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장항습지의 오늘과 내일 - 1. 장항습지의 위기, 육화 현상

몇 해 전만해도 넓은 개펄이었던 곳을 피를 비롯한 풀들이 뒤덮어 초원을 이루고 있다. 장항습지의 빠른 육화를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다.

 
<기획>  장항습지의 오늘과 내일

1. 장항습지의 위기, 육화 현상
2. 장항습지 유지와 보전을 위한 당면 과제들
3. 장항습지의 변수, 신곡수중보와 람사르 등재
4. 장항습지의 지혜로운 활용, 어떤 선택 가능할까
 

[고양신문]  고양시가 품은 가장 소중한 생태 자산 중 하나인 장항습지. 그러나 한편으로 장항습지는 경계선 너머에 존재하는 미지의 땅이기도 하다. 자유로와 군 철책선이 일반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어 정작 고양시민 중 장항습지에 직접 발을 들여놓은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보물 같은 공간’과 ‘금단의 땅’이라는 모순된 이미지의 충돌 속에서 장항습지의 실체는 시민들의 감각과 점점 간극을 벌리고 있다. 장항습지의 현재 모습을 점검하고 미래의 방향을 가늠해보는 기획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회에서는 장항습지의 가치와 형성과정을 살핀 후 가장 시급한 과제인 육화현상을 살핀다. 이어 장항습지 보전을 위한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짚고, 논란이 되고 있는 신곡수중보의 개방이 장항습지에 미칠 영향을 예측해본다. 1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람사르 협약 등재 문제도 살피고 마지막으로 습지의 지혜로운 활용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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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버들 숲 사이의 초지. 갈대와 물억새, 모새달 등의 식물이 밀생하고 있다.

장항습지의 가치를 살피자면 우리나라 4대강(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이 처한 형편을 먼저 살펴야 한다. 강은 상류에서부터 품고 온 토사와 유기물을 바다와 만나는 하구역에서 풀어놓는다. 하구가 만드는 독특한 지형과 기수역(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수역)의 생물지도는 강과 바다가 합작으로 만들어 낸 풍요로운 자연의 선물이다. 하지만 하구역의 가치에 미처 눈을 돌리지 못한 우리나라는 산업화 과정에서 낙동강과 금강, 영산강에 하구둑을 막아버렸다. 다행히 한강은 군사분계선을 끼고 있는 특수한 지정학적 사정 때문에 유일하게 하구둑의 재앙을 피했다. 결과적으로 한강 하구는 한반도 유일의 대하천 하구지형과 기수역 생태계를 품은 공간이 됐다.

기수역의 생태 메카니즘은 무척 정교해서 상부와 중부, 하부가 염도차로 인해 서로 다른 식생을 보인다. 장항습지가 자리하는 지점은 바로 기수역 상부 생태계다. 그런 까닭에 기수역 중부 산남습지나 하부 강화도 습지와는 전혀 다른, 유일무이한 생물종들을 장항습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장항습지를 ‘생태계의 보물’이라고 부르는 건 결코 애향심에서 발현된 과장된 형용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는 건 결국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구상의 모든 곳이 그렇듯, 각각의 지역은 그 지역만의 고유한 식생과 환경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선버들과 말똥게의 경이로운 공생

장항습지 기수 상부 생태계 특징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습지 뻘에 자리잡은 선버들 군락과 그 아래 구멍을 파고 사는 말똥게의 공생이다. 선버들은 버드나무 중 강의 가장 아래쪽까지 내려올 수 있는 종이고, 말똥게는 기수역 게 중 가장 상류까지 올라올 수 있는 종이다. 이 둘이 ‘겨우 만날 수 있는’ 아주 제한된 구간에서 서로의 생존을 돕는 놀라운 공생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말똥게의 배설물을 영양분삼아 성장하는 선버들은 싱싱한 잎을 갯벌에 돌려주고, 선버들잎을 먹이로 삼는 말똥게는 갯벌에 구멍을 파 선버들 뿌리가 건강하게 자리잡도록 숨구멍을 터 준다. 국내외의 생태전문가들은 장항습지 선버들과 말똥게의 공생 시스템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이포 습지의 맹그로브숲과 맹그로브게의 공생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한다.

선버들과 말똥게뿐 아니라 장항습지에는 재두루미, 개리, 흰꼬리수리 등 천연기념물을 비롯해 다양한 생물종들이 깃들어 산다. 펄콩게도 기수역의 아주 일부 구간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생물종이다.

 

물이 범람하면 밑둥이 넉넉히 잠겨야 선버들숲 아래의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된다. <사진제공=한동욱>
선버들과의 신비로운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말똥게. 장항습지의 상징적인 생물종이다.
기수역 일부 구간에서만 생존하는 펄콩게. 장항습지의 고유한 생태계를 보여주는 생물종 중 하나다.

