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고양 경제를 살려내는 지역기업 탐방(89) ㈜석봉토스트

국내외 최초 토스트 프랜차이즈 사례, 현재 200여점 성업
가맹비·기술이전 비용 없어 소자본 창업주 선호도 높아

[고양신문] '불행도 비켜가는 토스트맨', '희망을 굽는 토스트맨'. 김석봉 대표<사진 아래>를 칭하는 말이다. 1997년 서울 무교동에서 노점 토스트 장사로 사업을 시작한 김 대표가 소자본 자영업자들에게 희망을 주며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시작한 것은 노점을 시작한 지 7년 후, 국내는 물론 세계 최초 토스트 프랜차이즈가 시작되면서다. 2006년 김 대표는 로드비지니스를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화한 ‘석봉토스트’로 법인을 전환했다.

이후 김 대표는 '노점상 1억 연봉 신화'의 주인공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기가 김 대표에게는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2002년 위암 선고를 받고 위의 75%를 제거한 상태였다. 항암치료를 병행하다보니 체중은 12kg이상 빠졌고 체력은 바닥 상태였다. 토스트를 굽다가 기절하기도 했다. 김 대표의 삶에서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삶의 가장 어두운 시절마저 희망의 빛으로 바꾸었다. 그 힘은 김 대표 내면에서 싹 틔운 긍정의 마인드였다.
당시 김 대표는 ‘석봉아, 넌 할 수 있어’, ‘넌 꼭 해내고 말거야’ 를 속삭이며 자기 최면을 걸었다. 네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의 책임감에 힘겨웠다. 복받치는 설움에 소리 죽여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내면의 외침은 김 대표를 치유했고 3년 뒤에는 건강을 되찾았다. 입가에 미소도 흘러 넘쳤다. 이런 경험을 기록으로 정리한 김 대표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도 출간했다. 『석봉 토스트 연봉 1억 신화』다. 이후 김 대표는 삼성 등 대기업과 지자체, 공공기관 및 단체로부터 초청 강연이 이어졌고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분을 쪼개어 활동하는 생활이지만 불만은 없다.
지금도 매일 아침 자신에게 마법의 주문인 ‘3뻐’를 외친다. ‘기뻐’,‘바뻐’,‘예뻐’다. 오늘도 건강하게 살아있어서 ‘기뻐’, 일터가 있고 열심히 일할 수 있어서 ‘바뻐’, 세상에 유일한 석봉아 넌 ‘예뻐’라는 의미다. 이 안에는 끝없는 감사와 기쁨이 내재되어 있다.

-노점토스트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전라북도 정읍 내장산 자락의 본가는 가난했다. 8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나에게 당시 중고등학교, 대학교 공부는 너무 먼 이야기였다. 14살에 서울로 올라와서 과일행상, 길거리 아이스크림 장사, 공장 소년 노동자, 용접공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유치원 교사였던 아내를 만나면서 못했던 학업을 시작했다. 결혼 조건이 공부였다. 87년부터 검정고시로 중·고등 과정을 마치고 대학공부까지 끝내는 동안 아내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놀이방에서 일하며 가계를 책임졌다. 학업을 끝내자 아내는 나에게 200만원을 주면서 일을 그만두었다. 이를 자본으로 시작한 일이 노점토스트 사업이었다.

- 1분마다 팔리는 석봉토스트가 무교동의 명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사업 초기 가장 힘들었던 것은 40대 초에 노점상을 하는 젊은 남자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이었다. 하지만 난 생각을 바꾸었다. 매출을 증가시키고자 처음 노점상을 시작했던 응암역에서 시청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익은 10배정도 성장했다 하지만 당시 단속 등의 이유로 원래 자리에서 밀려나 무교동으로 가게 됐다.
직장인들이 많은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 나는 명찰을 달고 유니폼을 착용했다. 외국 관광객을 겨냥해 메뉴판을 영어·중국어·일어 등 4개 국어로 만들었다. 그리고 고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당시 아침과 점심 식사로 생소한 토스트를 친근하게 만들 방법에 대한 의견을 모니터링 했다.
소화가 잘 안되고 다이어트에 방해가 된다는 의견이 많아 천연소스를 개발했고 계란과 햄 이외에 칼로리가 낮은 야채를 재료로 맞춤형 토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매일매일 골라먹는 무교동 대표 간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트랜스지방이 많은 마가린 대신 고급 카놀라유를 사용하고 달걀도 비싼 영양란으로 바꾸고 조미료와 설탕은 넣지 않았다.
맛과 건강까지 고려한 토스트는 고정 단골들까지 만들어 냈다. 하루 평균 30~50명의 고객은 300명까지 늘었다. 하루 5시간의 당시 판매시간을 분으로 환산하면 300분, 하루 300여 명의 손님이 왔으니 1분마다 토스트를 판매했다고 볼 수 있다. 줄서서 먹는 토스트였다. 일본 여행가이드북엔 ‘무교동 명물’로까지 등재돼 있을 정도였다.

- ‘인생을 바꾼 작은 습관’이라는 주제의 특강으로 유명하다.
암 투병을 이겨낸 후 사업은 성공을 넘어 안정화 됐다. 그러면서 과거 내 자신과 비슷한 상황의 또 다른 청소년 석봉과 중년 가장 석봉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 관리의 지혜와 꿈을 이루는 과정에 대해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내 자신이다’라고 깨달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또한 역경 속에서 만들어냈던 긍정적 마인드의 기적을 전하고 싶었다. 지금은 강연 초대 의뢰가 많아 분 단위로 쪼개며 일하고 있지만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 일정, 다이어리 등 시간 관리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석봉토스트가 성공하기까지의 원동력을 시간관리와 꿈으로 꼽는다. 나의 삶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종이에 세세한 일정과 사소한 꿈을 적어나가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시간·분 단위로 일정 정리를 하자 삶은 시간·분 단위로 계획됐다. 작게는 어떤 물건이 갖고 싶은지, 크게는 세계 평화를 바라는 꿈까지 적었다. 꿈도 국가에 대한 꿈, 사회에 대한 꿈, 가정에 대한 꿈, 나에 대한 꿈으로 정리하고, 그 꿈들을 계획적으로 구체적으로 적자 놀랍게도 꿈은 눈앞에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현재도 여전히 꿈을 적는데 석봉토스트의 해외 진출이다. 햄버거와 피자가 주도하는 해외 스낵시장에 건강한 맛의 한류 토스트를 꿈꾼다. 이와 더불어 좌절과 실의에 빠진 청소년들에게는 ‘자신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이며,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인식을 가질 때 삶이 변화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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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봉토스트
<특징>

국내 최초 가맹비와 기술이전비, 교육비 없는 토스트 프랜차이즈

<위치 및 문의>
위치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하늘마을로 156번지 C동 301호(중산동, 대방트리플라온비즈니스타워)
홈페이지 www.sukbong.com
문의 031-973-1240 / 02-832-1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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