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코랄, 박애원서 14년째 합창봉사

정신요양시설 박애원에 방문해 합창봉사 중인 배재코랄과 음악을 감상 중인 생활인들

[고양신문]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지난 8일, 일산동구 설문동에 있는 정신요양시설 박애원(원장 박성은)에는 귀에 익숙한 노래 ‘사랑으로’가 울려 퍼졌다. 남성합창단 ‘배재코랄’ (단장 전창길·지휘자 안창훈)이 박애원 거주 정신장애인(이하 생활인)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합창을 한 것. 아름다운 화음으로 들려준 음악은 이날 참석한 150여명의 생활인들에게 기쁨과 활력을 불어 넣어줬다.

박애원과 배재코랄의 인연에는 사연이 있다. 현재 박애원에 입소중인 노모씨는 배재학당 88회 동문(1973년 졸업)으로 중학교 때 농구장에서 운동을 하다 넘어져 심하게 머리를 다쳤다. 그로인해 심한 뇌손상을 입게 되었고 결국정신질환을 앓게 돼 박애원에 입소하게 된 것.

배재코랄은 2003년 친구들과의 우정과 모교에 대한 사랑으로 합창단을 만들었다. 비록 음악적인 깊이는 부족했지만 의욕만큼은 전문가 못잖았다. 이는 자신의 생활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3년 동안 합창봉사를 이어오고 있는 남성중창단 배재코랄

 

2004년에 '배재코랄 88'이라는 이름으로 창단 첫 연주회를 박애원에서 했다. 이곳에 입소해 있던 친구에 대한 우정의 표시였다. 이후 1년에 한 번씩 매년 박애원을 방문해 친구들의 우정과 사랑을 전했고 벌써 13년이 흘렀다. 처음 합창단 지휘를 맡았던 노씨의 친구 정병국씨는 아직까지도 자신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친구를 보며 말했다.

“그동안은 올 때마다 항상 똑같아 보였는데 올해는 이가 다 빠져서 더 나이가 들어 보이니까 안타깝네요.”

14번째를 맞는 올해 프로그램은 더욱 풍성해졌다. 여성 듀오 플루트 합주단과 남성 5명으로 구성된 ‘지오아재’라는 중창단이 함께한 것. 지오아재는 ‘green old age’의 약자로 ‘노익장’을 의미한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했던 이 어르신들은 64세부터 76세, 평균 나이 68.4세다. 은퇴 후, 평생 하고 싶었던 노래를 하면서 봉사활동을 함께하며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이들 중 3인은 배재출신이다. 그룹 ‘지오아재’는 만들어진 지 한 달밖에 안됐지만 이미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인생 2막을 새로 시작한 어르신 중창단 '지오아재'의 노래를 들으며 흥겨워하는 생활인들


이와 함께 배재코랄은 합창뿐만이 아니라 먹거리와 작은 선물도 준비해 생활인들에게 반가움을 더했다. 일산에 거주하며 배재코랄 멤버로 활동 중인 민석기씨는 말했다.

“항상 행사를 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사랑은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한 것 같습니다. 자그만 정성을 준비해 왔는데 저희가 더 뿌듯하고 생활인들의 환한 웃음이 우리 마음을 더 밝게 합니다. 배재코랄이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한 박애원 방문은 그래서 우리에게는 아주 뜻 깊고 의미 있는 행사입니다.”

그들은 내년에도 더 알차고 풍성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방문할 것임을 약속했다. 작은 선물에도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생활인들을 보면서 오히려 그들이 힐링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배재학당 88회 동문으로만 구성됐던 합창단은 ‘배재코랄’로 이름을 바꾸고 동문 모두에게 개방해 더욱더 발전하고 있다. 병원 환우들을 방문해 공연을 하고, 교회에서 봉사하며 자녀들 결혼식장에서 축가도 부른다. 작년에는 미국 LA연주도 다녀온 중견합창단으로 성장했으며, 올해 11월 25일에는 모교 배재학당에서 새내기 오케스트라와 협연 계획도 갖고 있다. 행사당일 전창길 배재코랄 단장은 행사에 박애원 생활인들도 정식으로 초청했다.

박성은 박애원 원장은 “배재코랄은 이제 저희 마음속에 아주 정겹고 친숙한 이름이 됐다”며 “황금같은 주말에 귀한 시간을 할애해 생활인들에게 큰 기쁨을 준 배재코랄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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