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소개> '세상을 품은 작은 교회' (문영미/ 삼인)

<세상을 품은 작은 교회> (문영미 지음 / 삼인)

북간도 출신 진보적 기독교 뿌리
독재와 맞서고 통일운동 물꼬 터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적 지형에서 기독교의 포지션은 뭘까.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들이 많을 듯. 전반적으로 보수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기도 하고, 일부 대형교회 지도자들은 극단적인 친미성향과 반공주의가 혼합된 프레임을 종교의 이름으로 생산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교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는 ‘양심적 소수’의 흐름은 면면히 이어지는 법. 돌아보면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박정희 독재에 항거하고 신군부의 만행에 맞섰으며, 통일운동의 물꼬를 튼 ‘민주화 운동’의 큰 흐름 속에는 진보적 기독교 그룹의 선구자적 사회 참여가 있었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치열했던 ‘진보적 사회운동’의 역사를 한 작은 교회의 이야기를 통해 되짚어보는 책이 출간됐다. 『세상을 품은 작은 교회』(삼인 刊)는 기독교장로회 한빛교회의 60년사를 정리한 책이다. 한빛교회는 비록 교인수 100명에 불과한 서울 변두리의 작은 교회지만, 문익환, 이해동, 이우정, 박용길 등 민주화운동의 선 굵은 거물들을 배출했다. 책 속에 담긴 내용도 진보적 신학논쟁, 반독재투쟁, 여권신장, 민주화운동, 선구적 통일운동 등 한 시대의 주요한 장면들을 일별하는 역동적이고 풍성한 비망록에 가름한다.

책의 앞부분에선 보수적 풍토의 한국 개신교계에서 열린 신학의 기풍을 견지했던 한국기독교장로회(한빛교회가 속한 교단)의 뿌리가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과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북간도로 건너갔다가 해방 후 공산주의 정권의 압박을 피해 남한으로 내려 온 용정 출신 소수파들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들은 종교적 보수주의와 이데올로기적 반공주의, 그리고 정치적 우편향을 강화했던 주류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민족주의적이면서도 진보적인 소수파 기독교의 길을 개척해간다. 그러한 기풍은 유신과 신군부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정권의 서슬 퍼런 폭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3·1민주구국선언문사건, 양성우 시인 필화사건 등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 한빛교회의 자리를 우뚝 세운다. 결국에는 1991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 사건이 터지면서, 교회는 평화적 통일운동의 그루터기라는 추앙과 빨갱이 소굴이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게 된다. 책은 이 모든 과정을 하나의 작은 교회 공동체가 온 몸으로 겪어낸 과정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묵직한 역사의 무게를 담고 있지만, 책의 형식과 문체는 무척 따뜻하고 섬세하다. 사건이나 인물 위주의 건조한 연대기를 탈피해 가능한 많은 교인들의 생생한 목소리 하나하나를 귀 기울여 듣고 따뜻한 문장으로 옮긴 덕분이다. 내용의 충실함과 형식의 신선함 둘 다를 놓치지 않은 글쓴이의 수고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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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시간 함께한 이들이 역사의 주인공”

인터뷰 - <세상을 품은 작은 교회> 문영미 작가

<세상을 품은 작은 교회> 를 쓴 문영미씨는 70여 명의 인물들을 인터뷰 해 책 속에 생생한 '사람'목소리를 담아냈다.

평신도·여성 목소리 충실하게 담아
“고향처럼 편안했던 일산 그리워”

『세상을 품은 작은 교회』를 쓴 문영미씨는 진보적 통일운동가인 문익환 목사의 동생 문동환 목사의 딸이다. 그 자신이 한빛교회 교인으로 오랜 세월 평신도와 목회자들과 함께 지내온 그는 객관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시선으로 한빛교회의 역사와 인물들을 책 속에 담아냈다. 문영미씨는 수년간 일산에서 살았던 만큼 고양과의 인연도 깊다. 그가 학예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신촌 ‘이한열기념관’에서 저자 문영미씨를 만나봤다.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사실 이런 성격의 책을 언젠가는 내가 쓰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을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다. 그러다가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교회사를 써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집필을 했다. 어릴 적부터 지켜 본 70년대 이후의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세심하게 기록되지 못하고 소실되고, 교회 어르신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는 것이 안타까워 가능한 한 충실한 사료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외형적으론 특정 교회의 역사인데.
교회나 기독교 울타리 안에서만 읽히는 책이 아니기를 바랐다. 바깥에 있는 분들이 읽더라도 충분히 흥미롭고,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특히 젊은 청년들이 많이 읽어주면 좋겠다.

 평신도들의 목소리도 생생하다.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을 감당할 때마다 사실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이 컸다. 그 신산했던 시절을 함께 버텨 준 모든 분들이 역사적 시간의 주인공들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에 대한 서술이 인상적이다. 
대개 역사는 남자들의 이름만 기억한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지켜 본 한빛교회의 역사에서 여성 평신도들과 지도자들의 역할은 남자들에 비해 왜소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하고 감동적이었다. 내 책을 통해서나마 여성의 지도력이나 역할을 좀 더 분명하게 강조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사회와 기독교라는 가부장적 울타리 안에 자리하면서도 한빛교회에서 면면히 내려오는 여성 지도력의 전통은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고 특별하다. 그 궁금증을 책을 쓰는 과정을 통해 풀어보려 했다.

진보적 기독교의 뿌리를 더듬는 재미도 있었다.
한빛교회를 세운 선조들은 일제와 공산주의 치하에서 많은 핍박을 받은 이들이다. 문익환 목사님만 해도 공산주의 치하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셨는데, 여타의 월남 기독교인들과 달리 극단적 반공 이데올로기로 기울어지지 않고 민주주의의 가치와 통일의 열망을 불태우셨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이었을까를 책을 쓰면서 여러 번 물었다.

고양과의 인연을 소개해 달라.
2004년부터 5년 정도 강선마을 5단지에서 살았다. 처음 아파트 생활을 해 본 곳인데, 고향처럼 참 편하고 좋은 시절을 보냈다. 아이를 키우며 책도 쓰곤 했는데, 공원길이 많아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기가 참 좋았다. 아이가 어릴 때여서 지역에서 많은 활동은 못 했지만 ‘아시아의 친구들’이라는 모임에서 이주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잠깐 했다. 그 때 만난 몇몇 분들과는 지금도 가끔 연락하고 지낸다. 지금도 사촌오빠(연기자 문성근씨)와 고모님 부부(박영신 명예교수와 문은희 소장)가 일산에 거주한다. 기회가 되면 다시 돌아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이 남아있는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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