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에 함께 했던 시민들의 목소리
촛불집회 개근한 동녘교회 교우 좌담회


성향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기쁨 발견
특정인이 주도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생명력 분출
과거의 운동 방식 버리고 신세대에 자리 내 줘야


[고양신문]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에 저항하며 4개월간 이어진 광화문 광장의 촛불집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결과를 이끌어내며 1단계 마무리되었다. 촛불집회가 남긴 의의와 과제에 대해 지난주 시민사회와 원로학자의 목소리를 경청한데 이어 이번주엔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일반 시민들의 생동감 있는 소감을 들어봤다. 인터뷰에 응해 준 동녘교회 식구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에 개근했다. 그들에게 촛불광장의 경험은 어떤 기억과 의미를 안겨줬을까. 좌담은 평일 저녁 동녘교회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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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담회 참가자
연제헌 - 직장인. 동녘교회 평화연대부장.
장현일 - 직장인. 동녘교회 생명텃밭부장.
김경환 - 동녘교회 담임목사
최향숙 - 북카페깔깔깔 관장. 동녘교회 여선교회장
김경윤 - 인문학강사. 동녘학당 인솔자.
김지영 - 주부. 자칭 고양시에서 가장 바쁜 아줌마.

사진 왼쪽부터 장현일, 최향숙, 김경윤, 김지영, 김경환, 연제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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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집회에 참여한 소감을 말해달라. 

김경환=동녘교회는 20회에 걸쳐 열린 촛불 집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교우들과 만나는 게 일상이었다. 가장 열기가 뜨거웠을 땐 25명, 적을 땐 5~6명이 동참했다.
김경윤=처음엔 ‘동녘’이라는 깃발을 들고 다녔는데, 사람들이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해 하길래 ‘동녘교회’ 깃발로 바꿨다. 그랬더니 ‘교회’라는 단어가 불필요하게 주목을 받게 되어 다시 ‘동녘’ 깃발로 바꿔들고 다녔다.
장현일=87 시민항쟁때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데모하는 사람들이 다 빨갱인줄 알았더랬다. 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지고 역사적인 현장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아주 뿌듯했다.
김지영=즐겁고 벅찬 마음으로 참여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변수로 혹시라도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김경윤=집회의 기간, 참여한 숫자, 평화롭게 전개된 양식, 세대의 다양성 등 모든 면에서 이번 촛불 광장은 단군 이래 지금까지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사건이 아니었을까.
장현일=처음엔 ‘비폭력’ 원칙이 무척 아쉬웠다(큰 웃음). 나중엔 비폭력이었기 때문에 해낸 거라는 깨달음과 감동이 밀려왔다. 동학혁명에 실패한 조상님들이 촛불시민들을 칭찬할 것 같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연제헌=군산에 사는 분이 인터넷을 검색하다 우연히 동녘교회와 연결이 됐는데,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으로 올라와 함께 집회에 참여하고 많은 이야기도 나눴다. 뜻 깊은 경험이었다.
김경윤=내가 진행하는 인문학 강의를 듣는 수강생 중 평소 촛불집회 따위엔 절대 안 나올 것 같은 성향의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집회 현장 사진과 소감을 꾸준히 페이스북에 올리니까 이 분이 한 번쯤 참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어느날 집회참석 인증샷과 함께 “광화문에 와 보길 정말 잘했다”는 소감을 페이북에 남기더라. 깜짝 놀랐다. 강의 100번 하는 것 보다 낫구나 생각했다(웃음).
최향숙=우리 남편이 좀 보수적인데 웬일인지 촛불집회에 가겠다더라.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잃어버릴까봐 손을 꽉 잡고 다녔다. 박근혜가 우릴 손잡고 데이트 시켜줬다며 웃었다(웃음). 남편은 ‘현장에 와 보니 TV로 보는 거랑 다르네’라는 소감을 남겼다.
김경환=토요일에 교인들과 정기적으로 등산 가는 걸 반납하고 촛불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고, 12월 31일 밤에 모이는 송구영신예배를 교회 설립 후 처음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드리기도 했다.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 청소년들이 많이 참여했다. 어떤 생각이 들었나.

