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연 중앙승가대학 교수, 인문학모임 '귀가쫑긋' 강연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에서 고려불화의 세계적인 명성에 대해 강의 후 자신의 저서에 사인 중인 강소연 교수.


[고양신문]  고양의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은 지난 4일 중앙승가대학 강소연 교수를 초청해 ‘고려불화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비밀’에 대해 강연을 들었다. 현재 고려불화는 해외에 170여 점이 있고 국내에 6점이 있다. 강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일본 교토대학 유학 시절 국립교토박물관과 일본 사찰 ‘가가미진자(鏡神寺)’에서 어렵게 촬영한 ‘아미타여래도’와 ‘수월관음도’ 사진을 공개하며 고려불화의 우아함과 섬세함을 짚어줬다. 참가자들은 고려불화가 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불교미술사학자인 강소연 교수는 『사찰불화 명작강의』와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 등의 책을 저술했고, 다양한 매체에 불교문화재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다. 강연 내내 탄성이 끊이지 않았던 이날 강의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미국 하버드대학 박물관 포그아트뮤지엄에 소장 중인 '수월관음도' 중 선재동자를 내려다 보고 있는 관세음보살 (사진제공=강소연 교수)
미국 하버드대학 박물관 포그아트뮤지엄에 소장 중인 '수월관음도' 중 관세음보살을 올려다 보고 있는 선재동자 (사진제공=강소연 교수)


고려불화, 2006년 소더비 미술경매장서 20억원에 낙찰

2006년 고려불화가 매스컴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미국 소더비 미술경매장에서 고려불화가 20억원에 낙찰됐다는 기사였다. 인상파 화가의 작품을 누르고 고려불화가 최고의 낙찰가에 거래됐다는 것. 국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고려불화가 초특가의 가치로 인정받은 이유는 뭘까?

비단보다 가는 선으로 그린 ‘아미타여래도’

일본 국립교토박물관에 소장 중인 고려후기 불화 ‘아미타여래도’는 80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보관 상태가 아주 좋았다. 고려불화의 전체 사진을 찍은 후, 자세히 근접촬영을 하며 살펴봄으로써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불화 속 부처님은 고운 금가루를 미세하게 갈아 아교와 섞어 안료를 만들고 가는 붓으로 바른 ‘금니(金泥)’ 선으로 문양이 그려져 있는 옷을 입고 있다. 지름 5cm 정도의 작은 원 안에 그려져 있는 문양 속에 어마어마한 초정밀 마이크로 세계가 펼쳐져 있다. 이 문양이야말로 고려불화의 핵심적인 디테일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최고로 고운 비단 위에 그려진 고려불화는 비단의 한 올보다 그 선의 두께가 절반 정도(약 0.5mm)로 매우 가늘게 이어진다. 놀랍게도 이 선의 두께가 일정하고 부드럽게 한 호흡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경지는 그림에 오롯이 집중할 때만 가능한 것으로 오늘날에는 재현이 불가능하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의 불화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불가사의한 경지다. 국제학술대회에서도 이 고려불화 사진을 보여주면 박수갈채와 찬사가 쏟아질 정도로 압권이다.

고려불화 문양의 비밀

고려불화의 문양은 너무나 디테일해 한 걸음만 뒤로 멀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한 꼭지점으로 수렴되고 있는 160개의 금니선은 두께가 모두 일정하다. 철사줄처럼 선의 굵기가 변화가 없고 죽 이어진다는 의미로 이를 ‘철선묘(鐵線描)’라 한다. 고려불화의 필선 두께는 모두 일정하고, 흔들림 없이 고요한 적멸(寂滅) 속에 오묘한 신비를 묘사해 내고 있어 온전히 깨어있는 정신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도 세계인들도 공통적으로 감동을 받는 것이다.

 

일본 사찰 가가미진자에 소장 중인 '수월관음도'에서 관세음보살이 선재동자와 눈동자를 마주치고 있는 모습
일본 사찰 가가미진자에 소장 중인 '수월관음도' 중 섬세하고 화려한 '금니'선으로 그려진 관세음보살의 옷 문양


‘가가미진자(鏡神寺)’에 있는 ‘수월관음도’

일본 사찰 ‘가가미진자(鏡神寺)’에 있는 ‘수월관음도’는 5m 높이의 초대형 고려불화다. 일본의 원로 불교학자 키쿠타케 준이치 교수가 “가가미진자의 수월관음도는 세계에서 최고”라고 말했을 정도다. 매우 섬세하고 화려한 세부 묘사를 보면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다. 그 안에 구사된 고난도의 다양한 화법은 미감의 극치를 보여준다.

천상의 자비와 사랑의 빛을 구현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사라(속이 비치는 얇은 비단 천)를 표현했다. 머리에서부터 팔을 거쳐서 발끝까지 이어지는 이 사라는 고려불화의 놀라운 예술성을 보여주는 실체다. 세밀한 철선묘로 그려진 다양하고 정교한 문양이 가득 수놓아진 얇은 옷이 여려 겹 겹쳐져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이는 정신적인 경지가 뛰어난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고려불화 이후로 이러한 정교함과 섬세함은 어느 미술작품에서도 다시 재현되지 못하고 있다. 고려불화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