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학교 ‘공감, 우리시대’ 강연 - 김용민 시사평론가

헌정질서 내에서 진행된 혁명
근본적인 체제 변혁의 기회로
“정의롭고 반듯한 나라 만들자”

▲ 지난 17일 덕양구청 소회의실에서 마을학교 ‘공감, 우리시대’의 강사로 나선 김용민 시사평론가는 “촛불혁명은 우리 사회의 체제를 변혁하여 정의롭고 반듯한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역사적 기회다”라고 강조했다.
[고양신문] “탐욕적 자본과 수구기득권 그리고 기회주의가 판치는 전대미문의 세상이다. 악은 자기를 악이라 말하지 않는다. 자본으로, 권력으로 흉한 본질에 분칠한다. 우리는 여기에 속고 있고, 또 속아주고 있다.” - 김용민 저, ‘김어준 평전’, p. 10~11.

2016년 가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지자 연인원 1000만 명의 시민들이 더 이상 속지 않겠다며 촛불을 들고 주말마다 광장으로 나왔다. 덕분에 김용민 PD에게도 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는 것일까. 지난 17일 마을학교 ‘공감, 우리시대’ 정기 강연에 연단에 선 그는 “최근 지상파인 SBS에서 고정 코너를 맡게 됐다”고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촛불혁명, 정부의 역할’을 주제로 펼쳐진 이날 강의 내용을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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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시사평론가로서 한때 새벽 5시 첫 방송을 시작으로 밤늦게까지 10여 개의 방송에 고정으로 출연한 적도 있다. 아침 일찍 나와서 뉴스 브리핑을 하는 사람이 드물던 시대였고, 내가 술을 마시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나는 꼼수다’와 19대 총선 출마 이후 모든 방송에서 하차(당)했다. 5년 만에 최근 SBS에 다시 출연하게 되었는데 최순실 덕분인 듯하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자 한완상 교수가 “우리 시대에 박정희가 다시 살아 돌아오다니··· 내가 잘못 살아온 것 같다”고 한탄하셨는데, 시민들의 촛불혁명과 탄핵 정국을 지켜보면서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민 참여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촉발된 이번 촛불혁명은 보통 일이 아니다. 2012년 미선-효순양 추모 촛불 집회 이후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2008년 광우병 소 수입반대 등의 촛불 집회가 이어져 왔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이어오고 있는 촛불집회는 차원을 달리한다.

우선, 세계사를 통틀어 사상 최대 규모다. 전국적으로 232만 명, 서울에서만 170만 명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낸 일은 동서양 어디에도 없었다. 미국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워싱턴 평화행진 참가자는 20만 명 이었고,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한 후 100만 명이 참가한 집회도 연인원 기준이다. 우리 촛불 집회 참가자는 지난 연말 기준 연인원이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상 최장기로 진행 중인 정권투쟁 운동이면서도 평화적 시위라는 점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지만 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람이 한명도 없다. 촛불 시민들은 법을 지키면서 오히려 더 결연한 투쟁 의지를 보여 주었다. ‘이게 나라냐’라며 우리 아이들에게는 정말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줘야한다는 절실함과 절박함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21세기 아시아의 첫 시민혁명

미국 덴버대 정치학 교수 에리카 체노워스가 “한 국가 전체 인구의 3.5%가 ‘적극적’, ‘지속적’, ‘평화적’ 집회 및 시위를 계속하면 정권이 이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고 한 ‘3.5% 법칙’이 한국에서도 결국 증명 될 것이다.

21세기에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일어난 시민들의 촛불혁명, 이를 받아 안은 국회의 탄핵, 헌법 재판소의 탄핵 심판으로 이어지는 헌정 질서 내에서의 권력 퇴진 운동이라는 것도 그 의미가 여간 크지 않을 수 없다. 

촛불혁명의 성공 조건

이번 촛불혁명이 성공적으로 끝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야할 조건이 있다. 먼저,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반드시 인용되어야 한다. 2004년에 노무현 대통령은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열린우리당을 돕고 싶다’는 말 때문에 선거법 위반으로 탄핵됐지만 이번 경우는 위법의 범위나 정도나 너무 크고 중차대하기 때문이다.