장현일=지방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친구들과 올라와서 길 안내를 해 줬다. 중학생 녀석들이 직접 준비해 온 시국선언문도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자랑스러웠다.
최향숙=아이들이 무대에 올라 발언하는 내용을 들으며 내가 생각하지 못한 엄청난 에너지가 저 아이들에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발언자들 중에 예전에 87년을 겪었던 50대들의 발언이 제일 안 좋더라. 오히려 할머니나 학생들의 발언이 솔직하고 감동이 있었다. 사회 변혁에 대한 요구가 새로운 세대에 의해 새로운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김경윤=고등학교 아이들이 모여 혁명을 하자는 이야기를 하는걸 우연히 들었다. 순간 ‘혁명이 얼마나 무서운 건데, 얘들이 뭘 안다고 저런 소릴 하나?’하는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랐다. 내가 기성세대가 됐구나, 하는 자성이 든 것이다. 내가 상상하는 혁명과 아이들이 생각하는 혁명이 분명 다를 텐데, 내 기준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발언을 재단하려 했다는 걸 반성하게 되더라.
장현일=청소년들에게는 새로운 문화와 경험을 소통하는 즐거운 공간이도 했던 것 같다. 우리 집 애들은 촛불집회에서 다들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맘에 둔 여친한테 고백도 했다더라(웃음과 환호).

김경윤=특정인이나 특정 단체가 기획한 것이 아니라는 점 아닐까. 이건 완전히 새로운 모델이다. 모두가 현장에 있었지만, 누구도 결과물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혁명이었다. 리더 없이 리드된, 자연스러운 저항의 흐름이 불출된 예는 세계 역사에서도 찾기 힘들지 않을까.
김지영=동감한다. 직업적 NGO활동가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집회를 기획하고 만드는 게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촛불광장은 달랐다. 자발적인 인원이 모인 것이다. 덕분에 사회를 바라보던 피상적인 생각들이 무너지는 계기도 됐다. 이상적인 대안운동들이 구호만으로 쉽게 되는 게 아니란 생각을 했다.
최향숙=87년 시민광장 세대인 나 역시 이슈가 있을 때마다 광장으로 나가긴 했지만, 맘 속 깊은 곳의 회의감은 지울 수 없었다. 이런들 뭐가 달라질까 하는. 하지만 이번엔 양상이 달랐다. 시간이 갈수록 뭐가 꼭 이뤄지지 않아도 이 자체로 참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움을 만드는 광장이라면 그 자체로 이미 이긴 거라는 뿌듯함이랄까.

▲ 시민운동의 방식과 주체가 변화되고 있다는 말인가.

김경윤=당연하다. 과거의 낡은 방식이 유통기한이 끝났다고 본다. 새로운 세대의 감각이 반영되지 않는 운동은 자연스레 소멸되는 게 당연하다. 젊은이들이 시민운동의 판을 새로운 감성으로 세팅하도록 자리 비켜줘야 한다.
김경환=과거의 방식은 회원을 늘리고 인원을 동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사불란하게 중앙으로 모이는 게 먹히지 않는다. 각자의 현장에서 하고 있는 여러 가지 활동들이 느슨한 형태로 네트워크 되는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서로 소통하며 도울 수 있는 부분을 돕는 방식으로.
김경윤=지금은 중심 네트워크가 특정 장소가 아니라 거리다. 장소 운동이 아니라 흐름 운동이다.
최향숙=예전 운동가들은 누군가를 모임이 추구하는 가치를 내세워 물들이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색깔을 유지한 채 모임의 다양한 가능성을 늘려가는 방식이어야 한다.
김경윤=물들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경계가 스며드는 것.
김경환=진보든 보수든 소수의 사람들이 말을 독점하면 안된다. 특정 단체의 목적에 길들여진 이들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마이크를 잡았을 때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언어들이 쏟아지더라.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광화문이나 시청 앞에서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민주시민광장이 상시로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말하고 말하고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공간 말이다. 그러다보면 생산적인 담론들이 우리 안에서 다양하게 소통되지 않을까.

