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공간 5 - 맥주가 있고 책이 있는 아르띠잔 북앤바

 

특별하고 흥미로운 북카페 겸 서점 '아르띠잔 북앤바'가 장항동에 문을 열었다.   

 

‘공감공간’ 꼭지 연재를 맡은 후 주변의 지인들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 생겼다. “소개할 만한 개성 있는 공간, 어디 없을까요?” 신기하게도 며칠 사이에 한 북카페에 대한 추천이 반복해서 들어왔다. 누구는 책 읽기 좋은 곳이라 하고, 다른 이는 주인장이 신기하고 재밌다고도 한다. 그런가하면 한 달에 딱 한 권의 책만 선정해 판매하는 ‘서점’이라고도 했다. 이름이 ‘아르띠잔 북앤바’(이하 아르띠잔)라나? 호기심 급상승. 하지만 가게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일산경찰서 옆 단독블럭 골목을 헤매다가 결국은 주소를 검색해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았다. 도착해보니 이게 뭐지, 가게 간판도 없잖아? 길가에 덩그러니 나와 있는 초크보드만이 음료와 맥주를 파는 카페임을 강변하고 있었다.   

 

북카페 앞에 세워진 초크보드와 대나무(오죽) 화분이 간판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문 밖에서 잠시 느꼈던 당황스러움과는 달리 안으로 들어서자 공간이 품은 독특한 기운이 비로소 감지된다. 좁지도 넓지도 않은 실내에 제각각의 모양을 한 테이블이 각자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책들도 꽤 많은데 디스플레이가 역시나 제각각이다. 삼단 책장에 가지런히 자리잡은 녀석도 있고, 넓은 테이블위에 자유로이 펼쳐져 있는 것들도 있다. 좀 더 세심히 살펴보니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놓인 듯한 소품들도 평범치 않다. 골동품점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16mm 필름 촬영기도 있고, 아프리카에서 가져 온 악기, 가면, 중국에서 가져 온 고양이 기와도 눈에 띈다. 하나같이 이마에 ‘나 물 건너 왔소’라고 써 있는 소품들이 제각각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고 말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르띠잔 북앤바의 실내. 테이블과 의자 모양도, 책의 진열도 자유분방하다.

 


다큐멘터리 장인들이 만든 아지트 

아르띠잔 북앤바는 사실 다큐멘터리 독립 제작사인 ‘아르띠잔’의 작업 공간이다. 아르띠잔이라는 이름은 짐작대로 ‘아트’와 ‘파르티잔’을 합친 단어란다. 예술의 참된 가치를 지키는 숨은 장인들을 찾아내는, 또는 본인들 스스로가 그런 장인들이 되겠다는 다짐을 담았나보다. 회사 이름이 그대로 카페의 이름이 됐다. 그러니 카페는 현실의 공간에 구현한 영상예술 게릴라들의 숨은 아지트쯤 되려나?

공간을 손수 꾸민 이는 회사의 대표이자 베테랑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김병수 PD다. 작업공간을 물색하다가 작업실을 겸한 서점&북카페를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동네에 사는 이웃들이 마실 오듯 찾아오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문을 열었지만, 아직까지 손님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하지만 개성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소식에 귀가 밝은 작가, 출판사 사람들이 알음알음으로 많이 찾아온다.

아쉽게도 김병수 PD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위해 해외 출장을 나가 당분간 볼 수 없단다. 대신 아르띠잔에서 함께 다큐를 만드는 작가 두 명이 손님도 맞고 각자의 작업도 진행한다. 올해 5월에 문을 열었다는데 작가 한빛샘씨는 그날이 ‘바다의 날’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동안 바다 아이템의 다큐 작업을 많이 한 인연 때문인가봐요. ‘하나뿐인 지구’, ‘세계테마기행’ 등을 오랫동안 작업했는데, 바다와 관련된 영상들이 많았어요.” 최근에는 내년 1월 방영을 목표로 ‘다큐프라임-생선의 종말’이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단다. 설명을 듣고 보니 책장 위에 놓인 물고기와 관련된 책들과 한쪽 벽에 세워져 있는 서핑보드가 예사롭잖게 보인다.

 

아르띠잔 북앤바는 구석구석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숨어있다.

