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수 소설가
젊어서부터 이가 부실해서 이래저래 고생을 많이 해왔는데 올봄 기어이 사단이 나고 말았다. 처음에는 고된 밭일에 잇몸이 들뜬 줄로만 여기고 예사로 넘겼다. 그러나 통증이 점차 심해지더니 도통 무엇을 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더 이상 견디질 못하고 치과에 갔더니 의사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잇몸의 뼈가 상당부분 녹아서 어금니 네 개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임플란트를 해 넣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치료비 앞에서 입이 떡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건강을 잃어버렸다는 정신적 충격이 훨씬 컸다.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서 일단 잇몸치료를 받아가면서 좀 더 고민을 해보기로 하고 치과를 나서는데 만감이 교차하면서 골이 지끈거렸다. 이를 어쩐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도무지 답이 보이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작년에 수확해서 만들어두었던 울금가루에 생각이 미쳤다. 울금에는 다양한 효능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항염효과도 있다. 칫솔에 치약과 함께 울금가루를 묻혀서 양치를 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 나는 단박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며칠 울금가루를 묻혀서 양치를 하고 나자 잇몸 전체가 들떠서 덜그럭거리는 느낌의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먹는 게 꽤나 편해졌다. 배추김치도 씹기 힘들었는데 일주일 뒤부터는 깍두기는 물론이고 고기도 편하게 먹게 되었다. 하다못해 이가 시려서 잘 먹지 못하던 아이스크림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에는 지속적인 잇몸치료가 있었다. 나는 의사에게 울금가루로 양치를 하면서 나타난 변화를 자세히 털어놓았고, 의사는 자기 치아가 가장 좋으니 잇몸치료를 꾸준히 병행해나가면서 어금니를 살려보자는 결정을 내려주었다.

그 뒤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에 검붉은 빛이었던 잇몸은 분홍빛으로 변했고 갈비는 물론이고 꽃게도 편하게 먹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약간의 통증은 남아서 더러 불편할 때가 있기도 하지만 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울금의 효능을 맹신하지는 않지만 나는 울금이 구강건강을 유지하는데 여러 모로 도움을 주었다고 확신한다. 그렇다고 울금 전도사를 자처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며 현대의학을 불신하자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치아를 둘러싼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자본의 지배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음식을 먹을 때 우리의 몸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밥상은 여전히 자본의 지배 아래 놓여있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돈이 없으면 삶이 불가능하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다. 스스로의 삶을 보살필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는데도 나는 그런 걸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며 지레 겁부터 먹는다. 그러나 자본의 지배가 공고해지기 이전의 삶을 돌아보면 누구나 자기가 살 집을 짓고, 옷을 만들고, 음식을 장만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발현될 모든 공간을 소비의 형태로 자본에게 내주었다.

나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문제는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에 의존하는 습관을 버리고 작고 사소한 것부터라도 내 손으로 직접 해보는 능동적 태도를 회복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의 참된 능력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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