▲ 태극기집회에 대한 생각은.

장현일=그분들을 진짜 보수라 부르긴 어렵다. 이번엔 진보와 보수의 구분 없이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촛불 광장에 함께 했다.
최향숙=태극기 지지자들이 박근혜를 불쌍히 여기는 것 안에는 자신의 불쌍한 처지와 동일시하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 같다. 사회에서 소외된 외로움과 분노를 박근혜에게 투영하고 있다고나 할까. 
김경윤=해외 언론사 중 한 곳에서 'Park Out'이라는 기사 제목 다음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부제를 달았다. 영화를 인용한 센스 있는 제목이긴 하지만, 많이 놀랐다. 태극기는 노인이 나가는 거고, 노인들은 무지하고 생각이 없고... 이런 식의 세대 갈등을 유발하는 논리는 정말 위험하다. 내가 곧 노인이고 누구나 곧 노인이 되지 않는가. 진보는 따뜻한 마음으로 노인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정책과 삶의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최향숙=우리나라의 정책은 유독 세대를 구분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도서관만 해도 노인들은 어린이실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반대로 간행물실에는 또 노인들만 앉아 있고. 서로 접촉을 못 하니까 유연한 사고가 안 나온다.
김경환=우리 부모님도 'TV 조선'만 보는 보수적인 분들이다. 그렇지만 오래간만에 기회를 얻어 부모님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고 나니 상식의 문제에서 소통하게 되더라. 세월호의 아픔 같은 경우 말이다. 결국 세대간 충분한 대화의 자리가 부족한 것이 문제다.

▲ 탄핵 이후의 고민을 생각해보자.

김경윤=탄핵이 됐다는 소식 듣고 환호성과 함께 한편으론 맘이 무거워지더라. 쓰레기를 치우고 난 허허벌판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랄까. 지금 누가 대통령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특정한 인물에게 미래를 맡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를 정책으로 모아내고, 그 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정당과 정치인을 선택하는 정치문화가 돼야 하지 않을까. 선거 후에 이어질 개헌 논의도 국민 권력, 시민 권력을 강화하는 것에 개헌의 핵심이 맞춰져야 한다.
김경환=얼마 전 대만에서 시민들의 문화 의식운동으로 원전을 멈추게 하고 탈핵까지 이끌어냈다. 우리 역시 촛불 광장의 감동을 동력 삼아 특정 사안에 대해 합의된 요구안을 만들고 그것이 정책 결정에 반영되도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인에 의해 배출되고 마는 공약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찾아내고 요구하고 관철시키는 약속 말이다.

▲ 남기고 싶은 말들이 있다면.

최향숙=우리가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줬다는 사실을 이번에 제대로 알게 해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최악의 조건을 가장 좋은 경험으로 바꾸었다. 이게 우리의 힘이 아닌가.
김경환=역사적으론 탄핵이 결정된 3월 10일이 인내천 사상을 주장하며 동학을 창시했던 수운 최재우가 참수된 날이다. 그 날 시민의 힘으로 권력을 끌어낸 것이다. 역사의 기운과 하늘의 힘이 돕는다는 생각을 했다. 동학혁명, 3.1운동 4.19와 5.18 등 아픈 역사들이 결코 헛된 것들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은 억울하게 죽은 듯 보이지만 그들의 희생이 모이고 모여서 우리를 교육하고 살렸구나 싶다.

▲ 목사님의 은혜로운 말씀으로 마무리하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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