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공원작은도서관, 북콘서트 열어

 

호수공원작은도서관 마당에서 열린 북콘서트 '물꽃책'에는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 시와 노래와 이야기 잔치를 즐겼다.

 

지난 22일 호수공원작은도서관 마당에선 ‘북콘서트 물꽃책’이 열렸다. 박미숙 책놀이터작은도서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음악이 있고 시가 있고 이야기가 있는 소박하고 따뜻한 잔치였다. 고등학생 이재형군은 10대의 솔직한 감성을 담은 랩을 들려준 후 시골집에서 홀로 지내는 할머니가 명절을 앞두고 며느리로부터 못 내려간다는 통보 전화를 받는다는 내용의 ‘명절 통보’라는 자작시를 낭송했다. 고등학생의 촉수로 노년의 고독을 상상했다는 점이 독특했다. 북콘서트의 이야기 손님으로는 어린이책도 쓰고 시도 짓는 김미혜 작가를 초청했다. 김미혜 작가는 ‘안 괜찮아, 야옹’, ‘콩쥐야’, ‘접시꽃이 필 거야’ 등의 자작시를 낭송하며 시 창작을 둘러싼 소소한 이야기들을 재밌게 들려줬다. 삶 속에서 만들어지는 솔직한 생각과 감정들이 모두 좋은 시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10대의 예민한 감성을 담은 랩과 시를 들려준 청소년 시인 이재형군.

 

 

이날 행사의 메인 게스트 김미혜 작가(사진 오른쪽)가 시를 매개로 한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어 호수공원작은도서관에서 활동하는 시 동아리 회원 두 명이 무대에 올라 자작시를 낭송했다. 시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이름도 동아리 이름도 정하지 못했다지만, 초짜 시인들이 들려주는 담백한 시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생전 처음 시를 써봤다는 칠순의 유득형씨는 하늘과 햇살과 이웃과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고마워요’라는 시에 담았고, 윤혜경씨는 철수세미와 스텐 냄비에 빗대어 나이 들어 비로소 깨닫게 된 마음의 상처에 대한 지혜를 표현했다. 이어 청중들이 즉석에서 무대에 올라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애송시를 들려주기도 했다. 

 

처음 시를 써봤다는 작은도서관 시동아리 유득형 회원(사진 맨왼쪽)이 자작시 '고마워요'를 낭송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스텐냄비와 철수세미, 스펀지수세미를 등장하는 재미있는 시 '살림살이'를 들려 준 작은도서관 시동아리 회원 윤혜경씨.

 

 

즉석에서 무대에 오른 청중 한 분이 스마트폰을 열어 애송시를 들려주고 있다.

 

이날 행사의 또 다른 주인공은 ‘마법의 시 냄비’였다. 사회자의 지명을 받고 무대에 오른 이들이 시 냄비 속에 손을 넣어 시 한 수가 적힌 종이를 하나씩 뽑았다. 자신이 뽑은 시를 조금은 쑥스러운 듯 낭송하기 시작하자 청중들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고, 낭송이 끝나자 웃음과 박수가 쏟아졌다. 고양시도서관센터 조수환 과장과 강기원 시설팀장도, 이재준 도의원도, 김효금·고은정 시의원도 이날은 멋진 낭송가가 됐다.

 

마법의 시 냄비에서 뽑은 시를 차례대로 들려 준 김효금, 고은정 시의원과 이재준 도의원(사진 왼쪽부터).

 

마지막 무대는 주교동 책놀이터에서 활동하는, 시로 만든 노래를 부르는 어린이 중창단 ‘시끌이들’이 장식했다. 어린이들의 솔직한 속내가 드러난 노랫말을 예쁜 멜로디에 담아 전해준 시끌이들의 노래는 일상에서 건져낸 생각들로 시와 음악을 즐기자는 행사의 주제를 잘 보여줬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가을 해는 호수 건너로 기울며 노을을 물들였다. 아쉬움의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는 참가자들의 마음도 노을처럼 울긋불긋해졌다.    

 

북콘서트의 마무리를 장식해준 주교동 책놀이터 어린이 노래단 '시끌이들'의 멋진 무대.

 

※호수공원작은도서관 시 동아리 회원들의 자작시를 소개합니다.


고마워요
                            유득형

바깥 세상 하늘이
높고 넓어 고맙고

아지랭이 햇살이
따뜻해서 고맙고

도란도란 이웃이
정다워서 고맙고

알콩달콩 가족이
사랑해서 고맙고

온세상이 고마워
모두모두 고맙다.

 

살림 하나
                              윤혜경

냄비는
스텐 냄비를 써야해.
어려운 환경호르몬 이야기 아니더라도
살아보니 철수세미 빡빡 문지를 일 많았어.
그땐 철수세미가 상처 내는 줄 미처 몰랐지
스텐냄비 상처가 보이고 스폰지로도 잘 닦이는 걸 알게 된 즈음
깜빡깜빡 냄비마다 태우게 되어
그나마 스텐냄비가 견뎌주는 걸 고마워하게 되지.

난 지금 든든한 스텐냄비 하나 더 필요해.
암 투병하는 전주 친구가
세수할 때 목욕할 때도 함께 쓰라며 보내준
수세미 열매 바싹 말려 만든 속살 하얀 수세미,
어느 곳에나 박박 문질러도
상처내지 않는 새 수세미로
새 냄비 닦으며
다시 살림하고 싶어
때로는 끝없이 냄비를 닦으며
살며 만든 모든 상처 없애고 싶어

 

※ 북콘서트에서 소개된 청소년 시인 이재형군의 시도 소개합니다.

명절 통보
                              이재형

한사코 바쁘면 오지 말라고 하셨던 할머니가
자식들 손주들 올 생각에 집 정리를 한다

깨끗이 집안을 정돈하고
숨막히는 고독으로 채워있던 할아버지의 방안을
아주 오랜만에 열어놓는다
사진에 괜히 말 걸며
닫힌 장롱 속에
자식새끼 손주 쓸 이불을 따땃이 접혀
담아놓는다
어디선가 콧노래가 나온다

몇 분 후 수화기 너머의
이번 명절에는 못 갈 것 같아요 죄송해요 어머니
깔쌈한 통보에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히 혹은 인자하게 알겠다고 말씀하신다

내려놓은 수화기가
할머니의 등처럼
휘어있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