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함께 뛰는 고양인> 조규남 고양생명의전화 원장

 

자원상담사로 생명의전화와 인연
상담하면서 인생경험의 폭 넓어져
“상담은 스스로 해결의지 갖게해”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겠습니다.’
한강 다리 몇몇 곳에 자살 예방을 위해 설치된 ‘SOS생명의전화’에 적혀있는 문구다. 모진 마음먹고 올라선 한강 다리에서 이 세상 누군가에게 보내는 마지막 ‘SOS’. 그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깊은 공감과 따뜻한 지지의 말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새 희망과 용기’를 품고 세상 속으로 다시 돌아온다.

전화선 너머로 전해오는 따뜻한 지지
“전화상담이란 게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잖아요. 익명이니까 내 속을 털어놓기에도 부담이 덜하고요. 절박함 속에서 전화를 할 땐 ‘그래도 해결해보겠다’는 의지가 있는 거예요. ‘죽음으로 삶을 끝내’는 대신 ‘다시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아주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이죠.”
생명의전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조규남 고양생명의전화 원장은 “생명의전화 상담소가 고양시에도 있다는 걸 많은 시민들이 모르는 것 같다”며 아쉬워 했다.
생명의전화는 1962년 호주 시드니에서 출발했다. 절망에 빠진 한 청년으로부터 한밤중에 전화를 받은 알렌 워커 목사는, 흔한 전화선 하나가 궁지에 몰린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위기상담을 시작했다. 국내엔 1976년 한국생명의전화연맹이 설립됐고 현재 17개 센터가 운영 중이다. 고양생명의전화가 개통된 건 1996년. 조 원장은 그해 자원봉사상담사로 인연을 맺어 2008년 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센터를 이끌고 있다.
“극동방송에서 신앙상담 프로그램을 3년간 진행했어요. 생방송인데다 목사 신분이어서 상담 내용에 한계를 느끼곤 했죠. 그에 비해 전화상담은 저나 상대방이나 서로 익명이니까 훨씬 자유로워요. 지금도 직접 상담을 하죠.”

상담, 내 인생의 폭 넓혀줘
고양생명의전화의 자원봉사상담사는 50여 명. 대부분 주부다. 자원봉사상담사교육을 매년 3월에 실시하는데, 그때마다 조 원장은 교육생들에게 “상담은 인생의 폭을 넓혀주는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의 실제 경험이기 때문이다.
“목사로서 성경을 삶속에 풀어내는 설교를 하지만 때론 일반적인 삶과 괴리가 있을 수 있어요. 제 경험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다행히 전화상담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공감을 하면서 인간을 이해하는 제 마음의 품을 더 키울 수 있죠.”
전화상담을 위한 전문교육은 받았지만 따로 학위는 없는 ‘짬밥 상담사’라고 자신을 낮춘 그는 “자원봉사상담사 활동이 목회뿐 아니라 내 인생에도 큰 도움이 된다”라고도 말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교육을 받으러 오는 분들도 있어요. 당장 자신의 문제를 풀 수 없다면 타인의 문제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씀드리죠. 자신의 고민에서 한발 떨어져 보면 해결책이 더 잘 보이니까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면 건강
고양생명의전화의 2016년 상담건수는 1170건이다. 그중 가족관계(339건, 20.5%) 상담이 가장 많고, 인간관계(327건, 19.8%) 상담이 그 뒤를 이었다. 최근엔 경제문제로 인한 갈등 상담이 계속 늘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그는 “그래도 문제를 문제로 인식한다면 건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는다’면 잘못된 해답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담은 상담사가 해답을 주는 게 아니예요. 자기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갈 의지를 갖게 하는 거죠. 상담할 때 경청, 공감, 지지의 자세가 필요한 이유예요.”
그는 생명의전화를 병원으로 치자면 ‘동네병원’이라고도 말했다. 대형병원에서 최신 장비나 약물로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 전 환자(상담자)의 상태를 두루 살핀다(그는 이를 전인치유에 비유했다)는 뜻에서다.
“생명의전화는 무료예요.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 더 절박한 사람들이 찾게 되죠.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지는 전화상담이라는 한계가 분명 있겠지만 절박한 사람들에겐 한가닥 생명의 끈이 될 수도 있어요.”
녹록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고양생명의전화가 지금껏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것도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라는 그는 “이런 중요한 일에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내주는 자원봉사상담사들이 보람을 느끼고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여건과 사회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고양생명의전화 상담번호는 1588-919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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