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책잔치 청중 필리버스터 3명 탄생

인문학 필리버스터 10개의 강의를 모두 수강한 청중 필리버스터 (사진 왼쪽부터)황시우군과 박성미씨. 오른쪽은 마지막 시간의 강연자로 나선 손택수 시인.  

고양시도서관책잔치의 가장 흥미로운 프로그램은 이틀 동안 쉼 없이 이어진 릴레이 특강 ‘인문학 필리버스터’였다. 고양시에 거주하는 특급 강사들이 나서 예술, 사회학, 과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열띤 강의를 펼쳤다. 마지막 강의가 종료된 10월 1일 밤 10시, 세 명의 청중에게 특별한 시선이 모아졌다. 이틀 동안 10개의 강의를 모두 수강해 ‘청중 필리버스터’의 과제를 완수한 이들이다. 이번 책잔치를 가장 알차게 즐긴 진짜 주인공들을 만나봤다.
                                        
“나만을 위한 시간 즐겼어요”
저녁 강의를 두 딸과 함께 들은 박성미씨

마두동에 사는 박성미씨는 초등학교 2학년과 7살짜리 딸을 둔 주부다. 여느 엄마들처럼 살림을 하며 아이들을 돌보느라 하루 하루 정신없이 살고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인문학 필리버스터 강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왠지 모를 설렘이 찾아왔다. 이번만큼은 온전히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보기로 결심을 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지금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절박함이 있었어요. 강의를 듣는 시간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꿈도 생각도 많았던 대학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도 들었구요.”
강의를 빠짐없이 듣기 위해 식사시간마다 바쁘게 집으로 달려가 밥을 차려주고 오기도 했다. 저녁 강의는 아예 두 딸을 데리고 와 함께 들었다. 기특하게도 두 꼬마는 엄마가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색칠 공책을 펴놓고 ‘지루한’ 시간을 얌전하게 버텨주었다.
어떤 강의가 가장 인상적이었냐는 질문에 박성미씨는 좀처럼 하나를 지목하지 못했다.
“모든 강의가 각각의 감동이 있었어요. 굳이 꼽으라면, 맨 첫 강의 ‘윤광준의 문화즐기기’가 시작을 아주 흥미롭게 열어줬어요. 김경윤 선생님의 ‘사피엔스가 사피엔스에게’는 인문학자의 전문적인 시각이 인상적이었구요.”
박성미씨에게 청중 필리버스터 도전은 잊고 지냈던 자존감을 회복하는 이틀간의 행복한 여정이었다. 그는 앞으로도 유익이 되는 공부나 일들을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며 두 딸을 힘차게 안아줬다.     

딸 둘을 둔 엄마 박성미씨는 인문학 필리버스터가 잊고 지냈던 꿈을 찾아 준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박성미씨의 착한 두 딸은 엄마를 위해 '얌전하게' 자리를 지켜줬다.

“기억에 남는 말 공책에 가득 적었어요”
화수초등학교 6학년 황시우군

또 한 명의 청중 필리버스터는 놀랍게도 13살, 초등학교 6학년 황시우군이다. 화정동에 살며 화수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시우는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이틀 동안 10개의 강의를 빼놓지 않고 들었다. 가족이나 친구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혼자서 말이다. 
평소에도 고양시도서관센터의 홈페이지를 자주 기웃거린다는 시우는 인문학 필리버스터 프로그램 홍보를 보고 담임선생님께 조언을 청했다. 학교 독서부 지도교사인 담임선생님은 흥미가 있으면 한번 도전해보라고 시우를 격려했다.
“어려운 대목도 있었지만, 다 재미있었어요. 노명우 선생님의 강의 ‘불안의 시대, 세상 물정을 안다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김경윤 선생님 강의는 가장 웃긴 강의였고, 홍세화 선생님의 ‘생각의 좌표’ 강의는 가장 감동적이었어요.”
생각 없이 시간만 때운 건 결코 아니다. 강의 내용을 공책에 각각 한 페이지씩 빽빽하게 정리했다. 대단한 집중력이다. 혹시 학교에서 1등을 도맡아하는 천재과 아니냐고 물었더니 전혀 아니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어른들의 판에 박힌 질문, 커서 뭐가 되고 싶은가를 기자도 물어보았다. 
“첨단 과학이나 사회학을 전공하고 싶어요. 하지만 꿈은 항상 바뀌니까 장담은 못 해요.”

매 강의마다 인상적인 내용을 공책에 꼼꼼히 정리한 황시우군이 홍세화 선생님에게 받은 서명을 자랑스레 펼쳐보이고 있다. 서명 옆에는 '소박한 자유인' 이라는 메시지가 눈에 띈다.

“삶의 즐거움을 누리는 영감 얻었어요.”
부부가 함께 강의를 들은 석영철씨

10강을 모두 수강한 청중 필리버스터는 모두 3명이지만, 석영철씨는 일찍 자리를 떠 미처 현장 인터뷰를 하지 못하고 전화로 소감을 물어보았다. 탄현동에 거주하는 석영철씨는 일부 강의를 아내와 함께 듣기도 했다. 윤광준 작가의 강의를 통해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삶을 풍요롭게 즐기는 영감을 얻었고, 홍세화 선생의 강의에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올곧은 시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고. 인문학 필리버스터 프로그램을 통해 수준 높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고양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꼈다며 앞으로도 좋은 프로그램을 기대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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