 
퇴적과 침식이 만든 자연의 걸작

장항습지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역사는 의외로 짧다. 고양땅 앞 한강에는 과거부터 커다란 모래섬과 사주가 존재했다. 모래섬과 사주는 매 해 수량과 물길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퇴적과 침식을 반복하며 모양을 달리했다. 그러다 30년 전 신곡수중보가 설치되면서 물길에 변화가 생겼다. 수문이 있는 김포쪽은 빠른 유속에 의한 침식이 지속된 반면, 물줄기 속도가 줄어든 고양쪽에는 지속적인 퇴적이 진행됐다. 동시에 한강 모래를 건축자재로 사용하기 위한 준설이 행해져 하중도가 사라지고 대신 인위적으로 조성한 준설로 주변으로 퇴적토가 쌓이며 고양시쪽 연안에서 이어지는 습지뻘이 형성돼 지금의 장항습지를 만들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자유로와 군 철책선의 존재는 인간에 의한 생태계 간섭을 막는 역할을 했다. 결국 장항습지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기까지에는 신곡수중보, 모래 채취용 준설로, 자유로 철책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어디까지나 부수적 변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미처 알 수 없는 힘으로 침식과 퇴적을 반복하며 생명이 살아가는 지형을 만들고 다양한 생물종을 풀어내는 근본적 힘은 물과 흙과 씨앗들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항습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우연한 걸작’이 되어 우리 곁에 자리를 잡았다.

급속히 진행되는 습지의 육화

하지만 인간이 기대하는 이상적인 생태를 자연에게 일관되게 기대하는 건 욕심에 가깝다. 장항습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을 수행하고 있다. 당혹스럽게도 현재의 진행방향은 육화다. 육화란 축축하고 무른 습지뻘이 단단한 육지땅처럼 변해가는 것을 말한다. 조금만 살펴보면 육화의 흔적들은 확연히 감지된다. 우선 선버들 숲 사이를 실핏줄처럼 넘나드는 물골이 말라가고 있다. 물의 양이 줄어 말똥게들의 서식 환경이 줄어들고 있고 아예 물골 입구가 막힌 곳도 있다. 여뀌나 흰여뀌, 속속이풀 등 습지 풀들이 자라던 선버들 아래 갯벌에선 쥐깨풀, 들깨 등의 육상 식물들이 점점 세력을 넓히고 있다. 선버들 군락 너머 강쪽으로 펼쳐진 넓은 펄에서도 피가 자라 초지를 이루고 있고, 다년생 식물인 갈대도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내륙쪽 수풀지대에는 며느리배꼽, 환삼덩굴 등 육상 풀들이 세력을 키우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이 최근 2~3년 사이에 무척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이 추세라면 머잖아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잡은 이상적인 장항습지의 모습은 영영 지난날의 기억으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육화의 원인은 퇴적과 침식의 불균형이다. 퇴적은 일정하게 진행되는데 대규모 범람이 몇 년째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침식이 사라진 것이다. 2013년 이후 큰 비가 내리지 않았던 게 원인으로 꼽힌다.

이러한 현상을 우려스럽게 봐야 할까? 전문가들은 일단 판단을 유보한다. 올해라도 큰 비가 내려 대규모 범람이 일어나면 육화된 부분이 다시 침식되며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물의 힘에 의해 자연적인 교란이 일어나는 변화무쌍한 습지의 특성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선버들 숲 사이로 난 탐방로 좌우로 산조풀, 들깨 등 풀이 무성하다.


전통적 어업으로 최소한의 개입해야

장항습지의 육화에 대응할 수 있는 인위적인 노력은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의외로 최소한의 소극적 대응을 전제로 습지 물골을 이용한 전통방식의 장어잡이를 꼽았다. 장항습지가 만들어진 후 행주어촌계 어민들은 습지 선버들 숲 사이로 난 물골을 이용해 장어잡이를 했다. 언뜻 자연을 교란하는 인간의 개입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인위적으로 물골을 터 주고, 갯골 안쪽에 웅덩이를 만들어 다양한 생물들이 오가는 통로를 만들어주는 것이 장항습지 갯벌 생태계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는 설명이다.

현재 장항습지 물골을 이용한 장어잡이는 중단된 상태다. 습지보호구역 안에서의 까다로운 어로 허가, 수시로 물골을 정비해야 하는 어려움, 줄어드는 어획량 등의 난제를 어민들 스스로 극복하기 버거워서다. 장항습지 관리 책임기관인 한강유역환경청이 어민들의 전통적 어로 행위를 규제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삶의 양식으로 바라보며 오히려 제도적·물리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게 생태전문가들의 견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자연의 수용 한계를 넘는 과도한 어로 행위는 규제되고 조절돼야 한다는 전제가 지켜져야 할 것이다. 장항습지의 육화는 인간의 가치와 자연의 원리 조율, 나아가 순환적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과 숙제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습지 물골 안쪽의 웅덩이. 전통적인 장어잡이 어업의 흔적이다.


※ 이 기사는 고양에서 생태 모니터링과 환경운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는 생태전문가들의 도움말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편의상 인용부호 없이 전문가들의 견해를 인용했음을 밝힌다.

(사진 왼쪽부터) 한동욱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기반연구본부장, 박평수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공동대표, 이은정 (사)에코코리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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