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장항습지의 오늘과 내일 - 2. 장항습지 보전 위한 당면 과제들

<기획>  장항습지의 오늘과 내일

1. 장항습지의 위기, 육화 현상
2. 장항습지 보전 위한 당면 과제들
3. 장항습지의 변수, 신곡수중보와 람사르 등재
4. 장항습지의 지혜로운 활용, 어떤 선택 가능할까
 

장항습지를 찾은 생태교실 참가자들이 한강을 바라보며 탐조활동을 펼치고 있다.

 

▲ 지난 내용 : 장항습지는 우리나라 4대강 중 유일하게 하구둑이 막히지 않은 한강 하구에서 선버들과 말똥게가 공생하는 독특한 기수역 상부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다양한 생물종이 터전 삼고 있어 생태적 보전가치가 무척 높다. 하지만 현재 퇴적과 침식의 불균형으로 육화가 빠르게 진행중이다. 인간의 인위적 개입으로 육화를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보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들어내는 역동적 힘은 장항습지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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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 톡톡히 하는 고라니

장항습지의 포유류를 대표하는 생물종은 고라니다. 인간 접근이 최소화된 장항습지는 물과 숲을 좋아하는 고라니들에게 작은 낙원이다. 고라니들은 한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장항습지와 산남습지를 오가며 개체수를 불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헤엄을 잘 치는 녀석들은 한강을 거뜬히 건너기도 한다. 우리에겐 고라니가 농작물을 파헤치는 유해 조수로 낙인찍혔지만, 사실 고라니는 흔하다고 푸대접할 존재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중국 일부와 한반도에서만 서식하는 귀한 생물종이기 때문이다. 고라니들의 안정된 서식환경을 지켜주며 생태를 연구하기에 장항습지만한 장소가 없다. 그러고 보니 장항습지의 ‘장’이 바로 ‘노루 장(獐)’자다. 자신들이 차지한 영토의 이름값을 고라니들이 톡톡히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장항습지를 대표하는 포유류인 고라니. <사진제공=한동욱>


습지 생태 위협하는 외래식물 습격

지난주에 다룬 육화현상에 이어 장항습지가 안고 있는 당면한 문제들을 좀 더 살펴보자. 우선 외래식물의 유입을 들 수 있다. 현재 장항습지에는 토종 식물종을 위협하는 가시박과 환삼덩굴, 족제비싸리가 우려할만한 속도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외래식물 유입으로 인한 생태 교란은 오늘날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 겪고 있는 문제지만, 제한적 조건에서 형성된 유일무이한 생태계인 장항습지에서만큼은 외래식물 유입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박평수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외래식물과 함께 양버즘나무 등 전형적인 육상식물의 상륙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해식물을 막기 위해 지금까지는 간간이 민간단체와 협력해 일회성 행사처럼 제거작업을 벌인 게 다다. 하지만 장항습지 관리책임을 맡고있는 한강유역환경청과 고양시 환경보호과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올해 8월부터 10월까지 상시 작업인력 2명을 고용해 외해식물 제거작업을 펼칠 예정이다. 첫 번째 제거 대상은 나무를 감싸고 올라가는 가시박이다. 고양시 환경친화사업소 권지선 소장은 장항습지의 외래식물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첫 조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생태전문가들은 인원과 시기가 너무 협소하다며 상시 작업인력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토종 식물들을 위협하는 외래식물 가시박.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가시박과 함께 장항습지에 상륙한 외래식물 족제비싸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큰물이 몰고 온 골칫거리 쓰레기

외래식물 유입과 함께 쓰레기 문제도 심각하다. 장마나 홍수에 동반되는 강물의 범람은 습지 환경에 필수적인 요소지만, 상류로부터 쓸고 내려온 쓰레기를 하구 습지에 떠안기는 부수적 폐해를 안겨주기도 한다. 특히 하구 습지는 지속적인 퇴적이 일어나는 곳이라 주로 식물 뿌리나 밑둥에 걸리는 쓰레기들을 바로 제거해주지 않으면 퇴적토 밑으로 묻혀버리고 만다. 모니터링을 하다 보면 뻘 속에 파묻힌 스티로폼에 말똥게가 구멍을 파고 들어갔다가 죽은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쓰레기 처리에 대한 관리당국의 매뉴얼은 공백상태다. 장항습지가 군부대의 통제 영역에 속한 까닭에 군이 실시하는 최소한의 청소작업에 협조하는 선에 그치고 있다.

이에 대해 권지선 소장은 수돗물값에 포함된 한강수계기금의 사용을 수자원공사측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상수원 보호구역의 보전작업에만 사용되고 있는 한강수계기금을 하류 지자체에도 할당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막연히 예산만 탓하며 쓰레기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다. 박평수 공동대표는 장항습지 탐방프로그램과 정화활동을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습지를 탐방하러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일정량의 쓰레기를 수거해 나오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다.

