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소개 『고상만의 수사반장』(삼인 刊)

권력이 짓밟고 사회가 묵인한 인권 유린 사건 조명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고, 힘없는 진실에 손 내밀어
“기억하고 두드리면, 언젠가 정의는 찾아온다”

고상만 인권운동가가 팟캐스트를 통해 소개한 이야기들을 모은 책 '고상만의 수사반장'을 펴냈다.

나이가 지긋한 독자라면 1970년대 TV 드라마의 대명사였던 ‘수사반장’을 기억할 것이다. 타악기로 연주된 인상적인 주제음악도 유명하지만, 역시 수사반장 하면 코트를 입은 최불암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최불암보다 젊고 씩씩한 또 한 명의 수사반장이 있다. 인권운동가 고상만씨다. 그는 2014년부터 『고상만의 수사반장』이라는 팟캐스트를 2년 동안 진행하며 이 땅에서 벌어진 수많은 인권 유린의 현장들을 생생하게 증언해줬다. 덕분에 팟캐스트를 애청했던 시민들로부터 ‘고 반장’ 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팟캐스트 방송에서 소개한 이야기들이 최근 고상만의 수사반장이라는 책으로 묶여 출간됐다.

책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1부 ‘대한민국에서 정의는 가능한가’에서는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실제 주인공인 정원섭 목사의 기막힌 사연을 시작으로 경찰에 의해 의문사를 당하고 시신마저 은폐하려 한 버스기사 문영수 사건, 방위병 시절 포상휴가를 받기 위해 모은 삐라로 인해 간첩 누명을 쓰고 비참한 죽음을 당한 가스배달기사 신호수 사건, 딸을 잔인하게 살해한 직장 상사에게 정당한 죗값을 묻기 위해 싸운 한 어머니의 긴 싸움, 존속살인의 죄명으로 복역 중인 완도 무기수 김신혜 사건 등의 충격적인 실체를 폭로한다.

2부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찾아가야 할 정의’에서는 좀 더 거시적인 시각으로 우리 사회의 통념의 그늘에 가려진 고통의 현장을 찾아내는 이야기들을 모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함께 반드시 기억해야 할 ‘미군 위안부’ 문제, 집단 따돌림에 의한 한 가족의 비극, 국가의 불법 사찰로 인해 소위 ‘프락치’가 조작되는 현실, 이란 여성 사형수를 통해 본 정당방위 논란 등을 다뤘다. 1부가 부당한 권력에 대한 분노를 유발한다면, 2부는 우리 모두의 무심함속에 은폐되고 방치된 인권의 현주소를 직시하는 부끄러움을 끄집어낸다.

3부는 대한민국 군대를 다뤘다. ‘되돌아올 수 없는 우리 군인들의 목소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군대 내에서 벌어진 의문사와 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 땅의 젊은이들의 비명소리가 각각의 꼭지마다 절절하게 넘쳐난다. 읽다 보면 불합리와 억압이 일방통행 되는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의 현실을 용인해 온 것이 결국은 우리 사회 전반의 왜곡된 인권 의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자괴감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저자는 단순히 책에서 다룬 사건의 내용을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사법 체계가 외면한 정의를 되찾기 위해 늘 사건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다시 말해 책을 쓰기 위해 사건을 모은 것이 아니라,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몸으로 부딪히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책으로 엮을 이야기들이 쌓여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일은 무척 생생하고 흥미롭다. 사건의 다양함과 빠른 전개는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과 억울한 절규의 현장들이 저자의 시원시원한 필력 덕분에 생생한 현실성을 입고 눈앞에 실체를 드러낸다.

