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공간 7 - 반구정과 화석정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자유로를 달리며 만나는 풍경은 사시사철 상쾌하다. 차창 왼편으로 펼쳐지는 한강을 따라 버드나무 숲과 수풀지대, 강펄이 교차하다가 어느 순간 드넓은 농경지가 펼쳐지기도 한다. 봄, 여름, 그리고 가을까지 세 계절의 흔적을 꾹꾹 눌러 담은 벼 이삭이 따사로운 가을 햇볕을 받으며 추수를 기다린다. 하지만 더 없이 평화로운 풍경을 시샘이라도 하듯 도로변을 따라 이어진 철조망이 까칠한 목소리로 긴장을 요청한다. 바다가 가까워질수록 인상이 험악해지는 철조망을 바라보는 심정은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한강이 우리나라의 큰 강 중 하구의 모습을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로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가 결국은 철조망 덕분이니 슬퍼해야 하는 건지 고마워야 하는 건지 헷갈린다.
 
정자, 풍경의 화룡정점
차를 달리면서는 좀처럼 차이를 못 느끼지만, 자유로와 나란히 흐르던 한강은 오두산 전망대를 지나는 지점에서 임진강에게 바통을 넘겨 주고는 강화 앞바다를 향해 방향을 튼다. 대개는 헤이리마을이나 임진각 평화공원을 가기 위해 이 길을 밟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조금 색다르다. 임진강변에 호젓하게 자리잡고 있는 두 곳의 정자, 반구정(伴鷗亭)과 화석정(花石亭)을 찾아가보자.            
조선시대 한강에는 경치가 빼어난 곳마다 이름 난 정자가 하나쯤은 있었다. 그 중 대여섯 곳은 멋진 자태가 복원되기도 했다. 광진구 낙천정, 동작구 효사정, 마포구 망원정 등이 그곳이다. 화선지에 그린 용 그림에 마지막 눈을 그려 넣었더니 그림 속 용이 하늘로 날아올랐다던가. 옛 사람들에게 누각과 정자는 아름다운 풍광의 정점에 얹는 한 점 눈동자였나보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풍경 속에서 올려다보는 정자의 모습이 모두 빼어난 지점이라야 비로소 장소를 점지했으니 말이다. 한강과 하구를 공유하며 이어지는 임진강의 두 정자, 반구정과 화석정이 앉은 곳도 풍광과 운치가 나무람 없다.

반구정과 앙지대로 오르는 돌계단. 노송 그늘과 어울리는 운치가 멋지다.

물새들과 벗하는 반구정
반구정은 바로 조선시대 청백리의 표상이었던 방촌 황희(厖忖 黃喜) 선생이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임진강 하구의 물결을 바라보며 여생을 보낸 곳이다. 반구정을 찾으려면 자유로를 달리다 문산천 하구를 지나면 나타나는 당동IC로 진출한다. 사목삼거리에서 왼쪽길을 택해 조금만 가면 ‘황희선생유적지’ 이정표가 나타난다. 깔끔히 단장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영내로 들어서니 황희정승에 대한 여러 자료가 전시된 방촌기념관, 황희 정승을 기려 제사를 지내는 방촌영당, 황희 정승의 동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예쁘게 쌓아 올린 돌담장과 사뿐히 날개를 펼친 기와지붕 위로 하나 둘 낙엽이 내려앉는 풍경이 여유롭다. 옛 건물의 마당에 얌전히 돗자리를 펴 놓고 가을 오후를 즐기는 나들이 가족의 단란함을 뒤로 하고 돌계단을 따라 정자로 올라간다. 신을 벗고 반구정 마루 위에 올라서니 시원하게 펼쳐진 임진강 하구 풍경이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강물 위로 무리 지어 비행하는 기러기떼를 보니 물새를 벗삼는다는 뜻의 ‘반구’라는 이름이 비로소 실감난다.

황희 정승이 만년을 보낸 반구정 앞으로는 임진강 하구의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강 건너 장단반도는 민통선 안쪽 마을이다. 추수철을 맞아 커다란 곡물 트럭이 고요한 들녘을 가로지른다. 이곳에서도 철조망은 풍광의 아름다움을 훼방 놓는다. 정자의 코 앞에 자리 잡은 경계초소에는 서늘한 긴장감마저 감돈다. 사방이 훤히 트인 조망의 명소에서 옛 사람은 강물을 바라보며 갈매기를 초청했는데, 오늘날 얼룩무늬 제복을 입은 청춘들은 철조망을 흔들지도 모르는 침입자를 스물 네 시간 살펴야 한다.

