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증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산황산 마을을 걷다

산황동 마을엔 어딜 가나 산딸기가 지천이다. 사진은 손바닥모양의 잎이 달린 서양산딸기.

사방이 닫혀있어 고즈넉한 마을풍경 간직
집집마다 끼고 있는 텃밭마다 채소가 한가득
"골프장 증설되면 주민들도 산짐승 신세"
시설 위해 이야기를 추방할 권리가 있을까

“산황동이 어디더라?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 와 산황동 마을을 걷고 있다고 하니 돌아온 대답이다. 큰 길 건너 백마마을에 살면서도 산황동을 정확히 모른다. 위치로만 따지면 고양시의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지만, 사방이 닫혀 있는 탓에 마을 주민이 아니면 굳이 들어설 이유가 없는 동네가 산황동이다. 북쪽으로는 산황산 언덕 너머 고양대로가, 서쪽으로는 외곽순환도로가, 남쪽으로는 경의중앙선 철길이, 서쪽으로는 도촌천이 마을을 단절하듯 감싸고 있다. 덕분에 지금껏 시골 마을처럼 고즈넉한 풍경들을 간직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해가 기울 무렵을 기다려 산황동 마을 나들이에 나섰다.

마을 입구에 솟은 골프연습장
산황동 진입로에 들어서면 첫 머리부터 유난히 높고 위압적으로 보이는 골프연습장과 마주쳐야 한다. 눈에 띄는 건 연습장의 기둥과 그물이지만, 사실 그것들은 수면위로 솟은 빙산의 머리에 불과하다. 그 뒤편으로 9홀의 넓은 필드가 산황산 자락의 절반을 깎아먹고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빽빽한 나무 생울타리로 시야를 완벽히 차단해서 여간해선 그 안에 필드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힘들 정도다.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골프장은 거대하고 투명한 유령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뜨내기 나들이꾼의 시선이겠다.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들에겐 존재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일테니.  

마을에서 만난 화사한 맨드라미밭. 생화로 꽃시장으로 나간다.  

이야기가 있는 마찻길과 느티나무길 
골프장 입구를 지나자 비로소 마을의 진짜 얼굴과 마주한다. 아담한 산을 품고 있고, 황토흙이 기름져 예로부터 산황동(山黃洞)이라는 이름을 얻은 동네. 초입부터 보라색과 흰색이 화사한 도라지꽃 사이로 산딸기가 지천으로 익어가고 있다. 넓은 텃밭을 끼고 있는 농가 입구에는 능소화가 한창이다. 예전엔 따듯한 물이 솟는 샘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포장도로 밑으로 덮여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온수(溫水)골이라는 이름만이 옛 기억의 흔적을 지키고 있다. 온수골을 관통해 마을로 내려서는 길을 주민들은 ‘마찻길’이라고 불렀단다. 산황동은 예로부터 채소를 길러 읍내와 서울에 내다 파는 집이 많았는데, 채소 를 실은 마차가 산황산 언덕을 넘는 길을 내기 위해 주민들이 돈을 모아 집 두 채 값을 치렀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노란 공중전화부스가 놓인 느티나무길. 시원한 그늘 아래 아기자기한 쉼터가 숨어있다.

마을 아래에 노란 공중전화 부스가 놓인 예쁜 길이 나타난다. 길 양쪽으로 늠름한 느티나무 가 시원한 가지를 드리웠다. 그늘 아래로는 잔디밭과 쉼터, 조각상 등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는 길이 100여 미터 이어진다. 원래 밭과 습지였던 땅이었단다. 화려하진 않지만, 누군가의 손길과 애정이 아주 오래도록 닿은 흔적이 역력하다. 마을의 아스팔트길 한 토막을 이토록 정감 있는 공간으로 가꾼 이의 마음이 나들이꾼에게도 푸근하게 와 닿는다.  

