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윤 자유청소년도서관장
토마 피케티의 『 21세기 자본 』의 핵심은 명료하다. 세계적으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넘어섰으며(r>g), 그에 따라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노력해도 돈 가진 사람들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 이 불평등의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피케티는 돈이 더 많은 사람이 세금을 더 내는 누진세와 국제부유세를 주장한다. 총자본과 총노동의 싸움에서 결국은 총자본의 양보와 배려를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결의 키는 자본가가 쥔 셈이다. 21세기 노동자는 그야말로 찬밥 신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 이후에 인공지능과 미래사회에 대한 갖가지 예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향후 20~30년 안에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50% 이상 없앨 수도 있다는 공포스런 이야기도 등장했다.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도 인공지능은 현존하는 거의 모든 직업에서 인간을 밀어낼 것이며, 현재 학습하는 내용의 80~90%는 미래에 쓸모없는 것이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인간 vs 기계  』를 쓴 김대식은 특히 인공지능 기계를 가진 사람(소수 자본가)이 인간을 대체한 영역에서 생겨난 소득을 다 가져간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불평등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말한다. 이제 1 : 99가 아니라 0.00001 : 99.99999로 불평등의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는 예언도 가능하다. 노동자들은 이리 치이고 저러 차여 거의 만신창이가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언발에 오줌누기로 내놓은 대안이 창조성 또는 창의성이다. 인공지능이 도달하지 못하는 영역, 아직은 인간만이 가능한 영역을 개발하고 창조해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막중한 임무가 미래 세대에게 맡겨졌다. 하라리는 지금의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술은 늘 변화하며 사는 방법, 모르는 것을 마주하는 방법일 것이라며, 다시 한 번 창조성을 강조한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지금의 학교 교육으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능력이다. 사회와 교육이 창조적이지 않은데, 노동은 이미 정규직과 비정규직, 알바와 백수로 갈가리 찢겨졌는데, 어디에서 창조성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수사학은 화려하지만 현실은 비참하다.

차라리 정직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어떤가? 지난 500년간 인구는 14배가 늘었지만 생산은 240배, 에너지 소비는 115배 늘었다. 그렇다면 산술평균적으로 인간의 삶은 17배 이상 나아져야 했다. 과연 그러한가? 133년 전에, 기억하라 133년 전이다. 라파르그가 쓴 『게으를 수 있는 권리』에 따르면 기계의 1분 동안의 작업은 노동자 노동의 100시간에 해당된다고 한다. 기계가 1분만 생산해도 노동자는 10일을 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기계의 혜택은 노동자에게 돌아간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자본가에게 돌아갔으며 노동자에게 돌아온 것은 실업이나 가혹한 노동착취였다. 만약에 기계가 노동자의 것이었다면 같은 결과를 낳았을까?

21세기 노동자의 핵심과제는 부자들의 양보와 배려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생산된 부가 소수 부자들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따라서 기계나 인공지능과 결합된 로봇이 소수의 손에 넘겨지는 것을 넋놓고 바라봐서는 안 된다.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은 이제 인간 고유의 기능이 아니다. 기계나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더 뛰어난 노동을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기계와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협력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그 협력의 결과물들이 공유될 수 있도록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 혜택이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나갈 수 있도록 사회를 조직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진화의 방향이다. 이른바 인간과 기계가 함께 성장하는 공진화다.

21세기 노동의 현재는 암울하고, 그 암울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것은 죽음의 길이다. 그러니 21세기 자본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을 멈추고, 21세기 노동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야 한다. 오늘의 노동이 그리는 사회가 미래의 아이들이 걸어갈 사회다. 우리가 걸어가는 노동의 길이 지난할 수록 미래의 아이들이 걸어갈 길은 훤할 것이다. 이 따위 세계를 물려줄 수는 없잖은가?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