생태논에 제초제, 피할 수 없나

장항습지에 유일하게 상시 출입하는 민간인이 있다. 바로 장항습지 구역에서 논농사를 짓는 농업인이다. 논은 사람이 만든 인위적 시설이지만, 생태적으로 무척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빗물을 담아놓는 물그릇 역할을 하며 다양한 생물종들의 서식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생태적 관점에서 논은 농경지가 아니라 논 습지로 불리기도 한다. 장항습지에도 10만 평에 이르는 생태논을 유지하고 있다. 장항습지 생태논은 그 자체로 수서생물과 수중생물의 삶터가 되기도 하고, 겨울철 장항습지를 찾는 제두루미, 개리, 큰기러기 등 철새들의 소중한 먹이터와 쉼터가 된다.

현재 장항습지 생태논은 하천부지 전역을 관리하는 국토관리청으로부터 위임을 받아 시 생태하천과에서 농업인들에게 농지 사용허가를 내 줘 경작하도록 하고 있다. 가을에는 장항습지 생태논에서 수확한 볍씨와 볏짚을 30톤 가량 수매해 장항습지와 산남습지를 찾아오는 겨울철새들의 먹이로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제초제다. 생태논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장항습지 대부분의 논에서 제초제가 사용되고 있다. 제초제가 생태 환경에 끼치는 영향은 두말할 것 없이 치명적이다. 장항습지 갯골 일부에서 말똥게가 집단 폐사한 적이 있는데, 제초제가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입장에서는 대안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제초제를 쓰지 않으려면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왕우렁이 농법을 비롯해 현재까지 시도된 친환경농법 중 장항습지에 적합한 방식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권지선 소장은 장항습지 내 논농사를 유지하기 위해서 제초제의 강도와 사용량을 최소화하도록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제초제 사용을 막는 실질적 조치는 취해지지 않고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박평수 공동대표는 농업생산물 구매와 농지 사용허가라는 당근과 채찍을 모두 쥔 시에서 제초제 문제를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은정 (사)에코코리아 사무처장은 단계적으로 논 면적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태교육에 꼭 필요한 적정 규모의 논 면적만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한동욱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본부장도 철새들의 먹이터와 쉼터로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3개 구역 정도의 논만 남기는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권지선 소장은 현재 농사를 짓는 농업인 외에 신규 허가를 내 주지 않고 있어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농경지 면적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장항습지의 생태논 문제는 지난주에 짚어본 갯골을 이용한 어업과 함께 인간과 습지가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과 실험의 화두다.
 

겨울철 장항습지를 찾아오는 진객 재두루미. 생태논은 장항습지를 찾는 철새들의 소중한 먹이터 역할을 한다. <사진제공=한강하구시민모니터링단>


구조·설계 문제점 많은 생태탐방로

현재 장항습지에는 선버들과 말똥게가 공생하는 일부구간에 생태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나무로 된 안정된 데크를 따라 장항습지의 가장 비밀스런 공간까지 둘러볼 수 있으니 탐방객들에게는 아주 고마운 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생태탐방로 역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받는다. 우선 한강유역환경청에서 제시한 설계 원안과 달리 관리 편의에 맞춰 변형적인 모습으로 설치됐다. 군에서 작전상의 이유로 설계변경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바닥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둔 높이였는데 현재 고정기둥에 연결된 생태탐방로는 펄 바로 위쪽에 바짝 붙은 형태로 이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탐방로 자체가 퇴적을 유도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규모 범람이 일어나면 탐방로 위로 퇴적토가 쌓이는 것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군부대와의 조율 실패로 생태적 고려 없이 만들어진 생태탐방로.


이은정 사무처장은 고정형 탐방로 기둥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습지에 설치된 시설물은 어떤 방식으로든 지형과 생태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라 처음부터 고정식이 아닌 물에 뜨는 부교 형태로 탐방로를 설계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동욱 본부장 역시 생태탐방로라는 개념 자체를 연구와 모니터링에 중점을 둔 제한적인 의미로 해석해 습지 생태에 영향을 최소화하는 규모와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탐방로는 부적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이용을 전제로 부교식 탐방로를 설치해 운영중인 홍콩 마이포 습지를 예로 들었다. 이에 대해 권지선 소장은 장항습지는 때때로 강물의 빠른 유속을 감당해야 하는 환경에 노출돼 있어 부교식 설계가 물리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허점을 안고 있는 장항습지 생태탐방로의 현재 모습은 습지의 이용과 접근 프로그램이 누구의 관점에서 설계돼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다. 인간의 관점인가 습지생명의 관점인가. 이 질문은 결국 장항습지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 이 기사는 생태전문가들과 행정관계자의 도움말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편의상 인용부호 없이 전문가들의 견해를 인용했음을 밝힌다.

■ 도움말 : 한동욱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기반연구본부장, 박평수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공동대표, 이은정 (사)에코코리아 사무처장, 권지선 고양시 환경친화사업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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