오밀조밀 주렁주렁, 밭농사 백화점
채소를 마차로 실어 나를 일이야 없어졌겠지만, 눈여겨보니 마을에선 여전히 밭농사가 풍요롭다. 집집마다 끼고 있는 텃밭에는 종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바닥에는 고구마 줄기가 뻗어있고, 지주를 세운 고추밭엔 풋고추가 뺨을 물들일 채비를 하고 있고, 그 아래에선 상추가 푸짐하게 잎을 채우고 있다. 어느 집 밭을 둘러봐도 마찬가지다. 단일 작물을 드넓게 재배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잎채소, 뿌리채소, 열매채소 십여 종이 한 땅에서 사이좋게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알찬 결실을 생산해내고 있다. 대도시 근교의 소규모 자영농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집집마다 구색도 다르고 솜씨도 다른 농사 텃밭 구경하는 재미에 발걸음에 속도가 붙지 않는다. 한 두 시간 안에 마을을 한 바퀴 휙 돌아보려던 애초의 조바심을 내려놓는다. 그냥 천천히, 눈길 붙드는 것 하나하나를 느긋하게 들여다보기로 한다. 왠지 여기서는 그래도 될 것 같다. 산황동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마을인가보다.

여러 가지 작물이 사이좋게 자라는 농가 인근의 텃밭.

산기슭에 깃들어 살아가고픈 사람들
산신당 깃발이 내 걸린 길을 따라 잠시 접어드니 숲의 초입에 작은 당집이 나타난다. 오두막 안에는 부처님을 모셔 놓은 법당이, 뒤란에는 산신령을 모신 제단이 자리를 잡고 있다. 기도하기 좋은 곳을 찾아 30여 년 전에 이곳 산황산으로 들어왔다는 보살은 이 곳을 산황산의 정령이 모이는 곳으로 여기며 심신을 맑게 하며 산신당을 지키고 있단다. 그는 7년 전 골프장이 들어선 것도, 새롭게 확장 소문이 나도는 것도 속상하기만 하다. 생존의 터전에서 내 몰린 산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도 했다.  
“골프장이 확장되면 이곳 주민들도 산짐승 신세랑 다를 게 없게 되겠지요. 외부인들 눈에는 잘 띄지 않겠지만, 산황산 기슭에서 소박하고 조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냥 이대로 평안하게 살고 싶은 게 욕심인가요?”      

30년째 산황산 신당을 지키는 윤인숙씨.

아기자기한 화단과 화사한 벽화담장
텃밭과 함께 집 앞에 꾸민 작은 화단 구경하는 재미도 솔찮다. 돌이나 블록으로 야트막한 경계를 만든 화단에는 집주인의 개성과 정성이 듬뿍 깃든다. 작은 꽃을 심고, 모양 좋게 자갈을 쌓으며 가꾸는 것은 마을길 풍경만이 아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의 풍경, 화단에 핀 해바라기가 나들이꾼에게 건네는 대화 신청 쪽지처럼 느껴진다. 울타리 화단을 개인 블로그의 원조라 불러도 좋으리라.
어느 집 담벼락에 예쁜 벽화가 그려져 있다. 흰 바탕에 꽃과 꼬마 위로 여름 저녁의 게으른 햇살이 내려앉는다. 솜씨 좋은 그림들이 골목마다 줄줄이 등장하는 유명 벽화 마을의 그 어떤 벽화보다도 멋스럽고 예쁘다.

예쁜 그림 위로 여름 저녁의 게으른 햇살이 걸려 있다.

담장 아래 자투리 공간을 예쁜 화단으로 꾸민 집주인의 마음이 전해온다.

