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함께 뛰는 고양인> 서정우 반딧불도서관장

올해 도서관자원봉사자 2000여명
도서관 알찬프로그램 우수상수상
“일 가치 알면 소외감 느끼지 않아”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반듯하면서도 쩌렁쩌렁했다. ‘어려운 지역 아이들을 위해 열성적으로 일하는 분’이란 아주 짧은 정보만 갖고 만난 서정우 반딧불도서관장(64세).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아이들을 어디에 있게 해야 하나

반딧불도서관은 행신3동에 있는 작은도서관이다. 주변의 오래된 연립주택들과 얼핏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오랜 세월의 더께가 앉은 교회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 도서관이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마을 공부방 역할을 하는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

“행신3동은 생활보호대상, 한부모 가정이 많은 지역이에요. 아이들이 사교육은 물론 문화혜택을 받기 어렵죠. 하루는 산책길에 나섰다가 남녀 중학생 여럿이 새벽녘까지 공원에 모여 앉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모습을 봤어요. ‘이 아이들을 어디에 있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몰려왔죠.”

그런 고민 끝에 29년 6개월 동안 출판업에 종사하면서 모아둔 책들과 개인적으로 소장해온 책 등 2만여 권으로 책꽂이를 채우고 2012년 3월 도서관 문을 열었다. 하지만 평일 이용자가 거의 없었다. 도서관을 열겠다고 마음먹은 이유에 천착해 지역에 맞는 도서관 모델을 궁리했다.

‘아이들에게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주자.’

그는 고양시자원봉사센터에 도서관을 수요처로 등록한 후 청소년자원봉사자들과 돌봄이 필요한 지역 아이들을 모집했다.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영어를 가르치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걸 청소년자원봉사자들에게 맡긴 거죠.”

자원봉사자들은 아이들을 가르칠 준비를 하면서 자신의 관심 분야에 더 집중하게 되고 지역 아이들은 안전한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부족한 학업도 보충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란 생각에서였다. 현재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각각 2시간씩 진행되는 학습지도 정규프로그램은 수학 게임, 영어구연동화, 영어야 놀자, 책으로 배우는 과학, 재능자들의 재능 펼치기 등 5개. 주말이면 도서관이 아이들과 청소년들로 북적거린다. 동아리를 꾸려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청소년들과 거리에 널브러진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줍는 환경정리, 마을 담벼락에 벽화 그리기 등도 진행했다. 이곳에서 활동한 올해 청소년자원봉사자는 2000여 명. 반딧불도서관의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지난 10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은도서관협회가 주관한 2016 작은도서관 알찬 프로그램 공모사업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자원봉사활동, 내용 못잖게 과정 중요

자원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한 활동에 대해 그는 “어른들이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날씨가 너무 춥길래 야외 봉사활동 시간의 일부를 도서관 안에서 진행하자고 했어요. 한 학생이 대뜸 ‘관장님만 눈감아주고 1시간 봉사한 것으로 인증해주면 안되냐’는 거예요. 아주 호되게 혼냈죠.”

설령 봉사 시간이 필요해서 참여했더라도 활동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그 다음 활동은 좀 더 충실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활동 내용뿐 아니라 과정도 탄탄하고 꼼꼼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

“봉사활동을 하기에 앞서 일단 휴대전화를 반납하게 해요. 출석체크도 정확하게 하고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지각을 했더라도 다른 봉사자들과 논의해 봉사시간 인증 여부를 결정하죠. 자원봉사자 서약서도 받아요.”

너무 엄격해 자원봉사자들이 오길 꺼리는 건 아니냐는 질문엔 “부천, 김포 등지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온다”며 “재능을 펼치고자 하는 청소년들이 많은 반면 수요처는 적은 편”이라고 아쉬워 했다.

“도서관이라는 이 작은 공간도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에요. 보고 자란 것이 그대로 습관이 되거든요. 자신의 재능을 살려 스스로 활동을 구상해보고 그걸 실행해보면서 자원봉사활동을 제대로 배우는 거죠.”

반딧불도서관은 행신3동 주민자치위원회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내년 초부터 품앗이 집중 공부방을 운영할 계획이다. 주민자치위원과 지역주민들이 저소득층 중학생(1학년)들의 학업과 생활을 챙겨주는 공부방이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멍석을 많이 깔아주고 싶어요. 자원봉사활동이 그중 하나예요. 이곳을 거쳐간 아이들이 앞으로 각자 할 일에 올바른 가치관을 갖길 바라죠.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만 안다면 사회로부터의 소외를 느끼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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