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부엌』 류지현 작가, 교하도서관에서 강연

[고양신문] 우리는 보통 장을 봐오면 어떤 종류의 음식이든 냉장고에 집어넣는다. 냉장고가 음식물을 안전하게 보관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그것들이 냉장고 안에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결국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상해서 버리기 일쑤다. 또다시 새로 산 음식물들을 냉장고에 채워 넣는다. 냉장고는 마치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망각해 버리고마는 ‘검정색 상자’와 같다.

세계 최초로 가정용 냉장고가 등장한 것은 언제일까? 바로 1911년이다. 그 후 냉장고는 100여 년 동안 늘 사람들과 함께했다. 그렇다면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현재 우리의 부엌은 사람의 부엌일까, 냉장고의 부엌일까?

이러한 질문에서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아서’ 3년 동안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닌 이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활동 중인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류지현씨다. 그녀가 16일 오전 파주의 교하도서관(관장 전현정)에서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2009년 그녀는 ‘어떻게 하면 냉장고를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Save food from the fridge(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해 내자)'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사라져 가는 음식 저장 지식에 디자인을 입혀 ‘지식의 선반(knowledge shelves)'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식재료들을 무조건 냉장고에 넣는 대신 각각의 특성을 파악해서 보관할 수 있도록 선반을 제작한 것이다. 이것은 세계 여러 매체와 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어 올 4월에 출간된 『사람의 부엌』을 통해 그 프로젝트에 담으려 했던 음식에 대한 자신의 체험과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남미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의 전통적인 음식보관법을 들려준다.

전 세계적으로 버려지는 쓰레기 중 30% 정도가 음식물 쓰레기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만 해도 엄청난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까? 그녀에 따르면 적절한 보관법을 이용하는 것도 그 방법들 중 하나다. 예를 들어, 가지나 토마토, 바나나, 감자 등은 낮은 온도에서 보관하면 안 된다. 토마토의 경우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당도가 떨어지고, 가지는 영하 7도 이하로 내려가면 안 된다. 가지의 원산지가 덥고 습한 인도인 것을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소시지나 치즈, 채소 등은 여러 나라에서 많이 사용하는 전통적인 건조 방식이 유용하다. 에틸렌 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사과는 실온에서 감자와 함께 보관하면 감자에 싹이 트는 것도 예방할 수 있다. 파, 우엉, 배추 같은 뿌리나 잎 채소는 보관용기 바닥에 물을 넣어 세워서 보관하면 오래 간다. 고춧가루나 소금을 보관하는 작은 양념통의 경우, 위쪽 작은 공간에 쌀을 두면 쌀이 실리카겔처럼 수분을 흡수하는 기능이 있어 눅눅하지 않게 보관할 수 있다.

냉장고가 우리의 생활에 편리함을 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전혀 쓰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좀 더 지혜롭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냉장고나 김치 냉장고의 규모를 줄이는 등 소비 패턴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희망과 가능성을 봤다는 그녀. 자연과 주변 환경을 잘 관찰해 그것들을 음식보관에 이용한 사람들의 지혜가 사라지기 전에 이어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냉장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살고 있는 지금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해 주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한편 교하 도서관은 5월 30일(화) 오후 7시30분부터 『손의 모험』의 저자 박지은의 강연도 준비하고 있다. 이날 저자는 '소비시대에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공유하는 삶의 태도'에 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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