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 빛 시 론

고상만 인권운동가

[고양신문] 얼마 전 동해안으로 가족 여행을 갔다.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해변가 소나무 숲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렇게 한가한 마음으로 오솔길 숲속을 산책하는데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모두를 위한 공간이니 절대 캠핑을 하면 안된다’는 경고문이었다. 만약 이를 위반하면 얼마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있다는 문구가 붉은 색으로 강조되어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경고 안내판이 무색하게 숲속 여기 저기에는 캠핑용 텐트가 버젓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개의치 않고 규정을 어기는 그들은 누가 봐도 어이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우리 사는 세상 어디에나 있다.

그런 사례 중 대표적인 경우가 아파트에서의 주차 위반 행위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중앙 도로에 주차를 하지 않는 것이 약속이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가 주민들의 여론 수렴을 거쳐 ‘중앙도로에는 주차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 다수의 주민들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상식적인 분들만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900세대 가까운 우리 아파트에서 이 약속을 ‘고정적으로 어기는’ 세대가 대략 서너 곳 된다. 관리사무소는 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경고 스티커도 부착하고 전화로 촉구도 하지만 소용이 없다고 한다. 부끄러움도 없단다. “남들이 지키는 약속을 함께 지켜달라”고 하면 오히려 더 큰소리로 화를 낸다. 그러면서 “왜 중앙도로에 차를 못 세우게 하냐”며 아예 주차선을 그려 달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관리사무소는 차량 교행을 위해서 불가하다는 입장인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사회적 약속을 지키는 않는 그들의 요구대로 설령 주차선을 그린다 해도 그들은 또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은 ‘중앙도로에 차를 세우지 말자’는 약속을 지키고자 다른 주민들이 세우지 않을 뿐이지 만약 주차선을 그리게 된다면 그때는 누구나 그곳에 주차를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아파트에는 빈 주차선이 적지 않다. 다만 자기 집과 거리가 멀어 불편하다며 위법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러니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하철 내 임산부 배려석 운영도 그렇다. 지하철에는 차량마다 핑크색으로 된 2개 좌석을 임산부 전용 배려석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자리에 진짜 주인인 임산부가 앉은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 노소를 가리지 않는 남성들과 임산부일 수 없는 연령대의 여성이 태연히 그 자리를 차지한다.

임산부를 위해 상식을 가진 분들이 비워둔 자리인데 뒤늦게 승차한 이들이 아무런 주저없이 그 자리에 앉아 나몰라라 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래도 내가 참 잘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억울하다는 생각을 할까?

정말 이래서는 안된다. 규정을 지키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세상은 옳지 않다. 아무렇지도 않게 금연 구역에서 흡연하고, 하지 말라는데도 위반하는 사람이 불이익은 고사하고 불공정한 이익을 본다면 이는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그래서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소나무 숲 경고판에 적힌 대로만 시행하면 된다. 과태료 부과 규정이 있는데 이를 행사하지 않으니 텐트가 설치되는 것이다. 금연구역에서 흡연을 하면 그에 따른 제재가 이뤄져야 하며 임산부 배려석 역시 그 용도에 맞게 운영되도록 보다 실효성있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뻔뻔한 사람들이 이득을 얻도록 방치한다면 어느 누가 그런 행정을 신뢰하겠는가. 그런 작은 틈이 신뢰의 댐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다고 했으면 해야 한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는 상식적인 사람이 결국 이익’이라는 명제에 고개를 끄덕이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게 공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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