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진 이후를 논하다. <고양지역 시민사회 3인 좌담회>


정당법, 선거법 개혁 논의 시급
제도개혁 주체인 국회 지켜봐야
대중 포용하는 시민단체 역량 필요

[고양신문] 헌법재판소의 8대 0이라는 압도적 가결이 주는 메시지는 매우 강렬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광장의 시민들은 또 다른 과제에 봉착해 있다. 박근혜의 퇴진이라는 값진 승리를 얻어냈고 정권교체도 확실시 되지만, 새로운 정권에서 시민들이 요구했던 개혁과제들이 충실히 이행될지는 의문이다.

적폐를 해소하기 위해선 제도개혁이 뒷받침 되어야 하지만, 제도를 바꿔야 할 주체인 국회는 이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적어도 2월에는 광장에서 제기됐던 개혁과제들이 국회에서 하나라도 처리될 것이라고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대선국면으로 접어든 지금, 광장의 목소리들은 대선 회오리 속에 파묻힐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리는 이미 승리한 것인가, 아니면 승리의 과정에 있는 것인가.’ 고양지역에서 박근혜 퇴진운동을 함께 했던 시민단체 3명의 이야기를 통해 정국진단과 지역 시민사회의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고양신문이 마련한 3인 좌담회는 최창의 박근혜퇴진고양운동본부 상임대표, 김대권 아시아의친구들 대표, 이성한 고양민주주의국민행동 운영위원이 참석했으며 지난 16일 한양문고에서 방청객 없이 비공개로 진행됐다.


 

▲ 최창의 박근혜퇴진고양운동본부 상임대표

최창의
=JTBC의 보도 이후 박근혜퇴진고양운동본부 결성은 1주일 채 걸리지 않았다. 초기 7개 시민단체가 함께 모였지만 순식간에 50여 개로 참여단체 수가 나날이 늘어났다. 고양에서는 지방선거 야권단일후보를 위해 고양무지개연대(2010년 창립)가 결성된 이후 다시 시민단체가 힘을 합치는 계기가 됐다.

김대권=박근혜퇴진고양운동본부의 지역 집회뿐 아니라 광화문 집회에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나갔다. 이번 촛불집회는 기존의 집회와 분명 다르게 느껴졌다. 광화문에서 돌아오는 광역버스 안, 피켓을 든 무리들이 집 앞 정류장에서 나와 같이 내리는 순간 기분이 묘했다. 서로 모르는 얼굴들이었지만 이웃들이 나와 함께 했구나라는 생각,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광범위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질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성한=광장에서 ‘이게 나라냐’라는 피켓의 문구가 생각난다. 국민들도 나라 꼴이 이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세월호, 백남기 농민 사망, 국정교과서, 위안부 문제 등 지금까지 쌓였던 불만들이 한꺼번에 표출됐다. 이번 사건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구체제가 탄핵당한 사건이다.

김대권=이번 헌법재판소의 압도적 판결을 이뤄낸 것은 촛불민심의 힘 때문이다. 우리 모두 마음을 졸이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마지막까지 지켜봤다. ‘촛불민심이 약했다면 이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최순실 국정농단 하나만 인정이 됐고, 세월호 참사, 인사권 개입은 파면사유가 아니었다. 겉으론 8대 0의 압도적 결과였지만 힘든 싸움이었다.

탄핵제도도 개혁 대상으로 고려
최창의=탄핵 결정 이후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착잡했다. 박근혜로부터 희생당한 사람들이 과연 회복할 수 있는가란 질문 때문이다. 또한 박근혜가 탄핵됐다고 일반 시민들의 삶이 나아질까라는 의문 때문이다. 해직당한 언론인, 조합에서 쫓겨난 사람들, 블랙리스트로 희생된 예술인, 정경유착으로 인해 피해본 수많은 청년실업자들과 관련종사자들. 이것들이 바로 잡아질 것인가란 의문이 든다.

이성한=과제의 측면이 크기 때문에 기쁨이 반감된다는데 동의한다. 절대 다수의 국민이 탄핵을 찬성했고, 범법행위가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조마조마해야 했다는 것이 아쉽다. 제도개혁을 여러 부문에서 얘기하고 있지만, 헌법재판소를 통한 탄핵도 제도개혁 대상이지 않나 싶다.

최창의=직접민주주의 확대, 즉 국민들이 대통령을 소환하고, 국회의원을 소환하는 그런 제도가 확대돼야 한다. 재판관 9명에게 이 중대한 문제를 맡기는 제도가 과연 올바른 민주주의인가.