앙지대 바로 앞에 서 있는 군부대 경계초소. 아름다운 임진강 풍경이 새삼 서늘해진다.

반구정 바로 위에는 앙지대(仰止臺)라는 또 하나의 정자가 있다. 역시 황희 선생의 덕망을 우러른다는 뜻으로 후인들이 세운 정자다. 두 정자는 비슷한 듯 다르다. 반구정이 정사각형 모양의 네 칸 정자인 반면, 앙지대는 육각정이다. 마룻바닥을 채워 넣은 나무판 역시 하나는 바둑판처럼 채웠고, 또 하나는 방사상으로 깔았다. 어느 정자가 더 멋진지는 각자 보는 사람마다 다를 듯. 예정보다 늦은 시간에 반구정을 찾은 덕분에 임진강물에 얼비치는 해질녘의 황홀한 하늘을 볼 수 있었으니 행운이다. 반구정 주변에는 꽤 이름난 민물장어집이 몇 곳 있다. 지금은 보편화 된, 달짝지근한 간장 양념구이 장어요리를 처음 선보인 곳이 바로 이 동네라는 게 현대의 먹거리 사가들의 정설이다.  

반구정의 사각형 나무마루 위로 늦은 오후 햇살이 쏟아진다.

앙지대 마루는 방사상으로 뻗어 끼워 맞춘 나무판의 모양도 다양하다.

굽이도는 강 풍경이 장엄한 화석정
화석정은 반구정에서 약 6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물길로는 삼십 리 가량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두 정자 사이에서 임진강물이 크게 휘돌아 흐르는 까닭에 반구정이 서남쪽을 바라보는 데 반해 화석정은 북향을 향한다. 차이는 또 있다. 반구정 일대가 방촌 황희 선생의 유적과 기념관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문화재 공원으로 조성된 반면 화석정은 언덕 위에 덩그러니 정자 하나만 남았다. 그것도 군부대의 포 사격훈련장을 질러 접근해야 하는 험한 자리에 말이다. 기자가 찾은 날도 강 건너편 모래밭에서 전차부대의 요란한 훈련이 실시되고 있었다. 강물과 정자 사이로는 문산에서 적성으로 향하는 큰 도로가 새로 뚫려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의 굉음도 끊이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석정에서 바라보는 임진강 풍광은 역시나 일품이다. 잦았던 가을비로 제법 유량이 풍부한 강물이 정자를 꼭지점 삼아 커다란 호를 그리며 흐르는 모습은 콘크리트 초소와 전차들이 만들어내는 신산한 풍경을 무심한 듯 압도한다. 북쪽 방향으로는 개성 송악산의 윤곽도 아스라이 보인다. 화석정은 반구정보다 큰 여섯 칸 정자다. 정자 곁에는 수령이 지긋한 느티나무와 향나무가 홀로 선 정자의 벗이 되어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다.

화석정 곁에는 풍채 좋은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며 덩그러니 남은 정자의 쓸쓸함을 덜어주고 있다.


화석정은 조선 최고의 학자였던 율곡 이이(栗谷 李珥)가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논하며 여생을 보낸 곳이라 한다. 파주에는 율곡 이이의 유적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율곡과 신사임당이 묻힌 가족묘, 위패를 모신 자운서원, 이이선생 신도비, 율곡기념관 등이 멀지 않은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표정 보여 준 임진강 정자 여행
임진강변의 정자를 찾아 나선 나들이길은 기자에게 다양한 표정을 보여줬다. 풍광 고요한 곳에 자리 잡은 정자의 외롭고 쓸쓸한 아름다움도 보았고, 그 주변을 둘러 싼 살풍경한 긴장감도 보았고, 그러거나 말거나 과묵하게 흐르는 임진강의 무뚝뚝함도 보았다. 다시 자유로를 밟아 돌아오는 길에는 강물이 우측 창가로 흐른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차량의 붉은 후미등의 행렬 옆으로 군인들은 여전히 초소에서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새들은 해 지기 전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나른다. 철망을 치고 총을 겨누며 적을 지키는 힘, 그리고 무리를 따라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기러기의 날갯짓···. 아득한 시간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진짜 힘은 둘 중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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