둘째, 탄핵 인용으로 인한 대통령 퇴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체제 변혁도 필요하다. 특검의 이재용 삼성 그룹 부회장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는 영장의 발부나 기각에 상관없이 영장 청구 그 자체가 역사적 사건이다. ‘재벌 총수가 구속되면 기업이 망한다’는 말로는 이제 더 이상 국민들을 속일 수 없다. 촛불혁명으로 촉발됨 민심은 시장이 권력을 장악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합의된 시민정신이다.

향후 대한민국의 과제

촛불혁명 이후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자에 대한 우리의 자세다. 과거처럼 우리를 구원해줄 메시아를 갈망하듯이 지도자를 선택해선 안 된다. 국민행복시대를 외친 박근혜 대통령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동네 떡볶이집 사장님까지 모두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며 당선 되었지만 결국 대기업과 상위 1% 소수를 위한 정책만 펴지 않았나.

선거 때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나 정치인이라고 해서 그들이 결코 우리의 삶을 알아서 바꾸어 주지는 않는다. 정치인이 아니라 ‘나는 내 자신이 대표한다’는 마음을 갖자. 투표를 마치고 돌아간 일상 삶 속에서도 늘 깨어있는 시민 의식으로 정치인을 비판하고 감시해야 한다.

현행 소선거구제의 중·대선거구제로 전환과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거대 정당의 횡포를 줄이고, 녹색당 등의 소수정당이 원내에 진입해서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라는 것도 이번 촛불혁명이 정치권에 내린 명령 중 하나이다.

둘째, 지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세월호 침몰에 대한 실체적 진상을 규명하고 다시는 그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세월호 침몰 당일 ‘대통령의 7시간’의 행적도 중요하지만 실제 구조 현장의 최 일선에 있었던 해경의 시스템이 더 문제가 아니었나.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의 예에서 보듯 국정원 개혁, 천안함 침몰에 대한 진실 규명,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18대 대선 댓글 공작 같은 국가기관의 조직적 선거개입을 근절하고, 최순실 같은 부정축재자에 대한 재산 몰수 등 과거의 잘못된 환부를 도려내어 우리 사회에 정의가 바로 설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그동안 심판 받지 않고 역사와 국민 위에 군림해온 재벌·검찰·언론 권력을 개혁해야 한다. 기소권·수사권 분리 등을 통해 검찰을 개혁하고,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예에서 드러난 것처럼 재벌들의 잘못된 행태에 대한 문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때 출범한 부실 종합편성 채널에 대한 각종 특혜를 없애고, 독자의 외면으로 재벌과 거대 자본의 이익만을 대변하기 쉬운 언론에 대해 시민들이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 김용민 시사평론가

복지국가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

마지막으로 복지국가에 대한 비전을 세워야 한다. 국가와 공공이 우리의 삶을 개선하도록 해야 한다. 보육, 교육 문제를 지금처럼 개인에게만 맡겨둔다면 어느 누가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겠나. 유럽의 스웨덴은 대학 등록금이 무상일 뿐 아니라 용돈까지 지급한다고 한다. 단순한 무상교육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관점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 아닐까. 반면 한국은 국가와 공공의 역할이 전무하다. 우리는 얼마나 더 성장해야 또 언제까지 복지국가의 비전을 계속 미루기만 할 것인가. 지금이 복지국가를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로 여기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비전을 수립할 때이다.

더 이상 불의와 기회주의가 판치는 나라를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고 생각했던 1000만 시민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우리 모두 정의롭고 반듯한 나라를 어떻게 만들지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고 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가면 좋겠다.

김용민 (PD 겸 시사평론가)
2011년 ‘나는 꼼수다’로 한국 팟캐스트계의 태동을 알렸고, 현재 매월 1100만 회가 넘는 청취자의 선택을 받는 ‘김용민 브리핑’을 통해 반드시 알아야 할 뉴스를 전하며 한국 사회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보수를 팝니다’, ‘맨얼굴의 예수’, ‘한국 종교가 창피하다’, ‘조국 현상을 말한다’, ‘김어준 평전’ 등이 있다. 문화학 박사(Ph. D)이며 그 논문을 ‘한국 개신교와 정치’(2016)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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