행정의 적절한 지원도 한 몫 했다. 농업기술센터는 잔류농약검사서비스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며 안전성의 기준을 엄격히 만들었다. 매 주 각 매장에서 가져 온 농산물을 농업기술센터에서 검사하는데, 기준치를 넘긴 농산물이 발견될 경우 커다란 불이익을 준다. 출하자 교육과 출하농가 인증을 통합적으로 실시해 소속 조합의 구분 없이 매장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한 점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덕분에 차별화된 상품을 생산한 출하자는 고양의 로컬푸드직매장 어느 곳에나 납품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지역농협마다 차별화를 꾀하며 선의의 경쟁이 더해 진 것도 로컬푸드 사업의 성공을 재촉한 기폭제로 작용했다. 올 해 후발주자로 문을 연 송포농협과 지도농협의 경우 앞서 사업을 시작한 매장들의 장단점을 면밀히 파악해 자신들만의 주특기를 만들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이재영 송포농협 조합장은 “맛과 품질을 인정받는 송포쌀을 우리 매장의 간판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판촉 전략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고, 장순복 지도농협 조합장도 “고객을 로컬푸드직매장으로 유인하기 위해 고품격 숍인숍을 마련하는 등 지도농협 직매장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조합과 생산농가가 하나가 되어 최고의 매장을 만들겠다"며 힘찬 출발을 다짐하는 송포농협 로컬푸드직매장 관계자들과 출하농업인들. 

기존 매장들의 변신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원당농협은 차량을 이용한 찾아가는 로컬푸드 직거래 장터를 야심차게 시도할 계획이고, 벽제농협은 출하농가의 연중 생산체계를 지원하기 위해 비닐하우스 및 저온저장고 설비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일산농협의 행보는 더 적극적이다. 일산농협의 김희경 홍보팀장은 “장항동에 개장 예정인 제3매장을 종합 로컬푸드몰로 꾸밀 예정이다. 규모와 서비스가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대한 개장식과 함께 소비자를 향한 첫 걸음을 뗀  지도농협 로컬푸드직매장.

지도농협 로컬푸드직매장 안에 숍인숍으로 들어선 유명 베이커리.

품종 다양화와 가공품 증대, 여전한 과제

로컬푸드 사업의 미래가 마냥 장밋빛인 건 아니다. 고민거리도 여전하다. 사실 로컬푸드직매장은 농가에 더 많은 소득을 돌려주기 위해 운영자가 취하는 마진을 12%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조합 입장에서 보자면 현재로서는 운영상의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구조다. 매장의 모 관계자는 “전체적인 매출 규모를 파격적으로 끌어올려 규모의 경제 원칙에 따라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보다 훨씬 확대된 다품종 전략으로 상품의 구색을 갖춰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이와 관련해 농업기술센터의 소재식 도시농업팀장은 “일부 농가에서 다품종 전략을 선구적으로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면서 출하농가의 보다 적극적인 도전을 요청했다. 아울러 센터에서도 신품종에 대한 영농교육을 보다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장 초기에 비해 다양해진 로컬푸드직매장의 매대. 하지만 여전히 품종의 다양화는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다.

가공품의 비중을 높이는 것도 해결 과제다. 농산물을 즙, 가루, 환, 엑기스 등으로 가공하면  수익성을 탁월히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앞서 로컬푸드 사업을 정착시킨 일본의 경우 가공품의 매출 비율이 40%에 이르지만, 고양시 로컬푸드 매장의 경우 겨우 5%에 미치는 수준이다. 고양시농업기술센터에서는 로컬푸드직매장에서 판매되는 제품 중 가공품의 비중을 25%대로 끌어올린다는 목표 아래 센터 안에 농산물종합가공실을 마련하기로 했다. 일산농협에서 새로 개장을 준비중인 3호 매장에도 가공실 설계가 포함되어 있어 개장 이후의 성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 외에도 로컬푸드직매장에서 판매하고 남은 작물을 폐기하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대규모 식당이나 소비처를 연결하는 문제, 매일 매장을 들러 생산품을 납품하는 것이 어려운 생산농가를 위해 납품 대행 차량의 운영 등도 검토되어야 할 아이디어다.

고양만의 성공 모델 위해 효율적인 역량 집중 절실

한편에서는 로컬푸드직매장에서 유통되는 농산물 중 일부에 불과한 친환경 농산물의 비중을 파격적으로 높여달라는 요청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하다. 생산단계부터 농약을 전혀 쓰지 않아야 하는 친환경 농산물은 당연히 가장 높은 품질의 농산물임에는 분명하지만, 생산량과 유통가격을 생각하면 무조건적인 확대만이 정답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현재와 같이 잔류농약 검출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농산물이라는 명성에 부합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 다행히 농업인 스스로 화학농법의 폐해를 인식하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적게 사용하는 농법으로 점차 전환하고 있는 모습들이 감지된다. 한편에서는 벽제농협의 친환경 우렁이쌀과 같은 상품을 명품 브랜드로 만들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생산농가의 태도 변화, 가공품의 비중 증대, 친환경 명품 브랜드의 개발과 함께 궁극적으로는 로컬푸드 매장의 추가 개장이 고양시의 전체 로컬푸드 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100만 인구를 지닌 고양시의 규모로 볼 때 현재의 6개 매장에 더해 4개 정도의 매장이 추가로 건축되면 고양시 전역의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적정 규모를 비로소 갖추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출하농가의 과잉 공급 물량도 남김없이 소화할 수 있게 된다. 로컬푸드 인프라 확대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과감하고 지속적인 예산 지원이 절실한 까닭이다.
로컬푸드의 가치와 내용에 대한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홍보 전략도 시급히 제고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소비 트렌드를 살펴보면, 대형 쇼핑몰에서 소비재와 식품을 한꺼번에 구매하는 패턴이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공산품의 온라인 쇼핑몰 구매가 확대되면서 먹거리는 오히려 품질 좋은 제품을 소량으로 직접 구매하는 소비패턴이 확산되고 있다. 로컬푸드야말로 이러한 새로운 소비 트렌드에 가장 어울리는 유통 시스템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볼 때  직매장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각 조합별로 자체적인 홍보만 펼치고 있는 현실은 아쉬움이 크다. 지자체와 각 조합이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홍보 전략을 수립하여 로컬푸드 농산물의 품질과 가치를 올바로 홍보한다면 거리가 조금 먼 소비자들도 로컬푸드직매장으로 불러모을 수 있을 것이다. 100만 고양시민 전체를 로컬푸드의 고객층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생산농가와 소비자가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매개로 행복하게 만나는 고양시만의 로컬푸드 사업 모델을 고양시의 대표적인 브랜드 중 하나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고양시는 그만한 가치와 잠재력이 충분한 도시다. 이미 디딤돌은 마련되었다. 잠재적 가능성도 확인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건강한 먹거리의 행복한 기적, 고양에서 현실이 되는 꿈을 꿔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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