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영상미디어센터, 한 해 결산 작은영화제 개최

올 한 해 본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변변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이들에게 권할 만한 작은 영화제가 열린다. 고양영상미디어센터는 12월 9~10일 양일간 ‘한해 결산 작은영화제’를 어울림누리 어울림영화관에서 개최한다. ‘영화로 소통하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행사에선 올해 개봉해 화제를 모은 한국영화와 일본영화 한 편씩이 상영된다. 작지만 의미 있는 영화를 사랑하는 고양시민들을 위해 고양영상미디어센터가 마련한 소박한 송년 선물이기에 관람료는 무료다.

너도 어른이 되는 게 겁나니?

태풍이 지나가고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주연 : 아베 히로시, 키키 키린, 마키 요코
(117분,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의 한 장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같이 조금은 엉뚱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가족 영화를 선보여 팬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자신만의 장점을 살려 완성한 또 하나의 따뜻한 가족 드라마.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 채 유명 작가를 꿈꾸는 사설탐정 료타가 태풍이 휘몰아치는 밤에 헤어진 가족들과 예기치 못한 하룻밤을 보내며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특히 죽은 아버지에게서 자신으로, 또 자신으로부터 아들에게로 ‘추억’이 이어지는 상황을 통해 관객들의 공감을 자극한다. 감독 자신과 친구들의 개인사에서 길어올린 구체적이면서도 사실적인 기억들이 이야기의 바탕이 돼 감동의 진폭을 더했다고 한다. 지친 삶에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명대사들을 음미하는 재미도 풍성하다.
코믹하면서도 진지한 극중 캐릭터들을 연기한 이들은 일본 영화계가 사랑하는 연기파 배우들이다. 특히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어머니 역을 연기한 키키 키린은 ‘걸어도 걸어도’를 시작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대부분에 출연하며 찰떡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감독은 ‘모든 사람들이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을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추운 날의 따끈한 코코아차 한잔 같은 영화다.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는 건 누구에게나 서툴게 마련. ‘태풍이 지나가면’과 같은 고마운 응원이 있다면 서툰 길 밟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뿐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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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드려요, 화끈하게 또는 깔끔하게

죽여주는 여자
감독 : 이재용
주연 : 윤여정, 전무송, 윤계상
(111분,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한 장면.

60대 중반의 소영은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는 일명 ‘박카스 할머니’다. 그를 둘러싼 이웃들 역시 트랜스젠더, 장애인, 코피노 소년 등 사회로부터 밀려난 소수자들이지만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나름 평화로운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진 송노인으로부터 ‘자신을 죽여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으며 소영은 고민과 연민의 늪에 빠지게 되는데···.   
영화가 응시하는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우울한 현실에 정확히 오버랩된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드는 오늘날 이 땅의 가난한 노인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냉엄한 현실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곧 모두에게 임박한 미래의 과제가 아니냐고 묻고 있는 듯하다. 아울러 사회가 개인의 생존을 책임지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연민을 바탕으로 한 ‘조력 자살’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무거운 질문도 함께 던지고 있다.
노년 매춘, 주변부 삶, 조력 자살 등 일반적인 극영화에서 좀처럼 다루지 않는 어둡고 무거운 소재를 다뤘지만, 영화의 정서가 마냥 우울하고 비장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떳떳하게 각자의 상황을 헤쳐나가는 등장인물들의 씩씩함이 유쾌한 웃음을 던져주기도 한다. 덕분에 소영이 송노인의 부탁에 마음이 기울어지는 과정을 묘사한 장면들도 진정성과 설득력을 얻는다.
영화를 연출한 이재용 감독은 ‘정사’, ‘순애보’, ‘스캔들’과 같은 흥행작을 만든 웰메이드 멜로의 대가였지만, 몇 해 전부터는 ‘여배우들’,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와 같이 재치와 통찰이 가득한 실험성 짙은 작품들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캐스팅 명단에 이름을 올린 윤여정과 전무송, 윤계상은 설명이 필요 없는 최정상급의 연기자들. 지난 가을 개봉한 영화는 국내외의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화제를 모았다.

 

한해 결산 작은영화제

상영일정 : 12월 9일(금) 오후 2시 죽여주는 여자 / 오후 4시 태풍이 지나가고
           12월 10일(토) 오후 2시 태풍이 지나가고 / 오후 4시 죽여주는 여자
장소 : 어울림누리 어울림영화관
주최 : 고양영상미디어센터
관람료 : 무료(선착순 입장)
문의 : 031-960-9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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