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훈 작가 초대전 ‘나의 진정성을 위하여’

12월 5일까지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서 전시

지난 5월 풍동 애니골에 문을 연 순수미술 전시공간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에서 두 번째 기획전을 열고 있다. 이번에 초대된 작가는 국내외를 넘나들며 활발한 창작열을 선보이고 있는 조형작가 성동훈이다. 전시 제목은 ‘나의 진성성을 위하여(For My Sincerrity)'다. 아람미술관을 제외하면 전시공간의 불모지에 가까운 고양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에 미술 애호가들의 반가움이 크다.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에서 초대전을 열고 있는 성동훈 작가와 그의 작품 '산 할아버지'(스테인리스스틸, 동, 청화백자 / 2016)

‘소리나무’ 연작으로 세계적 명성 얻어

올해로 작품활동 25년째를 맞는 성동훈 작가는 열정과 에너지의 작가로 통한다. 무엇보다도 소재를 다루는 솜씨에서 강한 개성을 맘껏 표출한다. 육중한 금속, 또는 세라믹 재료를 자신만의 기법으로 다루며 독특한 형태와 질감을 만들어낸다. 활동 초기 세상에 맞서 돌진하는 ‘돈키호테 시리즈’로 젊은 작가의 패기를 펼쳤던 그는 2000년대 이후 빛과 소리라는 입체적 요소들을 자신의 작품세계 속에 도입해 보다 감각적인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하며 주목을 끌었다. 그의 대표작인 ‘소리나무’ 연작 시리즈는 아름다운 나무 형태의 금속 조형 위에 수많은 종을 매달아 바람에 따라 소리가 쏟아지는 매력적인 작품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높은 관심을 얻었다. 현재 그의 작품은 국내 유수의 미술관은 물론 독일, 일본, 대만, 코스타리카 등 세계 각국의 미술관, 또는 공공기관의 주요 지점에 소장돼 있다.

성동훈 작가가 그의 대표작인 '소리나무'의 축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여섯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규모가 제한되는 실내 전시공간이기에 압도적이고 거대한 작품들을 가져오진 못했지만, 대신 자신의 작품세계를 응축한 흥미로운 작품들을 엄선해 성동훈 작가만의 조각세계를 맘껏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다. 가까이에 있는 세련되고 편안한 공간에서 작품 하나하나의 디테일을 느긋하게 들여다보며 세계적 작가가 선물해 준 조형적 쾌감에 흠뻑 빠져보자.

다양한 소재와 기법의 작품 선보여

전시장에서 처음 만나는 작품 ‘산 할아버지’는 멋진 뿔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산양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마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에 등장하는 긴 뿔 산양처럼, 전체적인 형태가 풍성하면서도 위풍당당하다. 디테일을 들여다보면 무척 흥미롭다. 몸통은 청동으로 주조한 엽전을 이어 붙여 만들었다. 압권은 역시 머리에 이고 있는 흰색 뿔. 자세히 보니 청화백자 기법으로 제작한 세라믹 볼을 이어 붙였다. 청동과 도자기라는, 서로 전혀 다른 물성을 지닌 두 재료를 조화롭게 활용해 자연과 문명, 전통과 현대, 현실과 비현실이 혼재하는 세계를 표현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뿔눈’이라는 작품은 가장 사이즈가 작은 소품이지만 품고 있는 매력과 에너지는 결코 작지 않다. 코뿔소, 또는 일각괴수의 모양을 연상케 하는 반추상의 조형체 위에 세라믹 볼 하나가 왕방울 눈처럼 딱 박혀있다. 부릅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우뚝 솟은 뿔로는 위선과 허위를 냅다 들이받고자 하는 작가의 자아처럼 느껴진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뿔눈'(금속, 청화백자, 스테인리스스틸 / 2015)

거대한 말 머리 형상을 한 ‘헤드’ 역시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작가의 다재다능한 관심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관객을 압도하는 포스를 풍기는 말 머리를 세라믹 볼, 청자 기와, 그리고 금속으로 형상화했다. 무엇보다도 말의 얼굴 부위 금속조형의 형태가 독특하다. 주둥이 부분이 제철소의 부산물인 슬러지(쇳물을 내릴 때 만들어지는 찌꺼기 덩어리) 형태여서 무척이나 강렬한 역동성을 보여준다.

작품 '헤드'의 말 주둥이 부분. 금속 슬러지기법의 독특한 느낌이 인상적이다.

  성동훈의 창작 족적을 조금 아는 관객이라면 꽤 반가울 작품들도 있다. ‘상황-닭을 탄 돈키호테’는 그의 초기 연작이었던 ‘돈키호테’ 시리즈의 새로운 버전이다. 역시 슬러지 기법으로 만들어낸 닭 위에 올라 탄 돈키호테는 여전히 꿈과 이상을 향해 자신의 창을 박력있게 겨누고 있다. 비장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돈키호테의 모습은 정착을 거부하고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동훈 작가의 분신인 듯하다. 나무로 치면 분재에 가까운, 조그맣게 축소된 ‘소리나무’도 있다. 역시 사이즈는 작지만,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조형적 영감과 아름다움은 그대로다. 거대한 들판에 선 자연 속 나무, 또는 웅장한 공간속에 전시된 대작의 모습은 상상하는 이의 몫이다.

금속 슬러지 기법으로 형상화한 '상황-닭을 탄 돈키호테 2014' (금속, 아연도금 / 2014)

‘작가로서의 진정성’에 대한 멈추지 않는 탐구

이번 전시의 대표작은 전시의 타이틀이기도 한 ‘나의 진정성을 위하여’다.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모양은 신라시대 유물인 ‘기마인물형토기’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디테일을 살펴보니 무척이나 흥미로운 형상들이 혼재한다. 청화백자 세라믹볼로 만든 멋진 말 위에 올라 탄 인물은 바로 삼국지의 영웅 ‘관우’다. 관우는 중국의 전통속에서 전설적 무인이면서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도 취급받는 특별한 존재다. 관우를 장식하고 있는 옷들도 아주 독특하다. 어깨에는 인도의 신을 형상화한 청동주물이 얹혀있고, 하체를 감싼 갑옷도 자세히 들여다보니 중국과 네팔의 다양한 앤틱 조형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수백년, 수천년의 히스토리가 응축된 아시아 각국의 앤틱 조형들을 해체시킨 후 재배치해 성동훈 작가만의 유일무이한 창작물을 완성해낸 것이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특별히 미술 세계의 풍토 속에서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어느때보다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왜 작업을 하나, 나아가 내가 왜 살아가나를 스스로 질문하는 과정을 작품 속에 담고 싶었습니다.”

이번 전시의 표제작 '나의 진정성을 위하여'(스테인리스스틸, 금속, 청화백자, 오브제 / 2016)

'나의 진정성을 위하여' 에서 관우의 모습을 형상한 부분. 각국의 다양한 앤틱 조형물이 숨어있다.

성동훈 작가 초대전
‘나의 진정성을 위하여’

기간 : 12월 5일까지
장소 : 아트스페이스 애니꼴 (일산동구 애니골길 70)
문의 : 031-90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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