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독자들과 만나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열린 정호승 시인 강연 후 사인회 모습.

[고양신문] “육체를 지탱하기 위해 우리는 음식물을 섭취한다. 그렇다면 영혼을 위해서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많은 것이 있지만 영혼의 양식 중 하나가 시다. 시는 영혼의 밥이다.”

열두번째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창비, 2017)로 4년만에 독자들과 만난 정호승 시인이 강연회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지난 19일 저녁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진행된 강연회에는 많은 독자들이 자리를 꽉 채웠다.

먼저 시인은 이번 시집의 제목부터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시집 제목은 시집 성격을 결정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집 제목을 지을 때 ‘우리는 희망을 간절히 소망하고 만들어가면서 살아가야하는데, 희망을 거절하다니...’라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어떡하나 다소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독자들이 시는 역설과 반어로 말한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고민을 덜었다”고 전했다. 더불어 굳이 그런 제목을 정한 이유는 “이제까지 우리는 희망 없는 희망에만 매달려 온 것 같고, 단지 희망만 있는 희망에 매달려 살아온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라는 시집 제목에 대해 설명 중인 정호승 시인과 강연을 듣고 있는 독자들.


이어 시인은 “희망은 절망에 뿌리를 내려 성장하는 특징이 있다”며 “희망을 위해서 절망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시집 제목과 표제 시를 통해 시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절망을 없애고 희망만을 말하기보다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는 뜻으로 “희망과 절망의 가치를 제대로 생각해 보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시인에 따르면 희망이라는 나무의 뿌리는 희망이 아니라 결국 절망이다. 즉 절망은 희망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연 중인 정호승 시인


시인은 자신의 시 몇 편을 낭독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 (...) /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 정호승, ‘바닥에 대하여’ 중 

앞의 시 ‘바닥에 대하여’에서 ‘바닥’은 인생의 바닥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바닥에 굴러 떨어지는 경험이 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말이다. 인생의 바닥에 떨어졌을 때 사람들은 그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어 한다. 그냥 딛고 일어서라고 바닥은 존재하는 것이다. 바닥은 나를 받쳐주는 존재이므로 바닥은 딛고 일어서면 된다.”

즉 이 시는 바닥에 떨어지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의미로 이때 희망은 바로 생명과도 같다는 것. 우리는 등산을 할 때도 바닥부터 시작해서 정상에 오른다. 그러므로 바닥의 가치는 정상의 가치보다 더 소중하다.

이와 함께 그는 “살면서 절벽(절망)을 만나면 거기서 뛰어내리는 대신 내 자신이 또 하나의 절벽이 되라”고 주문했다. 절벽도 멀리서 보면 아름답다며, 절망과 고통, 눈물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모두 자기만의 십자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십자가의 본질은 무거움에 있다.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지 말고 품에 안고 가라. 십자가의 크기는 달라도 무게는 똑같다. 내 인생은 내 인생대로 아름다운 것이다.”

이날 강연 전 시각장애우들을 위해 낭독봉사를 하고 있는 ‘책 읽는 사람들’은 정 시인의 시를 낭송해 행사를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또한 행사 말미에 시인은 독자들의 요청으로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수선화에게'라는 시도 직접 낭송해 줬다. 행사가 끝나고 진행된 시인의 사인회는 1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낭송 중인 낭독 봉사자와 시인

일산의 지역서점 중 한 곳인 한양문고는 인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강연과 여행, 영화모임 등 지역주민들을 위해 여러 가지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날도 정 시인의 강연을 통해 많은 지역민들에게 ‘영혼의 밥’을 듬뿍 섭취하는 시간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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