 

독서, 영화 등 다양한 소모임에 안성맞춤

창작을 병행하는 공간이라 손님 입장에서는 좀 불편한 점도 있다. 우선 문을 여는 시간이 들쭉날쭉이다. 김병수 PD가 있으면 저녁 10시까지 문을 열고 파스타도 솜씨 좋게 만들어주지만, 요즘처럼 촬영을 하러 떠나 있을 때는 6시까지만 문을 연다. 물론 미리 모임 요청을 하면 언제든지 ‘연장 영업’이 가능하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문을 열 때가 있고, 안 열 때도 있다. 이 무슨 배짱영업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공간의 1차적 용도가 양질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내는 산실이란 점을 너그러이 인정해줘야 할 듯.

하지만 아르띠잔에는 사소한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엄청난 매력들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우선 소장된 책들이 무척 흥미롭다. 주인장이 외국을 다니면서 모은 사진집, 팝업북, 그림책 등 좀처럼 만나기 힘든 희귀책들이 많다. 일본 작가 콜렉션도 눈에 띈다. 사회파 미스테리의 계보를 잇는 마쓰모토 헤이초, 미야베 미유키가 모셔져 있고, 누구나 좋아하는 오쿠다 히데오 등의 작품도 여러 권 만날 수 있다.

 

일본 문학의 거장 마루야마 겐지의 작품을 모아 놓은 서가. 사진은 작가의 집을 직접 방문했을 때 찍었다.

 

문화를 중심에 놓은 다양한 모임을 갖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이미 두 개의 작은 독서모임이 아르띠잔에서 열리고 있고, 금요일 저녁에는 아르띠잔 식구들이 프로그래머가 되어 영화감상 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하나의 테마를 고르면 4주 프로그램을 짜는데 그동안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보기도 했고, 10월에는 우디 앨런의 작품들을 고를 예정이다. 연말에는 아르띠잔의 메인 작가인 김경희 작가가 발표한 단편소설을 이웃에 사는 연극연출가의 도움을 받아 낭독극으로 발표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게 ‘예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아르띠잔 식구들의 성향 덕분에 가능한 일인 듯.  “차도 마시고 책도 보다가 누군가와의 대화가 그리우면 언제든 이야기를 걸어주세요.”

한 권의 책 선정해 흥미로운 콘텐츠도 만들어

아르띠잔은 작업공간이자 북카페지만 엄연한 ‘서점’이기도 하다. 다만 한 달에 딱 한 권의 책만 선정해 판매하는 ‘아주 특별한’ 서점이다. 선정된 책과 관련된 저자 인터뷰, 방문 기록 등 다양한 콘텐츠도 직접 만들어 독자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 이보다 잘 어울릴 순 없다. 그동안 6월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김경희 저), 7월 『개와 웃다』(마루야마 겐지 저), 8월 『거짓말이다』(김탁환 저) , 9월 『청춘길일』(양승우 저) 등의 책이 아르띠잔의 선택을 받아 판매대 위에 당당히 놓여 있다. 매월 선정된 책과 그 책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세월과 함께 한 권씩 쌓이면 아르띠잔만의 멋진 콜렉션이 될 듯. 10월에는 소설가 김승옥의 신간 화집을 독자들에게 추천할 예정이다. 아울러 김승옥 작가의 초기 소설집과 일본어판 번역본도 만날 수 있다. 

 

판매용 책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매대. 6월부터 9월까지 '이달의 책'으로 선정된 작품들을 한 곳에 모아 놓았다.

 

메뉴를 살펴보자. 커피는 스페셜 원두를 핸드드립해서 내고, 제주 수제차와 허브차도 맛이 괜찮다. 파스타는 김병수 PD가, 오징어먹물로 만드는 빠에야는 김경희 작가의 솜씨로 만든다. 맥주는 자유로에 있는 수제맥주양조장에서 공수한 맛 좋은 수제맥주 두 종류를 낸다. 와인도 잔으로 주문 할 수 있다.

아르띠잔에서는 요즘 공간에서 펼쳐지는 일상 자체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다큐멘터리 PD와 작가들이 동네의 골목에서 카페를 겸한 서점을 만들고 꾸려나가는 경험 자체를 ‘서점을 열었습니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만들려는 밑작업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숨은 장인들이 만드는 작지만 특별한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드나든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담긴 영상이 완성될 날을 기대해보자.

아르띠잔 북앤바
고양시 일산동구 대산로 11번길 76-7
031-912-8384


차를 주문하면 주인장이 아끼는 러시아산 명품 도자기 잔에 담겨 나온다.

 

 

남은 술만 키핑하란 법 있나? 아르띠잔에서는 책갈피 뒤에 서명을 한 후 읽던 책도 키핑할 수 있다.

 

아르띠잔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책 읽는 돈키호테와 창을 든 돈키호테. 예술은 둘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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