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복선화 공사로 원래 좌우로 연결돼 있던 농로가 끊어지고 막다른 길로 변혔다. 농민들은 바로 옆 농지로 가기 위해 차량을 후진해 수백 미터를 빠져나와야 하는 등의 불편을 10년 넘게 겪어왔다고 주장했다.

600m 농로 복구 요청했지만 무시
5분이면 갔는데, 1시간 돌아가야
“개발독재시대 탁상행정 보는 듯”

 

[고양신문] “철도 건설한다고 잘 쓰고 있던 농로를 없애버리면 농사를 어떻게 짓습니까. 농기구가 아예 못 들어가면서 맹지가 된 논도 있어요. 예전엔 5분이면 갈 거리를 이앙기 타고 한 시간은 돌아가야 합니다. 이런 게 국가폭력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경기도 고양시 능곡역(경의선) 뒤쪽, 수만 평의 농지가 펼쳐진 이곳에서 농사짓는 농민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경의선 복선화로 농로를 수용당한 주민들이 농로개설을 요청하고 나섰지만 한국철도시설공단(이하 철도공단)이 농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농민들은 수십 년간 사용해온 600m 농로가 철도공사로 없어지면서 큰 불편을 겪어왔다며, ‘대곡-소사선’ 공사가 시작되는 이번 기회에 10년 넘게 불편을 겪었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5년 즈음 시작된 능곡역 인근 ‘경의선 복선화’ 공사로, 경의선을 따라 나있던 농로가 철도부지로 편입돼 농로가 없어졌다. 경의선 복선화 공사 직후 ‘대곡-소사선’에 대한 토지측량이 잇따랐고, 농로가 없어져 불편을 겪었던 농민들은 “대곡-소사선 공사가 곧 시작되면 그때 가서 농로를 만들어달라고 하자”라며 불편을 감수해왔다.

이렇게 참아온 세월이 10년이 넘었다. 드디어 작년 중순에야 대곡-소사선이 착공에 들어가자 ‘이번에는 농로를 개설할 수 있겠구나’라며 기대에 부푼 농민들은 철도공단에 “경의선 복선화 사업 때(2005년) 농로를 훼손하고 복구해 주지 않아 엄청난 불편을 겪어왔으니 이번에 공사를 하면서 원래 있던 농로를 복구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철도공단은 불가하단 입장이다.
 
철도공단은 “과거 농로는 지적도에 표시돼있지 않아 정식 농로라 할 수 없고, 이번 대곡-소사선은 민자사업이라 공단 마음대로 이 문제를 판단할 수 없으며, 철도공사가 농로를 복구해 준 선례가 없다”며 불가하다는 입장을 냈다.

이에 농민들은 “우리가 없던 농로를 만들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원래 사용하던 길을 복구해 달라는 것인데 왜 그게 안되냐?”며 반박하고 있다.

농민들은 “지적도에 표시돼 있지 않아도 이미 현황도로처럼 농민들이 쓰는 길이었다”며 “15년 전 항공사진에도 이렇게 길이 선명하게 나있다”며 항공사진을 보여줬다. 또한 선례가 없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농민들은 “인근 제2자유로 고양시 구간만 해도 자유로와 평행하게 나 있는 길들이 지금 잘 닦여 있는데, 이것들은 자유로 공사를 하면서 오히려 깔끔하게 복구·개선된 길들”이라며 “왜 철도공단만 주변 길에 대한 복구가 안 된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농민이 철길 아래 옛 농로가 있었던 자리를 가리키고 있다.

대곡-소사선이 경의선과 달리 민자사업이라 기업들과 논의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이번 사업의 공동 시행자에 철도공단이 들어가 있으며, 용지를 매수하는 업무는 철도공단 관할이라 농로개설에 책임 있는 기관임이 확실하다. 그런데 마치 이번 공사엔 책임이 전혀 없는 것처럼 답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지난 3월 국민권익위원회에 농로개설에 대한 민원을 접수했고, 이달 7일에는 현장 합동조사도 마쳤다. 아직까지 국민권익위원회는 답변을 내지 않고 있다. 농민들은 앞으로 감사원에도 민원을 접수할 예정이고,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끝으로 농민들은 “도심인근 절대농지로 묶인 이곳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농로를 복구해 달라는 게 무리한 요구인가?”라고 되물으며 “정부가 그린벨트 침해는 심하게 단속하면서, 국가사업 시행 중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행위는 지금도 너무 쉽게 이뤄지고 있는 점은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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