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와 프로 경계 허문 ‘예그리나’ 동인

 

삶 속에서 찾아낸 감성의 결들을 수채화 속에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는 '예그리나' 동인들. (사진 왼쪽부터) 박정원, 오윤진, 정현숙, 윤경미 회원.

 

[고양신문] 예술 창작의 기쁨은 ‘전문 예술가’들만이 누릴 수 있는 영역일까? 이달 27일부터 아람누리 갤러리누리 제1전시관에서 전시를 여는 수채화 동인 ‘예그리나’의 멤버 4인방은 뜨거운 열정과 꾸준한 노력으로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를 허문 주인공들이다.

‘사사로운 어느 날’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예그리나 동인들이 각자의 테마를 가지고 창작한 수채화 작품 50여 점이 관람객을 만난다.

멤버 중 미술을 전공한 이는 한 명도 없다. 대개 10여 년 전 호기심과 창작 욕구를 채우기 위해 문화교실 등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각자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그려오다가 서로의 비슷한 성향을 알아보고는 3년 전부터 ‘예그리나’라는 이름의 동인 그룹을 만들었다.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창작 활동에 활력이 생겼다. 자극과 격려를 주고 받기도 하고, 함께 여행을 하며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한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여는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각자의 장점과 노
력이 멋진 조화를 만들어냈다.

예그리나가 선택한 장르는 수채화다. 장르는 동일하지만 각자가 구현해내는 작품의 주제와 기법은 개성이 뚜렷하다. 화정동의 작업실을 찾아가 전시를 앞둔 작품들을 미리 구경하며 유쾌한 대화를 나눴다.

‘무념(無念)의 꿈’ -  윤경미

윤경미 작가의 작품 속엔 온통 꽃밭이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날의 꽃이 아니라, 겨울을 앞두고 사위어가는 늦가을의 꽃들이다. 그러나 눈앞에 다가온 소멸을 기다리는 꽃이라고 해서 아름다움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들녘을 물들이는 석양빛과 어우러진 꽃무리들은 ‘사라짐’을 자연스러운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존재의 넉넉한 성숙미를 담고 있다.
“누구나 일상속에서 각자만의 ‘아름다운 순간’을 만날 텐데, 그것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나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이라는 창구를 갖게 됐다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윤경미 작  '근심 없는…'

 


‘파도’ -  오윤진

화폭 가득 거대한 파도가 일렁인다. 오윤진 작가는 보길도를 여행하며 만난 바다의 아름다움, 몽돌 해안을 간질거리는 파도 소리에 매료됐다. 그래서일까. 천안 만일사 들녘을 가득 메운 구절초 꽃밭에서도 바람에 물결치는 ‘꽃 파도’의 이미지를 발견해냈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바다와 꽃밭을 쓰다듬으며 ‘찰나에 부서지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학생 시절 꿈꾸던 그림의 꿈을 좀 늦은 나이에 다시 되찾게 돼 기뻐요. 제 그림의 첫 번째 팬은 어린 손주예요. 할머니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오윤진 작  '파도'

 


‘흐트러지다’ -  정현숙

사물들이 품고 있는 경계의 영역은 늘 선명한 걸까? 정현숙 작가는 기억과 감성 속에서 각각의 존재들이 가진 경계가 뒤섞이고 흐트러지는 순간들에 주목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흐트러짐은 질서의 무너짐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의 재배열을 위한 긍정의 과정이다. 일상의 눈으로는 미처 보지 못하고 잊혀지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수채화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번짐의 기법으로 표현해 낸 작가의 시선과 솜씨가 참신하다.
“수채화는 작가 자신도 자신의 그림을 다시 복제하지 못하는 장르예요. 의도하지 않은 우연성의 매력을 아름답게 살려보고 싶었어요.”

정현숙 작  '흐트러지다'


‘소풍’ - 박정원

박정원 작가의 작품 속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풀섶에 놓인 자전거, 테라스의 불빛, 덩그러니 놓인 의자는 조금 전까지 화면 속에 있었던 누군가의 ‘흔적’을 증언한다. 소아암병동에서 일했던 시절의 경험이나 먼저 세상과 이별한 지인들에 대한 기억은 작가에게 ‘이별’에 대한 특별한 감성을 선물했다. 그의 그림은 과거를 살았던 이들과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 사이에 오고 가는 밝고 아름다운 인사다. 
“이 세상을 살다 먼저 떠나간 이들의 삶이 결코 고통스런 시간들이 아니었기를, 유한하지만 행복했던 ‘소풍’이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박정원 작  '4월의 한 풍경'

  
예그리나 수채화전
‘사사로운 어느 날’

전시기간 : 4월 27(목) ~ 30일(일)
전시장소 : 아람누리 갤러리누리 제1전시관
문의 : 010-513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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