하지만 생생함과 흥미로움 못지않게 고통스러움도 동반된다. 도대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이토록 허점이 많았단 말인가, 인권이 이렇게 참담히 짓밟힐 수 있단 말인가를 자꾸만 되묻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부를 들여다보는 일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진료를 거부할 순 없는 일. 책이 던져주는 고통은 우리 사회 인권의 썩은 상처를 도려내고 치유의 새살이 돋게 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아닐까. 그 생생함과 고통스러움에 기꺼이 동참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치유의 시간은 조금이나마 단축될 것이라는 점이 고상만 반장이 우리에게 이 책을 던져 준 이유다. 잊지 않는 것, 그리고 끝까지 노력하는 것. 짓밟힌 정의를 되찾으려는 수사반장 고상만의 우직한 원칙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쭉 유효할 듯하다.


--------------------

“3월 22일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만납시다.”

‘더 친절한 북콘서트’ 여는 『고상만의 수사반장』 고상만 작가

책을 쓴 고상만씨는 대학 입학 후 학생운동을 시작한 이래 줄곧 인권운동가의 외길을 걸어왔다. 1992년 강기훈씨의 유서대필 무죄석방을 위한 대책위원회에서 간사로 일한 것을 시작으로 각종 인권위원회와 시민단체에서 인권 전문가이자 실무자로 활동했. 2000년대 들어서는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등에서 조사관으로 일했고, 서울시와 경기도 교육청 시민감사관으로 활약했다.

화정동에 사는 고상만씨는 고양시와의 인연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고양시 인권위원으로 활동하며 시 인권위원회를 형식적 조직이 아닌 실질적인 활동조직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또한 고양신문의 칼럼 필진으로서 인권 운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글들을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인권 에세이 『다시, 사람이다』,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사건을 파헤친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을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그의 이름에 붙는 직함은 그의 다양한 활동을 잘 말해준다. 국회에서 일할 때는 보좌관, 인권단체에서 만난 이들은 간사, 감사관실에서 일하면서는 감사관,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도 해 가자라는 호칭까지 번갈아가며 들었다는 그는 ‘고상만의 수사반장’ 팟캐스트를 진행한 이후 자연스레 붙여진 ‘고 반장’이라는 애칭이 의미도 있고 친근감도 있어 마음에 든단다.  

고상만씨가 이끌어낸 의미 있는 성과들은 한둘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존속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김신혜씨의 재심을 당당히 이끌어낸 일이다.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결정은 김신혜 사건의 경우가 처음이다. 17년 동안의 긴 인연을 이어오며 김신혜씨 사건을 파고든 과정은 고상만씨의 지치지 않는 집념을 잘 보여준다. 그는 인권운동의 최전방에서 영토의 경계를 한 뼘씩 집요하게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대학 시절 학내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선배를 보며 ‘누군가가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세상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는 인권운동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한다. 젊음의 혈기와 정의감에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들어서는 이들은 늘 있지만, 그 길을 오롯이 변치 않고 걷는 이는 드물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현실은 늘 이상과 명분의 발목을 잡아채니까. 하지만 고상만씨는 여전히 그 길을 가고 있다. 오히려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향한 분노는 더 강렬해졌고, 약자를 향해 내미는 손은 더 따뜻해졌다. 

고상만씨는 최근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해 7000여 만원의 후원금을 모금해 군 의문사 피해 유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다룬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무대에 올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군대에서 벌어진 비극과 아들을 잃은 엄마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다. 연극을 만드는 이유는 분명하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정당한 호소조차 못 하는 이들의 사연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려야 겠다는 생각에서다.

고양신문은 한양문고와 함께 고상만 작가의 보다 풍성한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저자를 초청해 북콘서트를 연다. 시간이 아깝잖은 흥미진진한 시간을 보장한다. ‘고 작가’의 글심도 일품이지만 ‘고 반장’의 입심이야말로 명품이니까.

고양신문·한양문고 공동주최
『고상만의 수사반장』  저자 초청
더 친절한 북콘서트

일시 : 3월 22일(수) 저녁 7시 30분
장소 : 한양문고 주엽점 갤러리 한
문의 : 031-963-2900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