▲ 김대권 아시아의친구들 대표

제도개혁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최창의=2월 국회에서 광장민심이 바라는 제도개혁은 하나도 성사되지 않았다. 가만히 기다린다고 국회의원들이 그것을 실현시켜주진 않는다. 시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시민사회 힘으로 이 과제들을 집중화 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성한=우려하면서도 동의한다. 우리지역 시민단체들은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중앙 단체들도 그것을 고민 중이다. 시민세력이 일정한 세를 갖지 못한다면 결국 현실정치인들은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냥 갈 것이다. 시민단체가 원하는 개혁안을 후보들에게 ‘공약해서 공포하라’고 요구하고, ‘임기 안에 선거법 개정 등을 마치겠다’라는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확실한 것은 시민세력이 힘을 잃는 순간 국회는 기득권 수호를 위해 편리한데로 갈 것이란 점이다.

김대권=정치일정과 무관하게 지금 바로 해야 할 일들에는 힘을 모아야 한다. 지금은 사드문제가 큰 이슈다. 이것을 쟁점화 시켜서 한반도 평화문제, 대북관계까지 논의해야 한다. 폭넓게 논의 된다면 다른 문제들과도 연관 되서 개혁과제들이 선명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국회가 개혁에 협력할 것인가
최창의=제도개혁을 위해 시민단체가 움직여야 할 때다. 정권교체 자체가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회가 개혁을 하는데 적극 협력할 것인가’이다. 박근혜 정권에 부역했던 국회의원들이 남아있는 한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시민사회 세력이 강건하고 밀도있게 조직되고, 대중으로부터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시민들의 기대감이 증폭돼 있기 때문에 정권 초기에 매우 큰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다. 당장 중요한 것은 정당법 개혁, 선거법 개혁이다. 18세 선거권, 연동형비례대표제 같은 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다.

이성한=무수한 적폐를 일소에 없애 버릴 순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대선국면에서 적어도 몇 가지 정도는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각 부문별로 한꺼번에 개혁을 요구해 오히려 동력이 떨어질 것이 우려된다. 세부적인 사항들은 중앙의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을 뿐 아직까진 지역에서 논의된 적은 없다. 이제 곧바로 지역에서도 그런 논의들이 구체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까지 내다보면서 지역과제들까지 함께 설정해야할 시기다.

김대권=제도개혁이 중요하긴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그 표현이 상당히 거리감이 있어서 나와 먼 문제로 인식한다. 우리가 원하는 바가 분명하고 그 걸림돌이 제도라고 모두가 인식했을 때, 올바른 제도개혁이 되는 것이다. 제도개혁을 외치기보단 당장의 이슈들인 세월호 진상규명, 사드배치, 언론개혁 등의 개혁이슈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선거법 개혁 등은 그것에 목을 매는 진보정당들이 장기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맞고, 시민단체들은 당장의 과제들을 부각시키는 것이 맞지 않을까.

▲ 이성한 고양민주주의국민행동 운영위원

지역 시민사회 생태계 확장시켜야
최창의=박근혜퇴진고양운동본부는 중앙조직과는 별개로 독립적인 의사결정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중앙조직이 해체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탄핵 이후 조직을 어떻게 변모시킬지 논의 중이다.

이성한=고양시에는 이미 28개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가 조직돼 있다. 기존의 연대회의를 강화하고 퇴진운동을 함께 했던 단체들과는 느슨하게 연대해 나갈 수 있을 듯하다.

최창의=사실 여러 단체가 모여 모두 한목소리를 내긴 힘들다. 사안마다 입장차가 다르기 때문이다. 연대회의나 퇴진운동본부에서 하나의 통일된 안을 끌어내기보단, 느슨한 연대를 통해 일부 단체들끼리 사안별로 연대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김대권=각 시민단체가 힘을 모으기 힘들었던 것은 각자의 입장차와 명분이 다르기 때문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세불리기에 대한 경쟁심 때문도 있다. 이제는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 제한된 시장에서 경쟁하기 보단, 시민사회 생태계를 함께 확대해 나가야 한다. 세력화된 대중 시민단체가 희생하고 주도하면서 생태계 전체를 키우는 고민이 필요하다. 기존 전통적 시민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새로운 시민조직인 세월호추모단체, 또는 청년조직 등을 곁에서 지원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각 단체로 끌어들이려는 노력보단 자생 단체를 살리고 지원해주는 것이 시민사회 생태계를 확대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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