골목에서 시를 읽고, 나무의 이름을 불러주다
골프장이 확장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산황동 마을엔 다른 마을에 없는 몇 가지 풍경이 만들어졌다. 마을 곳곳에 시인들의 시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기도 하고, 산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면 소나무며 참나무들이 이름표를 달고 있기도 하다. 마을길을 산책하다 수시로 발을 멈추고 문득 등장한 아름다운 시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오솔길을 거닐며 나무 하나하나의 이름들을 불러주는 일 또한 얼마나 근사한가. 하지만 이런 풍경들이 만들어져야만 하는 이유를 헤아리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산황산을 지키려는 이들이 벌이고 있는 다양한 문화운동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바꾸려는 자의 욕망과 지키려는 이의 절박함이 충돌하는 첨예한 문제에 대해 함부로 언급을 할 자격이 나들이꾼에겐 없다. 그러나 시를 읽는 방식으로, 나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방식으로 뜻을 모아가는 분들의 방법론에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산황산 산길 초입의 밤나무 쉼터. 마을과 숲, 그리고 쉼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산황산 숲의 일부 나무들은 저마다 이름표를 달고 있다.

세월을 끌어안고 마을을 지켜봐 온 당산나무 
마을의 남쪽 길로 돌아나오니 드디어 시야가 탁 트인다. 도촌천을 앞에 두고 넓은 논이 펼쳐진다. 건너편으로는 경의중앙선 철길 너머 일산신도시 풍경이 실루엣으로 드러난다. 줄지어 선 아파트 단지, 끄트머리의 복합에너지시설, 그리고 최근들어 일산의 스카이라인을 접수해버린 Y-시티의 모습이 조망된다. 산책자가 살고 있는 마을이지만 생경하다. 물리적 거리보다 훨씬 먼, 시간과 질서의 이질감이 이곳과 저 곳 사이에 깊은 해자처럼 놓여 있는 듯 하다. 
마을길은 다시 산황산 기슭을 끼고 안쪽으로 꺾인다. 당첨말이다. 마을 안쪽에 우람한 느티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다. 대대로 마을의 신목으로 여겨 온 노거수(老巨樹)다. 680년 전 조선 도읍지를 찾아 일대를 누볐던 무학대사가 이 마을을 지나며 심은 나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키는 크지 않지만 밑둥의 두께가 엄청나다. 한 쪽 팔이 무거웠는지 굵은 가지 하나를 단단한 쇠 기둥으로 받치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마을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았을 당산나무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진다. 나들이꾼에게 무슨 이야기라도 들려주면 좋으련만, 생각해보니 건방진 욕심이다. 다만 나무가 살아온 세월의 두께를 짐작해보는 것으로 예의를 갖추고 자리를 뜬다.    

마을 사람들이 신목으로 여기는 당첨말 느티나무. 수령이 자그마치 680년이다.

이야기가 머무는 공간은 어디인가.
어느 덧 해는 저물었다. 산황동 마을 산책을 하며 마을길 걷기와 산길 걷기를 수시로 반복했다. 마을에선 산과 숲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흔적이, 산길에선 마을을 푸근히 품는 산의 기운과 마주친다. 걷다 보니 어느 새 산과 마을, 숲과 사람의 경계 자체가 뒤섞인다. 숲이 곧 마을이고, 산이 곧 사람인 동네가 산황동 마을이다.
무언가를 번듯하게 지으려면 뭐가 있어야 할까?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된다. 마을이 품어내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면 뭐가 있어야 할까? 이건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숲이 있어야 하고, 생명의 순환이 있어야 하고, 세대와 세대로 이어지는 삶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세월이 한참이나 품을 내 줘야 한다. 분명한 건 하나다. 돈으로는 결코 ‘이야기’를 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시설’을 짓기 위해 ‘이야기’의 공간을 추방할 권리가 과연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우린 너무 예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마을 산황동을 거닐며 나들이꾼의 머릿속을 내내 맴돈 생각이다.       

 

산황산 마을 남쪽 길가에 핀 도라지꽃.

길가의 해바라기가 나들이꾼을 반갑게 맞이한다.
산황산 서쪽으로는 도촌천과의 사이에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있다.
시원한 저녁 바람 맞으며 도촌천 뚝방을 따라 나들이를 마쳤다.

산황동 마을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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